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손기호 기자)

서울 아파트 매매가 상승에 이어 전셋값까지 43주 연속 오르며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가운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3기 신도시와 불광, 고덕 등 서울 도심 내 공급 확대를 위한 투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다. 다만 얼마나 빨리 공급을 완료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1일 LH에 따르면 서울 외곽에서는 6억원대의 합리적인 분양가와 민간 아파트 수준의 특화 설계를 앞세우며 3기 신도시를 통한 공급에 나서고 있다. 이날 LH는 서울 도심에서는 정비사업 규제 완화를 통해 도심 내 신축 아파트 공급 시계를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국민평형(전용 84㎡) 매매가가 12억~13억원을 상회하는 고물가 상황에서 신속한 공급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 남양주왕숙, 6억대와 4베이 특화설계 내세워

LH는 지난달 28일 남양주왕숙 A-24·B-17 블록 견본주택을 개관하고 민간아파트 수준의 특화 설계된 주택을 대중에 처음 공개했다. 이번 공개는 기존 공공분양 주택의 한계로 지적되던 단조로운 평면과 품질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장의 이목이 쏠린 B-17 블록(공공분양) 전용 84㎡는 민간 신축 아파트의 최신 트렌드를 적극 반영했다. 채광과 통풍에 유리한 4베이(Bay) 판상형 구조를 기본으로, 다용도 알파룸, 현관·주방 대형 팬트리, 와이드 다이닝 공간 등을 적용해 상품성을 높였다. 안방 동선을 효율화하고 가변형 벽체를 도입해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한 점은 "서울 구축 아파트보다 상품성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형 평형인 A-24 블록(신혼희망타운) 전용 55㎡도 강소형 설계로 차별화를 꾀했다. 'ㄷ'자형 주방 배치와 데드스페이스를 최소화한 수납 특화 설계를 통해 체감 면적을 기존 59㎡ 수준으로 확보해 신혼부부 등 2~3인 가구 수요를 겨냥했다.

무엇보다 가격이 끌린다. 보통 10억원대를 훌쩍 넘는 서울의 민간 아파트 분양과 비교해 B-17 블록 전용 84㎡의 분양가는 약 6억4000만원대로 책정됐다. 이는 남양주왕숙과 인접한 서울 강동·송파권역의 전셋값 수준이다. 인근 다산신도시 시세 대비 확실한 안전마진을 확보한 금액이다. 서울 전역이 불장인 상황에서 6억대 신축 국평은 실수요자들에게 상당한 메리트로 작용할 전망이다.

■ 불광·고덕 등 도심복합사업 가속… "서울 내 공급 절벽 해소"

LH는 3기 신도시를 통한 외곽 수요 분산에 그치지 않고 서울 도심 내 직접적인 공급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도심복합사업은 민간 정비사업이 어려운 노후 도심을 LH 주도로 고밀 개발해 신속하게 주택을 공급하는 모델이다.

이날 LH는 올해 도심복합사업 지구지정 목표 8곳 중 7곳의 지정을 완료했다고 강조했다. 올해 신규 지정된 곳은 불광동329-32, 고덕역, 장위12, 수유12, 용마산역, 상봉역, 창2동주민센터 등 총 7곳이다. 서울 강남·북 핵심 입지를 아우른다.

LH는 올해 도심복합사업 지구지정 목표 8곳 중 7곳을 지정한 가운데 7곳 중 한 곳인 불광329-32 위치도 (사진=LH)

특히 지난달 28일 고시된 불광동329-32 지구(1670호)와 고덕역 지구(2486호)는 두 곳에서만 약 4200호 규모의 대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라 시장의 관심이 높다. LH는 연말까지 영등포역 인근에도 3400호 규모의 지구지정을 완료해 도심 공급 물량을 대폭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브랜드 고급화 전략도 병행한다. LH는 지난달 29일 증산4구역(3568세대)의 우선협상대상자로 DL이앤씨·삼성물산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이로써 누적 6곳, 약 7700세대의 시공사 선정이 완료됐다. 대형 건설사의 참여는 도심복합사업 단지가 단순한 공공임대를 넘어 브랜드 타운으로 탈바꿈한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강오순 LH 지역균형본부장은 "인력 보강과 용적률 상향 등 제도 개선을 통해 사업 추진력을 제고했다"며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을 통해 국민들이 서울 도심 내 주택 공급 효과를 조기에 체감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 43주째 뛰는 전셋값… '입주 시차' 극복이 관건

LH가 외곽과 도심에서 전방위적 공급 시그널을 보내고 있지만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1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14% 오르며 43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대출 규제 강화로 매매 수요가 전세로 선회하고 입주 물량 부족이 겹치며 전세 품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서울 월세가격지수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관건은 얼마나 빠르게 입주할 수 있느냐다. 이번 남양주왕숙 본청약 물량의 입주 예정 시기는 2028년 상반기. 당장 주거 불안을 겪는 실수요자들에게는 3년 이상의 공백기가 존재한다. 도심복합사업 역시 지구지정 이후 토지 보상과 이주, 착공까지 물리적인 시간이 소요된다.

LH의 이번 공급 대책이 시장 심리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평가가 나오지만, 다만 정책 성공 여부는 속도에 달렸다는 지적이다. 과거 사전청약 지연 사태 등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인허가와 착공 일정을 빠르게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6억대 분양가와 서울형 설계는 확실한 수요 유인책이지만 당장의 전세난을 해소하기엔 시차가 있다"며 "3기 신도시와 도심복합사업의 실제 착공이 얼마나 신속하게 이뤄지느냐가 서울 집값 안정의 변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