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업협동조합중앙회, 농협경제지주, 농협금융지주 등의 국정감사에서 강호동 농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4.10.18(자료=연합뉴스) 언젠가부터 ‘농협’ 뒤에는 ‘개혁’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습니다. 도대체 농협에는 무슨 문제가 그리 많길래 상시 개혁의 대상이 된 걸까요.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의 역사와 특성을 잠깐 이해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농민은, 인류 생존의 열쇠를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곤 했습니다. 농민이 생존하기 위해선 '농자재 구매'와 '농산물 판매' 간 선순환이 중요한데, 고리대금과 매점매석이 끼어들면 선순환을 기대하긴 어려워집니다. 흉년이라도 들면 수입은커녕 빚만 눈덩이처럼 쌓입니다. 악덕 지주와 상인들은 농민들의 이런 약한 고리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 19세기 덴마크 등 서구의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뭉쳤습니다. 바로 협동조합의 탄생입니다. 19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창립 100주년을 맞아 채택한 성명에선 협동조합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립니다.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를 통해 그들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염원을 충족하고자 자발적으로 결합한 사람들의 자율적인 결사체다.” 여기서 핵심 키워드는 ‘민주적’, ‘자발적’, ‘자율적’ 세 단어입니다. 실제 서구의 많은 협동조합들은 자발적으로 생겨나 민주적, 자율적으로 운영돼 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협동조합들은 태생적으로 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농업협동조합만 해도 일제가 조직한 관제조합이 뿌리의 한 축입니다. 1920년대 민간협동조합이 태동했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대부분 강제 해산의 길을 걸었습니다. 해방 후 농민들의 협동조합도 사실상 정부의 주도 하에 설립됩니다. 1950년대 나라의 주요 산업은 농업이었으므로 행정부(농림부-재경부)와 입법부(농림위-재경위)에서 밥그릇 싸움, 즉 농업 관할 쟁탈전은 치열했습니다. 이는 결국 1957년 농업은행법과 농업협동조합법이 각각 제정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농민 생존의 선순환 조건, 즉 자금지원(신용사업)과 유통·판매지원(경제사업)의 체계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다 1961년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두 법은 폐지되고 새로운 단일 농협법이 제정됩니다. 농협이 농협은행의 기능까지 흡수하게 된 것이죠. 대신 농협은 완전히 정부의 손아귀에 들어갑니다. 농협중앙회 회장을 정부가 임명했고, 조합장은 중앙회 회장이 농림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임명토록 했습니다. 농협 간부에 농민은 배제되고 군인과 관료만 득실득실했습니다. 군사정부는 1중앙회, 1구역1조합, 조합승인권 등을 법으로 정해 농민들의 다른 자발적 조직 결성을 원천 봉쇄했습니다. 정부가 농협을 매개체로 농업과 농민을 엄격히 통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죠. 농협은 준정부기관이 돼 각종 농업 예산과 사업에서 독점적 권한을 행사하게 됩니다. 농협중앙회의 낙하산 간부들은 법으로 규정된 독점적 특권을 누리며 주객 전도의 상황을 자주 연출합니다. 농민을 지원하는 본래의 목적보다 이자 장사를 통한 사세 확장에 더 열을 올린 것이죠.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농민 이익을 침해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오죽하면 ‘농협은 농민의 피를 빨아먹는 조직’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협동조합의 생명인 자발, 민주, 자율이 부재하니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농민'을 위한 농협이 아니라 '군인·관료'를 위한 농협이라는 비판이 비등해질 무렵, 군사정권이 몰락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이 때부터 억눌렸던 ‘농협 개혁’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옵니다. 중앙회 회장의 권한 축소와 함께 신경분리(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는 농협 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농림부와 한 몸이 된 중앙회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독립사업부제를 고집하며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관철시킵니다. 노무현 정부 들어 더 이상 신경분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서는 분리 시기와 방식을 최대한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로비를 펼쳐 또 관철시킵니다. 결국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농어촌발전위원회에서 시작된 신경분리 개혁 과제는 20여 년이 지나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서야 지주회사 방식(농협금융지주-농협경제지주)으로 확정돼 현재에 이릅니다. 어렵사리 농협의 지배구조가 완성되고 12년이 흐른 지금, 논란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특히 올해에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농협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며 메스를 들이대 그 결과에 이목이 쏠려 있습니다. 