최신형 호위함 ‘울산급 배치(Batch)-Ⅲ’ 예상도 (사진=방위사업청)
‘차세대 한국형 구축함(KDDX)’ 수주를 놓고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법원이 HD현대중공업의 차기 호위함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확인 가처분 신청에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한화오션은 본계약 절차를 추진할 전망이다.
다만 국정감사에서 “HD현대중공업에 대한 과한 벌점이 오히려 한화오션의 독점 우려 가능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 한화오션, 배치3 5·6번함 우선협상 대상…HD현대重, 보안사고 벌점탓 ‘탈락’
19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박범석 수석부장판사)는 HD현대중공업이 제기한 차기 호위함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확인 가처분신청에 대해 지난 10일 기각 결정을 내렸다.
앞서 HD현대중공업은 지난 8월 울산급 배치3(Batch-Ⅲ) 5·6번함 건조사업 우선협상 대상에서 탈락하면서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우선협상대상 선정에서 보안 감점 영향은 컸다. HD현대중공업은 종합점수 91.7433점, 한화오션은 91.8855점으로 한화오션이 선정됐다.
HD현대중공업은 1.8점의 보안 감점이 패인이라고 봤다. 보안 감점은 HD현대중공업 관계자들이 지난 2014년 이 사업과 관련한 개념설계 등 군사기밀을 촬영해 보관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유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은 “기술 점수에서는 경쟁사를 앞섰지만 보안사고 감점으로 우선협상대상자가 바뀌었다”며 “강화된 보안사고 감점 기준을 HD현대중공업에만 소급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더 이상 만회할 기회도 잃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불합리한 현행 보안사고 감점 기준이 계속 적용되면, 공정한 경쟁이 저해돼 우리 방위산업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김동관 한화 그룹 부회장(왼쪽 두번째)이 지난 9월5일(현지시간) 폴란드 키엘체에서 열린 국제방위산업전시회(MSPO 2023)에 참석해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왼쪽 세번째)에게 한화오션의 잠수함 기술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은 배치3 5·6번함 우선협상 대상에 선정되면서 본계약 절차에 돌입할 전망이다. 우선협상 대상자는 인도 날짜, 작업 시작, 요구사항 등을 조율하고 본계약을 체결한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본계약을 체결하고 그간 건조하며 쌓은 함정 건조역량을 바탕으로 울산급 호위함 배치3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원의 가처분신청 기각에 대해 이 관계자는 “정당한 입찰을 통한 결과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행위에 대한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환영한다”며 “방위 산업은 국토 방위와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하는 사업인 만큼 신뢰와 도덕성이 중요한 핵심 가치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 대표 방산기업으로서 대한민국 해군과 함께 국익과 우방의 안보 수호를 위한 최적의 솔루션을 찾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보안사고 벌점 과해…독점 우려” 방사청 국감서 지적 나오기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HD현대중공업의 벌점이 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방사청의 현재 감점 규정으로 인해 향후 3년간 한화오션이 관련 시장 수주를 가져가는 데 크게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6일 방사청 국정감사에서 보안 감점이 약 3년간 소급 적용되며 한화오션의 독점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함정 무기체계 연구개발 업체 선정 시 대부분 1점 미만에서 수주가 결정된다”며 “잠수함을 제외한 함정에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HD현대중공업을 배제하기 위해 강화한 조치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업체가 3년간 수주 배제가 된다면 군수 분야는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 폐업에까지 이를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 (사진=연합뉴스)
방사청은 지난 2019년 국민권익위원회의 감점 기준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지적에 따라 보안사고 감점 비중을 축소했다. 하지만 2020년 9월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보안사고로 기소되자 2021년 3월 감점 배점을 최대 1.5점에 인원 1인당 0.1점씩 추가 감점을 규정했다.
이어 2021년 말엔 기소 후 1년이던 감점 배정 규정을 기소 후 3년으로 연장했다. 지난해 말에는 기소 후 3년이었던 감점을 형 확정 후 3년으로 변경했다.
이 의원은 “한화오션의 함정과 무기체계 수직 계열화에 따른 독점 우려와 방사청의 감점 규정까지 더해지면서 HD현대중공업의 특수선 사업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장기간 함정 신규 수주가 끊길 경우 연 매출 7000억원의 특수선 사업에 종사하는 HD현대중공업 1700여명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고, 지역 경제에도 악영향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 “한화오션 독점 가능성 낮아” 견해도…방사청 “보안사고 부정당제제 검토”
다만 현대중공업이 감점을 적용받더라도 한화오션의 독점 우려는 사실이 아니라는 견해도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SK오션플랜트, HJ중공업, 강남 등 다수의 조선사가 있어 한화오션의 독점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며 “HD현대중공업이 건조 중인 함정은 15척인 반면 한화오션은 글로벌 톱3의 기술력을 가졌음에도 3척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생산업체가 1군데 뿐인 무기체계도 다수 존재하고 있다”며 “유독 함정시장에서만 독점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임시방편적 주장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6일 국회 국방위이 방위사업청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국회위원(오른쪽)이 엄동환 방위사업청장에게 질의하고 답변을 받고 있다. (사진=국회)
방위사업청은 기술적 우위가 있더라도 군사기밀 보호가 우선이라는 입장에서 HD현대중공업에 부정당 제제까지 검토하고 있다.
엄동환 방위사업청장은 지난 16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안규백 의원의 관련 질의에 “그동안 판결문 획득이 어려워 제재 심의를 못하고 있었다”면서 “최근 판결문을 확보해 계약심의회의를 통해 부정당 제재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정당 제재는 경쟁의 공정한 집행이나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KBS 보도에선 현대중공업이 KDDX 관련 정보 말고도 특수침투정과 특수전지원함 등 11건의 군사 기밀을 추가로 빼돌려 별도의 서버에 보관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