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산이 안전한 자산일까. 최근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국채는 마치 위험자산처럼 등락한다. 대표적인 위험자산인 비트코인은 고금리와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되레 상승한다.
안전자산을 대변하는 미 국채 금리는 9월 FOMC 회의(19~20일)를 기점으로 속등(국채가격 급락)했다. 더욱이 10월초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이 같은 속등 현상은 가속화됐다. 안전자산으로서 국채가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달러 역시 과거처럼 지정학적 리스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9월 FOMC 회의 이후 상승했지만 10월 들어선 사실상 답보상태다. 한때 안전자산으로 주목받던 엔화 역시 최근까지 약세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위험자산으로 꼽히는 비트코인은 국채금리 급등과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10월 한달간 29%나 급등했다. 유가 역시 최근 이스라엘-하마스간 분쟁의 확전 우려감에도 불구하고 하락세다. 10월 한달간 보여준 혼라스러운 자산가격 흐름은 11월 들어서도 계속된다. 이 같은 기조 변화의 이유는 뭘까. 향후 이 같은 흐름은 지속될까.
하이투자증권은 7일 '이코노미 브리프'를 통해 안전자산과 위험자산간 경계가 모호해진 배경을 분석하고 이 같은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박상현 이코노미스트는 "9월이후 안전자산과 위험자산간 경계 혹은 구분이 모호해진 데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면서 통화정책 영향력 확대, 부채 리스크, 과거와 달라진 국제질서, 투기자금의 쏠림 현상을 이유로 꼽았다.
우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영향력 확대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국채금리와 주가간 상반관계가 약화되고 오히려 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성장보다는 통화정책이나 유동성정책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즉 성장 모멘텀이 과거와 같지 않은 상황에서 유동성 정책이 자산가격에 미치는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됐다는 얘기다.
동시에 미국 경제를 좌우하는 주된 동력이 금리에 민감한 기술주라는 점도 금리와 주가간 동조성을 강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으로 봤다.
부채 리스크에 대해선 "재정수지 적자 확대로 미국 정부 부채 및 이자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 등 미 국채 위상이 과거와 같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며 "이는 미 국채뿐만 아니라 달러화도 안전자산 위상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정치적 불확실성도 미 국채 및 달러화의 안전자산 위상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라고 그는 봤다. 지난 10월 각종 리스크에도 미 국채가격이 급락한 중된 이유 중 하나가 미국 국채 발행 물량 증가 우려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제 질서 변화도 주목할 포인트로 짚었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는 곧 전세계 리스크였다"며 "중동 리스크가 원유 공급 차질이라는 우려와 더불어 종교적 갈등이라는 리스크를 확산시키는 빌미가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 국제 질서에 상당한 변화가 감지된다. 이스라엘-하마스간 분쟁이후 이슬람 국가에서 반이스라엘 및 반미 정서가 고조되고 있지만 원유생산 감축이나 원유수송 차질 등의 사태 악화를 시도하는 중동 국가는 보이지 않는 상황. 이는 미국 등 서방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다시말해 자국 경제에 큰 피해가 없도록 중동 분쟁이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분위기가 중동 리스크 확산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투기자금의 과도한 쏠림 현상도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일부 헤지펀드 자금이 추가 금리 상승을 기대하며 과도하게 숏 포지션을 구축하는 등 자금의 쏠림 현상이 과도했다는 점도 국채 금리 급락으로 인한 주가 급등을 유발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박상현 이코노미스트는 "단기적으로 안전자산 혹은 위험자산으로 단순히 양분화되기보단 통화 및 재정정책, 그리고 인플레이션 흐름에 따라 안전자산과 위험자산 가격 동조화되는 현상이 강화될 여지가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자산이 아니라 자산 가격을 결정하는 변수 혹은 정책"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