핵심 계기는 NH투자증권이 제공했습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금융 경력이 없는 이를 차기 CEO로 추천하면서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마찰을 빚은 것이죠. 심판격인 금감원은 그렇지 않아도 농협금융에서 사고가 많이 일어나 달갑지 않게 바라보던 참이었습니다. 이 원장은 “지배구조법상의 규율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며 지주, 은행, 증권 등 전방위적인 현장검사를 지시했습니다. 중앙회의 금융지주에 대한 경영 간섭에 문제가 많다는 심증을 바탕에 깔고 내린 조치였습니다. 떠들썩하게 조사가 진행됐지만 결론적으로 농협중앙회의 타격은 미미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조사 개시 7개월이 지난 뒤 지난주 흘러나온 금감원의 조치 사항은 ‘중앙회의 영향력 행사를 공식적이고 투명하게 관리하라’는 권고 정도가 전부입니다. 이런 결말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됐습니다. 농협의 지배구조 변경은 차관급인 금감원장이 손댈 수 있는 사안은 아닙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고, 국회에서 법을 바꾸려면 농해수위, 기재위, 정무위 등 여러 상임위원회의 손을 거쳐야 합니다. 대선 공약으로 못박아도 이해관계가 얽혀 실행이 어려운 것이 농협 개혁입니다. 금감원의 칼춤에 콧방귀를 끼는 분위기는 지난 18일 농협중앙회 국정감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은 지난 3월 강호동 회장과 이석준 회장 간 갈등을 첫 질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농협 지배구조 문제에 뭔가 심도 있는 발언이 나올 거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알력 관계 형성하지 마세요”라며 질의는 급히 마무리됩니다. 경제지주와 달리 금융지주는 조 단위 수익을 내는 ‘황금 거위’인데 볼썽사납게 마찰을 일으키지 말고 실리만 잘 챙기라는 당부로 들렸습니다. 전남 여수를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주철현 의원은 “농협은 농협법이 우선”이라며 좀 더 노골적으로 중앙회 편을 듭니다. 금감원이 중앙회 비판의 근거로 삼는 은행법이나 지주회사법은 농협에 한해선 농협법의 하위 법일 뿐이라는 견해입니다. 한 마디로 ‘월권을 일삼는 금감원은 무시해도 된다’는 취지의 발언입니다. 강호동 회장 역시 이 발언에 맞장구치며 질의는 훈훈하게 마무리됩니다. 4년 임기의 농협중앙회 회장은 ‘농민대통령’으로 불립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부럽지 않은 권한을 갖습니다. 이는 군사정권이 독점적 지위를 보장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농민이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흘러왔습니다. 그리고 제25대 회장으로 강호동 회장이 취임했습니다. 그는 15년 만에 부활된 직선 체제의 초대 회장이지요. 그 어느 때보다 권위와 정당성이 부여된 회장입니다. 강 회장에게 농협 개혁은 ‘농협을 좀 더 농민 중심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금융지주, 경제지주 양 지주의 수장은 상징성 측면에서라도 농민 대표가 맡는 것이 적절합니다. 강 회장에게 금융의 전문성은 그 다음 고려사항입니다. 금감원이 칼춤을 출 당시에는 ‘개혁의 대상이 개혁을 하려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지만 현재 상황은 미묘하게 변한 것 같습니다. 금감원 조사는 용두사미로 끝났고, 국정감사는 강 회장에게 별다른 타격을 가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힘을 실어줬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지도 모릅니다.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NH농협은행의 금융사고는 잇따라 또 터졌습니다. 현실적으로 농협금융 개혁의 주체는 강 회장일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고 있습니다. 다만, 금융지주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더라도 강 회장에게는 훨씬 더 풀기 어려운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협동조합의 본질이자 지속가능성의 원천인 자발성, 민주성, 자율성을 강화하는 일입니다. 이를 현실화하려면 본인이 가진 권한과 특권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모든 통치자들이 십중팔구 실패한다는 ‘스스로에게 칼을 대는 것’ 말입니다. 물론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농협 내부 분위기는 일치단결과는 거리가 멉니다. 전국 사방팔방에서 더 많은 지원을 호소합니다. 농어촌 현장은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관료들은 여차하면 치고 들어올 기세입니다. 강 회장은 과연 ‘톱다운’에 익숙한 중앙회를 ‘바텀업’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까요. 또 금융지주 인사 문제는 현명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요. 여러 모로 ‘솔로몬의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뷰파인더] 코너는 국내 금융회사의 이슈와 전략을 조금 더 실감나게 보여주는 콘텐츠입니다. 현재의 기업 전략을 이해하려면 기업의 발자취, 그간의 경영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기업 CEO와 대주주에 대한 평가도 있어야겠죠. 이를 통해 기업의 성장성과 미래를 입체적으로 살피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농협 조직 구성(자료=NH농협 홈페이지)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풀어야 할 고차방정식[뷰파인더]

