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 유행 주기도 한달이 안 되는 시대, 증권가의 시계추는 조금 다른가 싶습니다. 회사 간판이 사라진지 8년, 하지만 대우증권 출신들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심지어 더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금융지주가 증권업 재진출의 밑그림을 그리면서 대우증권 출신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있습니다. 모이는 인사들 면면을 보면 대우증권에서 ‘일머리’가 있다고 꼽히던 이름들이 곳곳에 눈에 띕니다. 특히 남기천 우리종합금융 대표와 함께 대우증권에서 인사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로 꼽혔던 홍순만 인사본부장이 함께 판을 짜면서 등판 라인업 명단을 지켜보는 것도 요즘 증권가 하나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미래에셋증권과 합병으로 간판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나로 뭉쳐지는 현실을 보고 있자니 증권업에서 ‘맨파워’ 중요성이 얼마나 큰 지 새삼 실감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체 그 경쟁력이 어느 정도이길래, '구태여' 라는 의구심이 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사진=옛 대우증권 트레이딩센터 모습) ■ 무조건 1등, 습관이 된 도전 동양증권을 모태로 한 대우증권은 우리나라 증권사의 태동기부터 남달랐습니다. 그리고 1973년 대우실업의 계열사로 편입됐던 동양증권은 1983년 삼보증권과 인수합병을 계기로 완전한 선두를 차지합니다. 당시 1위였던 삼보증권과 2위였던 동양증권의 결합을 통해 지점 수부터 고객자산, 자본금까지 전부분에서 압도적 1등의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죠. 대우증권의 목표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무조건 1등’. 1992년 외국인의 국내 주식거래가 처음 시작될 때에도, 통화채투자신탁수익증권(BMF) 등 파생상품 시장이 새롭게 열릴 때에도 대우증권에게 가장 먼저 변화를 감지하고 대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을 거치기 이전까지 대우그룹 계열사라는 것이 상당한 배경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대우그룹 내에서 1등을 한 유일한 자회사가 바로 대우증권이기도 합니다. 대우전자, 대우자동차 등이 경쟁사를 앞선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주식시장에서 1등은 물론, 그룹 내에서 역시 ‘우리라도 1등을 지켜내자’는 의욕이 더 커진 것도 사실입니다. 당시 선두권에서 함께 경쟁하던 쌍용증권, LG증권 등이 “확실한 2등”을 목표로 내걸었을 정도라고 하니 대우증권의 당시 파워를 짐작할 만합니다. 이 같은 대우증권의 가장 근본적인 경쟁력은 기본적인 조직의 문화에서 기인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입니다. “선배는 후배를 챙기고 후배는 선배를 따르는 문화가 강했죠. 서로가 키워주고 끌어주고 동반성장하는 것이 당연시될 정도로 몸에 깊이 베어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입니다.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이 시작되면 함께 준비해서 1등을 해야 한다는 목표 의식이 있으니 새로운 것에 대해 과감히 투자하는 것도 당연한 습관처럼 여겨졌죠.” 대우증권의 마지막 사장직을 지낸 홍성국 전 의원은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김창희 전 사장 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민간 경제연구소로는 최초인 대우경제연구소를 만든 김 전 사장은 리서치센터 육성에 적극 나서면서 사실상 우리나라 투자 문화 조성에 상당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리서치센터의 위상이 지금은 많이 위축됐지만 대우증권의 이 같은 전략은 금융시장 전반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한다면 하는 문화’ 역시 상당했습니다. 조직에서 동기를 부여하고 이것을 직원들이 성취해내는 것들이 반복적으로 쌓이면서 어떠한 목표라도 달성해내는 트레이닝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습니다. 하다 못해 목표가 주어지면 직원들이 대우전자의 가전제품부터 대우자동차의 자동차까지도 팔았다고 하니 지금 생각해봐도 입이 떡 벌어질 이야기입니다. (사진=현재 미래에셋증권이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옛 대우증권 사옥 건물) ■ 자본+인재= 성공? 다시 시계를 현재로 돌려봅니다. 최근 증권가에서 대우맨들이 다시 움직이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증권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우리금융지주가 한국포스증권 인수를 통해 시작하는 사업이지만 살림으로 친다면 사실상 숟가락 하나까지 다 새로 장만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소위 ‘일머리’를 아는 대우증권의 맨파워가 절실한 것이겠죠. 하지만 이들 명함 앞에 붙는 타이틀은 대우증권이 아닌, 우리투자증권. 결국 시장의 관심은 그래서 이들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낼 수 있느냐는 것이죠. 대우증권 ‘올드맨’들에게 물었습니다. “증권업은 자본과 사람이 전부입니다. 우리금융의 자본력과 대우증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간다면 기대해봄 직하죠. 은행의 마인드로 접근한다면 금융지주라는 게 한계일 수 있지만 일단 임종룡 회장이 증권업에 대한 마인드가 있으니 장기적으로 이런 분리가 잘 유지된다면 10년 안에 10등? 어렵지 않을 거라 봅니다.” 물론, 늘 그렇듯 핑크빛 기대만 있지는 않습니다. “대우증권이 해체되고 8년동안 이들도 다른 곳들을 거치며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일단 연령들이 높아졌죠. 또, 우리금융이 은행계열로서 갖고 있는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색깔들이 있기 때문에 두 조직이 만나 어떤 시너지를 낼 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성취감과 동기부여를 함께 줄 수 있는 기업의 문화, 무엇보다 직원-경영진-그룹의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지는 게 중요할 겁니다.” 사옥까지도 옛 대우증권이 사용했던 건물을 점찍으며 벤치마크, 아니 데칼코마니에 나선 우리투자증권은 또 한번 대우증권 DNA의 저력을 확인시켜줄 수 있을까요. ‘큰 형님들’이 이끄는 업계 ‘막내’의 등판을 지켜보는 관전잼이 쏠쏠합니다.

