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급격한 금리인상의 후유증으로 여전히 몸살을 앓는다. 지난해 장기 국채 매각 손실로 SVB(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태가 발생했다면 올해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CRE)쪽 파장이다.
국내 금융권의 경우 홍콩 ELS(주가연계증권)에 이어 미국 CRE에서도 대규모 손실이 현실화함에 따라 선제적인 충당금 적립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현재 관련 펀드 손실율은 10% 안팎 수준이나 사태가 악화할 경우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
■ SVB 파산과 닮은꼴...이번엔 NYCB
지난해 이맘때에는 미국 SVB에서 문제가 일어났다. 급격한 금리상승으로 보유 중이던 장기 국채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자 뱅크런으로 이어졌고 지난해 3월 10일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근본 원인은 금리 급등이었다.
약 1년 뒤인 현재, 미국의 지역 은행인 NYCB(뉴욕커뮤니티뱅코프)에서 공포감이 번지고 있다. 고금리 직격탄을 맞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CRE)에서 대규모 부실이 우려되자 대손충당금을 쌓기 위해 매년 지급하던 배당금을 70% 가까이 줄이기로 결정한 것. 파산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SVB처럼 주가가 60% 폭락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단행했던 급격한 금리 인상 조치가 일정 간격을 두고 금융 시장을 거쳐 부동산 시장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모양새다. 미국 현지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몸살을 앓고 있다. 일본 아오조라은행은 최 미국 CRE 부실을 우려해 올해 1분기 예상 실적을 당초 흑자에서 대폭 적자로 수정했다. 유럽 및 한국 은행들도 관련 부실을 우려해 대규모 충당금을 쌓고 있다.
■ 5대 금융지주 투자액만 20조...'북미 집중'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실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금융지주의 해외 부동산 투자는 총 782건(20조3868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약 56%(11조4000억원)는 미국·캐나다 등 북미 지역 부동산이 차지한다. 5대 지주 계열별로는 은행 7조5333억원, 증권 3조5839억원, 생명보험 2조7674억원, 손해보험 1조6870억원 등이다.
손실액을 살펴보면 5대 금융지주가 대출 채권을 제외하고 수익증권과 펀드 등에 투자한 금액은 10조4446억원(512건) 수준이다. 현재 이 자산들의 평가 가치는 9조3444억원으로, 원금대비 1조1002억원(-10.53%)의 손실이 난 상태다. 주로 미국 CRE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5대 지주가 지난해 실적에 반영한 해외 부동산 관련 손실액은 1조550억원에 달한다.
시중은행들이 국내 부동산 PF 부실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접근으로 손실이 제한적이지만 해외 부동산 투자에서는 이미 대규모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대형은행은 위험 관리가 가능하지만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많은 중소형 지역은행의 일부는 문을 닫거나 다른 은행에 인수될 것"이라며 "앞으로 수년간 상당한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 은행 파산 기정사실화..."만성 부담" 우려
그럼에도 올해 금리인하 소식은 국내든 해외든 하반기는 돼야 들려올 전망이다. 현재 전문가들 관측은 '예상보다 금리인하 시점이 늦어지고, 인하폭도 크지 않을 것'이란 쪽으로 모아진다. 제롬 파월 의장은 상업용 부동산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시장에 내보내고 있다. 다만, 미국에서 부동산발 은행 연쇄 파산 등 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반전의 여지는 있다.
삼성증권은 지난 16일 내놓은 '미국 CRE 시장 점검' 보고서에서 "현재 CRE 시장은 역대 가장 빠른 가격 하락속도를 보이고 있는데 피치(Fitch)는 CRE 가격이 40% 하락시 소형은행이 파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며 "지난해 SVB 사태가 일부 지역은행에서 나타난 예상치 못한 뱅크런이었다면 올해 (CRE는) 관련 업종 전반의 손실 현실화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다만,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낮게 봤다. 보고서를 작성한 애널리스트들(이경자·김재우·정민기)은 "수차례 위기를 겪으며 적기에 정책이 개입하고 있고 과거와 달리 대형은행과 기업들의 손실 흡수력이 개선됐다"며 "(다만) 리스크 해소까지 상당 시간이 걸릴 전망이어서 시장에 만성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봤다.
자료=삼성증권
자료=삼성증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