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포르투갈 출신 항해사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 최남단에 위치한 87m 높이의 곶을 발견한다. 인도를 향한 신항로 개척과 함께 프레스터 존이 다스린다는 전설의 기독교 왕국을 찾기 위한 험난한 항해 과정 속에 만난 장소다.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심한 폭풍우 속에서 마주한 그곳을 '폭풍의 곶'이라 불렀다. 국내 게이머들도 신작 게임 홍수 속에서 쉽게 정착하지 못하고 '할 만한 게임'을 찾아서 표류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 함께 늙어가는 처지인 게임 속 인연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도 '할 게 없다'라는 말이다. 따져 보면 할 게 없지는 않다. 많은 게임이 나왔고 좋은 게임도 많다. 그러나 국내 게이머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가장 쉽고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국산 게임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게임이 없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판교 넥슨코리아 사옥(사진=넥슨) 그런 와중에 넥슨이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지난 2010년대 중반까지만하더라도 일부 신작들의 연이은 흥행 저조 이후 '메이플스토리'와 '피파 온라인(현 FC 온라인)' 시리즈 등에서 악랄한 BM으로 버텼던 그 회사가 이제는 국산 게임의 희망이 됐다. BM은 물론 내부 직원의 일탈과 확률 조작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게임사의 완벽한 변신이다. 변화의 시작은 게이머들과의 소통이었다. 장기간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는 '바람의 나라'와 '테일즈 위버' 등 클래식 RPG는 물론, '블루아카이브'를 포함해 다수의 모바일 신작도 유저들을 위한 행사 및 개발자의 편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에 나섰다. 각 게임의 메인 디렉터들도 이용자와 소통을 주저하지 않았다. 예능 프로그램 느낌의 유튜브 영상도 촬영하고 실시간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 콘텐츠 크리에이터와의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넥슨이 소통을 통해 자사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들의 마음을 돌렸다면 신작을 통해서는 국내에 전반적인 게이머들의 응원까지 끌어내는 분위기다. '국산' 마크가 붙은 게임도 글로벌 시장에서 이름 좀 날렸으면 한다는 국내 게이머들의 잠재된 열망을 자극했다. 얼핏 진부한 '애국 마케팅'처럼 들리겠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인 '내적 친밀감' 정도로 대체하자. 생소한 해외 게임사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하고 귀에 익은 게임사의 성공이 조금이라도 더 기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넥슨은 그동안 '리니지 라이크'로 불리는 모바일 MMORPG의 범람에 지친 국내 게이머들에게 단비가 될만한 신작을 많이 선보였다. PC·콘솔 플랫폼 해양 어드벤처 게임 '데이브 더 다이버'와 글로벌 FPS 시장 공략을 위해 개발 중인 '더 파이널스' 등이 대표적이다. MMORPG 개발 역량을 오랜 기간 쌓아 온 국내 개발자들이 다른 장르에서도 충분히 뛰어난 작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넥슨표 인디게임 '데이브 더 다이버'. (자료=넥슨) 이 게임들은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9월 출시한 '데이브 더 다이버'는 외신에서 '올해의 게임(GOTY)'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연내 출시를 목표로 오픈 베타 테스트에 돌입한 '더 파이널스'는 스팀 기준 26만명의 일일 동시접속자 수를 기록했다. 넥슨은 서브 브랜드 민트로켓 설립과 함께 '데이브 더 다이버'를 선보였고 이후로도 여의도 좀비물인 '낙원'과 한국풍 액션 '프로젝트V' 등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타 국내 게임사들이 그동안 벌어들인 수익으로 '자기복제'에 가까운 신작 혹은 완성도가 떨어진 작품들로 성장이 지지부진할 때 넥슨은 수익과 완성도를 균형있게 잡아낸 셈이다. 넥슨의 성공적인 이미지 변신은 PC·콘솔 개발에 힘을 쏟으면서 국내 게이머들의 트렌드 변화에 기민하게 움직인 덕분이기도 하다. 한국콘텐츠 진흥원에 따르면 최근 1년 간 국내 게이머들의 모바일 게임 이용률은 62.6%에서 53.2%로 9.4%p 감소했다. 반면 콘솔 게임 이용률은 13.3%에서 15.1%로 1.8%p 상승했다. 물론 넥슨 정도의 자본력은 돼야 실험적인 작품과 다양한 플랫폼에서의 신작을 선보일 수 있기도 하다. 다만 이 같은 도전은 넥슨 내부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다수의 국내 게임사들에게도 차기작 개발에 참고할 좋은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시 15세기 이야기를 해보자.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폭풍의 곶을 떠나 동쪽으로 계속해서 이동했으나 얼마 못가 포르투갈로 키를 돌렸다. 지친 선원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탓이다.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항해기를 들은 포르투갈 국왕 주앙2세는 '폭풍의 곶'을 '희망곶'으로 명명했다. 우리가 익히 아는 '희망봉'의 탄생이다. 희망봉은 중세 탐험가들이 생각했던 아프리카의 최남단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희망봉'도 아니었다. 희망봉을 발견한 이들은 결국 본인들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희망봉의 발견은 인도로 가는 바닷길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지속적인 신항로 개척의 원동력이 됐다. 국내 게임사와 게이머들 모두가 신작의 범람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게임사들은 어떤 게임을 개발하고 선보여야 게이머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늘고 있다. 다양한 게임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게이머들의 입맛도 더욱 깐깐해지고 있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더라도 시간낭비라는 느낌이 없게끔 알차게 게임을 즐기고 싶어 한다.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넥슨의 도전이 그래서 반갑다. 넥슨의 계속되는 도전이 미진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MMORPG로 점철된 국내 게임 시장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점은 국내 게임산업의 발전에 거대한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본문에 나오는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항해 관련 내용은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의 저서 <실크로드 사전>을 인용한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고했습니다. -편집자 주-