대우맨들에게 물어본 우리투자증권 성공 확률 [뷰파인더]

가장 먼저 준비하고 계속해서 지켜낸 습관적 1등 DNA
"한다면 한다!" 자동차도 팔았던 영업력
임종룡 회장의 지원 사격, 은행과 장벽은 필수

박민선 기자 승인 2024.06.27 15:30 의견 0

‘밈’ 유행 주기도 한달이 안 되는 시대, 증권가의 시계추는 조금 다른가 싶습니다. 회사 간판이 사라진지 8년, 하지만 대우증권 출신들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심지어 더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금융지주가 증권업 재진출의 밑그림을 그리면서 대우증권 출신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있습니다. 모이는 인사들 면면을 보면 대우증권에서 ‘일머리’가 있다고 꼽히던 이름들이 곳곳에 눈에 띕니다.

특히 남기천 우리종합금융 대표와 함께 대우증권에서 인사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로 꼽혔던 홍순만 인사본부장이 함께 판을 짜면서 등판 라인업 명단을 지켜보는 것도 요즘 증권가 하나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미래에셋증권과 합병으로 간판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나로 뭉쳐지는 현실을 보고 있자니 증권업에서 ‘맨파워’ 중요성이 얼마나 큰 지 새삼 실감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체 그 경쟁력이 어느 정도이길래, '구태여' 라는 의구심이 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사진=옛 대우증권 트레이딩센터 모습)


■ 무조건 1등, 습관이 된 도전

동양증권을 모태로 한 대우증권은 우리나라 증권사의 태동기부터 남달랐습니다. 그리고 1973년 대우실업의 계열사로 편입됐던 동양증권은 1983년 삼보증권과 인수합병을 계기로 완전한 선두를 차지합니다. 당시 1위였던 삼보증권과 2위였던 동양증권의 결합을 통해 지점 수부터 고객자산, 자본금까지 전부분에서 압도적 1등의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죠.