최중혁 기자 승인 2024.10.28 11:00 | 최종 수정 2024.10.28 11:34 의견 0
18일 오전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업협동조합중앙회, 농협경제지주, 농협금융지주 등의 국정감사에서 강호동 농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4.10.18(자료=연합뉴스)


언젠가부터 ‘농협’ 뒤에는 ‘개혁’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습니다. 도대체 농협에는 무슨 문제가 그리 많길래 상시 개혁의 대상이 된 걸까요.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의 역사와 특성을 잠깐 이해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농민은, 인류 생존의 열쇠를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곤 했습니다. 농민이 생존하기 위해선 '농자재 구매'와 '농산물 판매' 간 선순환이 중요한데, 고리대금과 매점매석이 끼어들면 선순환을 기대하긴 어려워집니다. 흉년이라도 들면 수입은커녕 빚만 눈덩이처럼 쌓입니다. 악덕 지주와 상인들은 농민들의 이런 약한 고리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 19세기 덴마크 등 서구의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뭉쳤습니다. 바로 협동조합의 탄생입니다.

19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창립 100주년을 맞아 채택한 성명에선 협동조합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립니다.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를 통해 그들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염원을 충족하고자 자발적으로 결합한 사람들의 자율적인 결사체다.”

여기서 핵심 키워드는 ‘민주적’, ‘자발적’, ‘자율적’ 세 단어입니다. 실제 서구의 많은 협동조합들은 자발적으로 생겨나 민주적, 자율적으로 운영돼 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협동조합들은 태생적으로 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농업협동조합만 해도 일제가 조직한 관제조합이 뿌리의 한 축입니다. 1920년대 민간협동조합이 태동했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대부분 강제 해산의 길을 걸었습니다. 해방 후 농민들의 협동조합도 사실상 정부의 주도 하에 설립됩니다.

1950년대 나라의 주요 산업은 농업이었으므로 행정부(농림부-재경부)와 입법부(농림위-재경위)에서 밥그릇 싸움, 즉 농업 관할 쟁탈전은 치열했습니다. 이는 결국 1957년 농업은행법과 농업협동조합법이 각각 제정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농민 생존의 선순환 조건, 즉 자금지원(신용사업)과 유통·판매지원(경제사업)의 체계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다 1961년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두 법은 폐지되고 새로운 단일 농협법이 제정됩니다. 농협이 농협은행의 기능까지 흡수하게 된 것이죠.

대신 농협은 완전히 정부의 손아귀에 들어갑니다. 농협중앙회 회장을 정부가 임명했고, 조합장은 중앙회 회장이 농림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임명토록 했습니다. 농협 간부에 농민은 배제되고 군인과 관료만 득실득실했습니다. 군사정부는 1중앙회, 1구역1조합, 조합승인권 등을 법으로 정해 농민들의 다른 자발적 조직 결성을 원천 봉쇄했습니다. 정부가 농협을 매개체로 농업과 농민을 엄격히 통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죠. 농협은 준정부기관이 돼 각종 농업 예산과 사업에서 독점적 권한을 행사하게 됩니다.

농협중앙회의 낙하산 간부들은 법으로 규정된 독점적 특권을 누리며 주객 전도의 상황을 자주 연출합니다. 농민을 지원하는 본래의 목적보다 이자 장사를 통한 사세 확장에 더 열을 올린 것이죠.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농민 이익을 침해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오죽하면 ‘농협은 농민의 피를 빨아먹는 조직’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협동조합의 생명인 자발, 민주, 자율이 부재하니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농민'을 위한 농협이 아니라 '군인·관료'를 위한 농협이라는 비판이 비등해질 무렵, 군사정권이 몰락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이 때부터 억눌렸던 ‘농협 개혁’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옵니다.