[정지수의 랜드마크] 넥슨은 어떻게 국산 게임의 희망이 됐나

'데이브 더 다이버'·'더 파이널스' 등 글로벌 시장 호평

정지수 기자 승인 2023.11.01 15:28 의견 1

15세기 포르투갈 출신 항해사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 최남단에 위치한 87m 높이의 곶을 발견한다. 인도를 향한 신항로 개척과 함께 프레스터 존이 다스린다는 전설의 기독교 왕국을 찾기 위한 험난한 항해 과정 속에 만난 장소다.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심한 폭풍우 속에서 마주한 그곳을 '폭풍의 곶'이라 불렀다.

국내 게이머들도 신작 게임 홍수 속에서 쉽게 정착하지 못하고 '할 만한 게임'을 찾아서 표류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 함께 늙어가는 처지인 게임 속 인연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도 '할 게 없다'라는 말이다.

따져 보면 할 게 없지는 않다. 많은 게임이 나왔고 좋은 게임도 많다. 그러나 국내 게이머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가장 쉽고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국산 게임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게임이 없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판교 넥슨코리아 사옥(사진=넥슨)

그런 와중에 넥슨이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지난 2010년대 중반까지만하더라도 일부 신작들의 연이은 흥행 저조 이후 '메이플스토리'와 '피파 온라인(현 FC 온라인)' 시리즈 등에서 악랄한 BM으로 버텼던 그 회사가 이제는 국산 게임의 희망이 됐다. BM은 물론 내부 직원의 일탈과 확률 조작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게임사의 완벽한 변신이다.

변화의 시작은 게이머들과의 소통이었다. 장기간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는 '바람의 나라'와 '테일즈 위버' 등 클래식 RPG는 물론, '블루아카이브'를 포함해 다수의 모바일 신작도 유저들을 위한 행사 및 개발자의 편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에 나섰다.

각 게임의 메인 디렉터들도 이용자와 소통을 주저하지 않았다. 예능 프로그램 느낌의 유튜브 영상도 촬영하고 실시간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 콘텐츠 크리에이터와의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넥슨이 소통을 통해 자사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들의 마음을 돌렸다면 신작을 통해서는 국내에 전반적인 게이머들의 응원까지 끌어내는 분위기다.

