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서도 '은행 때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연말 은행권이 역대 최대인 '2조원+α'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방안을 발표했음에도 정부의 '은행=공적' 인식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에 담합 혐의로 검찰의 공소장과 유사한 성격의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심사보고서에는 과징금 부과와 함께 검찰의 법인 고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이들 은행이 부동산 담보인정비율(LTV) 비규제지역에서 주택, 건물, 공장 등의 LTV 정보를 공유한 것을 문제삼고 있다. 일종의 담합 행위를 통해 수 년간 LTV를 경쟁 조건일 때보다 낮게 유지해 경쟁을 제한하고 소비자 후생을 낮췄다는 판단이다.
NH농협은행, IBK기업은행 등 정보 공유에 가담하지 않은 은행의 LTV는 4대 은행보다 높은 수준이어서 이번 심사보고서 발송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의 판단이 맞다면 4대 은행은 최대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공정거래법에서는 담합과 관련한 최대 과징금을 관련 매출의 20%로 규정한다.
은행권은 금융감독원의 강도 높은 현장조사도 앞두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7일 홍콩 H지수 기초 파생결합증권(ELS) 주요 판매사에 대해 현장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종료된 주요 판매사 조사 결과 일부 금융사의 판매 한도관리 미흡 및 법규위반 소지 등 전반적인 판매 관리체계상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견됨에 따라 업권별 최대 판매사를 시작으로 현장점검을 실시한다"고 배경을 전했다.
업권별 최대 판매사는 은행의 경우 국민은행,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이다. 금감원은 이들 회사에 대해 민원조사도 동시에 실시할 예정이다.
홍콩 ELS 판매잔액은 지난해 11월 15일 기준 은행 15조9000억원, 증권 3조4000억원 등 총 19조3000억원에 달한다. 홍콩 H지수가 급반등하지 않는 한 올 상반기까지 수 조원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금감원은 "2019년 DLF 사태 이후 은행권은 고객 이익 보호 중심의 영업을 전제로 고난도 금융상품의 신탁 판매 허용을 요청했었다"며 "고객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영업 행태 등으로 촉발된 위법사항 등이 확인되면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고 예고했다.
공정위와 금감원은 지난해 2월 윤석열 대통령이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금융 분야에 경쟁 촉진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에 따라 관련 대책을 추진해 왔다. 한편으로는 상생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자발적인 '이자이익 토해내기'를, 또 한편으로는 제도개선, 담합조사 등의 정책수단을 동원했다.
정부의 강도 높은 압박에 은행권은 지난해 말 '2조원+α'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방안을 내놓았지만 당국의 '은행 때리기'는 최소 4월 총선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가뜩이나 고액 연봉자들이 많은 은행권이 성과급 잔치, 명예퇴직금 퍼주기 등의 관행을 지속하는 데 대해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출이 실행될 때 LTV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조건들이 검토되고 반영되기 때문에 단순한 정보 공유를 담합으로 몰고가는 것은 은행 입장에서 억울한 측면이 있다"며 "결국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을텐데 과거 사례들처럼 변호사들만 좋은 일 시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