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K금융그룹 이사회 현황(자료=BNK금융 홈페이지)
이찬진 금융감독원 원장이 ‘참호 구축론’을 제기하며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관행을 직격한 가운데 이슈를 촉발시킨 BNK금융그룹의 빈대인 회장이 실제로 참호를 구축했는지에 금융권 안팎의 관심이 모아진다.(관련 기사 : 금감원장이 불쑥 던진 ‘참호 구축론’...금융지주는 ‘억울하다’)
BNK금융그룹은 금융당국의 모범관행에 맞춰 문제 없이 경영승계 절차를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형식적으로만 모범관행을 따르고 내용적으론 과거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BNK금융그룹 이사회는 빈대인 회장 외 7인의 사외이사 등 총 8인으로 구성돼 있다. 사외이사 7인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이광주 사외이사는 한국은행에서 35년간 재직한 금융통이다. 2023년 빈 회장과 함께 임기를 시작했다. 기획재정부 출신인 김병덕 사외이사, 한국해양대 법대 교수인 정영석 교수도 2023년 빈 회장과 함께 임기를 시작했다.
나머지 4인은 빈 회장 취임 이후 사외이사를 맡았다. 오명숙(홍익대 신소재화공시스템공학부 교수), 서수덕(경성대 회계학과 교수), 김남걸(롯데캐피탈 출신) 사외이사는 지난해 3월, 박수용(서강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 학장) 사외이사는 올해 3월 각각 선임됐다.
이 가운데 차기 회장 선임에 관여하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위원은 이광주 의장을 비롯한 정영석, 서수덕, 박수용 사외이사 등 4인이다. 이광주·정영석 사외이사는 빈 회장과 함께 임기를 시작했고, 서수덕·박수용 사외이사는 빈 회장 취임 이후인 2024~2025년 임기를 시작했다.
BNK금융 임추위는 지난 13일 “공정성과 투명성,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에 기반한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검증을 위해 경영승계절차를 진행해 10월 현재 상시 후보군을 대상으로 지원서를 접수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영석 임추위원장은 “최고경영자 후보 추천은 BNK금융그룹 경영승계 계획에 따라 최고 수준의 공정성과 투명한 절차를 통해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흠잡을 데가 별로 없어 보인다. 임추위 위원 4인 중 2인(서수덕·박수용)만 빈 회장 취임 이후 선임됐고, 그마저도 회계, IT 등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인사다. 빈 회장이 참호를 구축하기 위해 공을 들인 인사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금융 전문성이 부족하기에 그룹의 명운을 좌우하는 최고경영자 선임에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표출하기보단 대세에 힘을 보태는 보완적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분위기와 방향은 이광주 의장과 정영석 위원장이 주도할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그중에서도 이광주 의장의 의중과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인적 구성이다. 정영석 위원장은 BNK금융 지배구조 연차보고서에 제시된 ‘스킬 매트릭스’ 상 금융·경제·경영·재무회계·법률 5대 필수 역량 가운데 법률 항목에만 체크가 돼 있다. 반면, 이광주 의장은 금융회사 경영의 핵심 역량인 금융·경제·경영 3개 항목에 체크가 돼 스킬의 범위가 넓다.
게다가 이 의장은 사내이사인 빈 회장과 지주 임기를 동시에 시작했지만 함께 일한 인연은 훨씬 길다. 2017년 부산은행 사외이사를 맡아 빈 회장의 부산은행장 재임 시기와 겹친다. 2019년에는 부산은행 이사회 의장까지 역임했다. 3년 후 BNK금융지주 사외이사 후보군에 포함됐고, 2023년 사외이사에 선임된 후 올해 재선임돼 이사회 의장까지 맡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지주에서 최고경영자를 뽑을 때 내부 사정을 전혀 모르는 이사가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도 이상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계열사 사외이사 출신 등 그룹과 인연이 깊은 이에게 주도권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며 “BNK금융의 경우 올해 이광주 의장에게 그 역할이 주어진 것 같다”고 해석했다.
결국 빈 회장이 사외이사 선임에 개입하며 참호를 구축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부산은행장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온 이광주 의장이 차기 CEO 선임에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정황상 빈 회장의 연임에 여러 모로 유리한 국면이 조성돼 있다는 해석에도 무리가 없다는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미리 결론이 난 ‘짬짜미 승계’라는 의혹의 시선도 있다. 사외이사 후보 추천 내역 공시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재선임된 이광주·김병덕·정영석 이사를 추천한 이는 지난해 이사회에 새로 합류한 김남걸 사외이사다. 후배 이사 1인이 선배 이사 3인의 연임을 추천한 것이다.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사외이사 추천이 진행됐다기보다 연임으로 결론이 난 상태에서 끼워맞추기 식으로 추천이 이뤄진 정황이 짙다. 김남걸 사외이사는 롯데그룹이 추천한 인사이고, 롯데그룹은 BNK금융지주 지분 10.67%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7인의 사외이사 가운데 롯데그룹과 인연이 있는 이는 롯데캐피탈 출신의 김남걸 이사가 유일하다.
이에 대해 BNK금융 관계자는 “사외이사와 감사위원 추천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임기 만료된 사외이사의 재추천을 이사 서로 간 추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김남걸 이사가 모두 추천하는 모양새가 됐다”며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라 적절하게 절차가 진행됐지만 이사진 구성과 관련해 일부 개선 의견도 제기되고 있어 보완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한편,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BNK금융그룹의 경영승계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7일 열린 정무위 종합감사에서 이찬진 금감원장에게 향후 구체적인 대책에 대해 재차 물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구두 지도를 일단 하고 있다. 특정 금융지주만 하는 게 아니라 금융지주사들 전체에 대해 공통적으로 모범관행에 기초해 말씀을 좀 드리고 있다”며 “만약에 BNK쪽에서 어떤 특이한 사항들이 발견되면 곧바로 조사나 관련 조치를 진행할 것”이라고 답했다.
BNK금융 이사회의 집합적 정합성(자료=BNK금융 2024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