'국산' 마크가 붙은 게임도 글로벌 시장에서 이름 좀 날렸으면 한다는 국내 게이머들의 잠재된 열망을 자극했다. 얼핏 진부한 '애국 마케팅'처럼 들리겠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인 '내적 친밀감' 정도로 대체하자. 생소한 해외 게임사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하고 귀에 익은 게임사의 성공이 조금이라도 더 기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넥슨은 그동안 '리니지 라이크'로 불리는 모바일 MMORPG의 범람에 지친 국내 게이머들에게 단비가 될만한 신작을 많이 선보였다. PC·콘솔 플랫폼 해양 어드벤처 게임 '데이브 더 다이버'와 글로벌 FPS 시장 공략을 위해 개발 중인 '더 파이널스' 등이 대표적이다. MMORPG 개발 역량을 오랜 기간 쌓아 온 국내 개발자들이 다른 장르에서도 충분히 뛰어난 작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넥슨표 인디게임 '데이브 더 다이버'. (자료=넥슨)

이 게임들은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9월 출시한 '데이브 더 다이버'는 외신에서 '올해의 게임(GOTY)'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연내 출시를 목표로 오픈 베타 테스트에 돌입한 '더 파이널스'는 스팀 기준 26만명의 일일 동시접속자 수를 기록했다.

넥슨은 서브 브랜드 민트로켓 설립과 함께 '데이브 더 다이버'를 선보였고 이후로도 여의도 좀비물인 '낙원'과 한국풍 액션 '프로젝트V' 등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타 국내 게임사들이 그동안 벌어들인 수익으로 '자기복제'에 가까운 신작 혹은 완성도가 떨어진 작품들로 성장이 지지부진할 때 넥슨은 수익과 완성도를 균형있게 잡아낸 셈이다.

넥슨의 성공적인 이미지 변신은 PC·콘솔 개발에 힘을 쏟으면서 국내 게이머들의 트렌드 변화에 기민하게 움직인 덕분이기도 하다. 한국콘텐츠 진흥원에 따르면 최근 1년 간 국내 게이머들의 모바일 게임 이용률은 62.6%에서 53.2%로 9.4%p 감소했다. 반면 콘솔 게임 이용률은 13.3%에서 15.1%로 1.8%p 상승했다.

물론 넥슨 정도의 자본력은 돼야 실험적인 작품과 다양한 플랫폼에서의 신작을 선보일 수 있기도 하다. 다만 이 같은 도전은 넥슨 내부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다수의 국내 게임사들에게도 차기작 개발에 참고할 좋은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시 15세기 이야기를 해보자.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폭풍의 곶을 떠나 동쪽으로 계속해서 이동했으나 얼마 못가 포르투갈로 키를 돌렸다. 지친 선원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탓이다.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항해기를 들은 포르투갈 국왕 주앙2세는 '폭풍의 곶'을 '희망곶'으로 명명했다. 우리가 익히 아는 '희망봉'의 탄생이다.


희망봉은 중세 탐험가들이 생각했던 아프리카의 최남단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희망봉'도 아니었다. 희망봉을 발견한 이들은 결국 본인들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희망봉의 발견은 인도로 가는 바닷길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지속적인 신항로 개척의 원동력이 됐다.

국내 게임사와 게이머들 모두가 신작의 범람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게임사들은 어떤 게임을 개발하고 선보여야 게이머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늘고 있다. 다양한 게임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게이머들의 입맛도 더욱 깐깐해지고 있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더라도 시간낭비라는 느낌이 없게끔 알차게 게임을 즐기고 싶어 한다.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넥슨의 도전이 그래서 반갑다.

넥슨의 계속되는 도전이 미진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MMORPG로 점철된 국내 게임 시장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점은 국내 게임산업의 발전에 거대한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본문에 나오는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항해 관련 내용은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의 저서 <실크로드 사전>을 인용한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고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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