대우증권의 목표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무조건 1등’. 1992년 외국인의 국내 주식거래가 처음 시작될 때에도, 통화채투자신탁수익증권(BMF) 등 파생상품 시장이 새롭게 열릴 때에도 대우증권에게 가장 먼저 변화를 감지하고 대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을 거치기 이전까지 대우그룹 계열사라는 것이 상당한 배경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대우그룹 내에서 1등을 한 유일한 자회사가 바로 대우증권이기도 합니다. 대우전자, 대우자동차 등이 경쟁사를 앞선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주식시장에서 1등은 물론, 그룹 내에서 역시 ‘우리라도 1등을 지켜내자’는 의욕이 더 커진 것도 사실입니다. 당시 선두권에서 함께 경쟁하던 쌍용증권, LG증권 등이 “확실한 2등”을 목표로 내걸었을 정도라고 하니 대우증권의 당시 파워를 짐작할 만합니다.

이 같은 대우증권의 가장 근본적인 경쟁력은 기본적인 조직의 문화에서 기인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입니다.

“선배는 후배를 챙기고 후배는 선배를 따르는 문화가 강했죠. 서로가 키워주고 끌어주고 동반성장하는 것이 당연시될 정도로 몸에 깊이 베어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입니다.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이 시작되면 함께 준비해서 1등을 해야 한다는 목표 의식이 있으니 새로운 것에 대해 과감히 투자하는 것도 당연한 습관처럼 여겨졌죠.” 대우증권의 마지막 사장직을 지낸 홍성국 전 의원은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김창희 전 사장 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민간 경제연구소로는 최초인 대우경제연구소를 만든 김 전 사장은 리서치센터 육성에 적극 나서면서 사실상 우리나라 투자 문화 조성에 상당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리서치센터의 위상이 지금은 많이 위축됐지만 대우증권의 이 같은 전략은 금융시장 전반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한다면 하는 문화’ 역시 상당했습니다. 조직에서 동기를 부여하고 이것을 직원들이 성취해내는 것들이 반복적으로 쌓이면서 어떠한 목표라도 달성해내는 트레이닝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습니다. 하다 못해 목표가 주어지면 직원들이 대우전자의 가전제품부터 대우자동차의 자동차까지도 팔았다고 하니 지금 생각해봐도 입이 떡 벌어질 이야기입니다.

(사진=현재 미래에셋증권이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옛 대우증권 사옥 건물)


■ 자본+인재= 성공?

다시 시계를 현재로 돌려봅니다. 최근 증권가에서 대우맨들이 다시 움직이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증권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우리금융지주가 한국포스증권 인수를 통해 시작하는 사업이지만 살림으로 친다면 사실상 숟가락 하나까지 다 새로 장만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소위 ‘일머리’를 아는 대우증권의 맨파워가 절실한 것이겠죠.

하지만 이들 명함 앞에 붙는 타이틀은 대우증권이 아닌, 우리투자증권. 결국 시장의 관심은 그래서 이들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낼 수 있느냐는 것이죠.

대우증권 ‘올드맨’들에게 물었습니다.

“증권업은 자본과 사람이 전부입니다. 우리금융의 자본력과 대우증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간다면 기대해봄 직하죠. 은행의 마인드로 접근한다면 금융지주라는 게 한계일 수 있지만 일단 임종룡 회장이 증권업에 대한 마인드가 있으니 장기적으로 이런 분리가 잘 유지된다면 10년 안에 10등? 어렵지 않을 거라 봅니다.”

물론, 늘 그렇듯 핑크빛 기대만 있지는 않습니다.

“대우증권이 해체되고 8년동안 이들도 다른 곳들을 거치며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일단 연령들이 높아졌죠. 또, 우리금융이 은행계열로서 갖고 있는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색깔들이 있기 때문에 두 조직이 만나 어떤 시너지를 낼 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성취감과 동기부여를 함께 줄 수 있는 기업의 문화, 무엇보다 직원-경영진-그룹의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지는 게 중요할 겁니다.”

사옥까지도 옛 대우증권이 사용했던 건물을 점찍으며 벤치마크, 아니 데칼코마니에 나선 우리투자증권은 또 한번 대우증권 DNA의 저력을 확인시켜줄 수 있을까요. ‘큰 형님들’이 이끄는 업계 ‘막내’의 등판을 지켜보는 관전잼이 쏠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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