중앙회 회장의 권한 축소와 함께 신경분리(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는 농협 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농림부와 한 몸이 된 중앙회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독립사업부제를 고집하며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관철시킵니다. 노무현 정부 들어 더 이상 신경분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서는 분리 시기와 방식을 최대한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로비를 펼쳐 또 관철시킵니다. 결국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농어촌발전위원회에서 시작된 신경분리 개혁 과제는 20여 년이 지나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서야 지주회사 방식(농협금융지주-농협경제지주)으로 확정돼 현재에 이릅니다.

어렵사리 농협의 지배구조가 완성되고 12년이 흐른 지금, 논란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특히 올해에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농협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며 메스를 들이대 그 결과에 이목이 쏠려 있습니다. 핵심 계기는 NH투자증권이 제공했습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금융 경력이 없는 이를 차기 CEO로 추천하면서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마찰을 빚은 것이죠. 심판격인 금감원은 그렇지 않아도 농협금융에서 사고가 많이 일어나 달갑지 않게 바라보던 참이었습니다. 이 원장은 “지배구조법상의 규율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며 지주, 은행, 증권 등 전방위적인 현장검사를 지시했습니다. 중앙회의 금융지주에 대한 경영 간섭에 문제가 많다는 심증을 바탕에 깔고 내린 조치였습니다.

떠들썩하게 조사가 진행됐지만 결론적으로 농협중앙회의 타격은 미미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조사 개시 7개월이 지난 뒤 지난주 흘러나온 금감원의 조치 사항은 ‘중앙회의 영향력 행사를 공식적이고 투명하게 관리하라’는 권고 정도가 전부입니다. 이런 결말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됐습니다. 농협의 지배구조 변경은 차관급인 금감원장이 손댈 수 있는 사안은 아닙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고, 국회에서 법을 바꾸려면 농해수위, 기재위, 정무위 등 여러 상임위원회의 손을 거쳐야 합니다. 대선 공약으로 못박아도 이해관계가 얽혀 실행이 어려운 것이 농협 개혁입니다.

금감원의 칼춤에 콧방귀를 끼는 분위기는 지난 18일 농협중앙회 국정감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은 지난 3월 강호동 회장과 이석준 회장 간 갈등을 첫 질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농협 지배구조 문제에 뭔가 심도 있는 발언이 나올 거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알력 관계 형성하지 마세요”라며 질의는 급히 마무리됩니다. 경제지주와 달리 금융지주는 조 단위 수익을 내는 ‘황금 거위’인데 볼썽사납게 마찰을 일으키지 말고 실리만 잘 챙기라는 당부로 들렸습니다.

전남 여수를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주철현 의원은 “농협은 농협법이 우선”이라며 좀 더 노골적으로 중앙회 편을 듭니다. 금감원이 중앙회 비판의 근거로 삼는 은행법이나 지주회사법은 농협에 한해선 농협법의 하위 법일 뿐이라는 견해입니다. 한 마디로 ‘월권을 일삼는 금감원은 무시해도 된다’는 취지의 발언입니다. 강호동 회장 역시 이 발언에 맞장구치며 질의는 훈훈하게 마무리됩니다.

4년 임기의 농협중앙회 회장은 ‘농민대통령’으로 불립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부럽지 않은 권한을 갖습니다. 이는 군사정권이 독점적 지위를 보장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농민이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흘러왔습니다. 그리고 제25대 회장으로 강호동 회장이 취임했습니다. 그는 15년 만에 부활된 직선 체제의 초대 회장이지요. 그 어느 때보다 권위와 정당성이 부여된 회장입니다. 강 회장에게 농협 개혁은 ‘농협을 좀 더 농민 중심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금융지주, 경제지주 양 지주의 수장은 상징성 측면에서라도 농민 대표가 맡는 것이 적절합니다. 강 회장에게 금융의 전문성은 그 다음 고려사항입니다.

금감원이 칼춤을 출 당시에는 ‘개혁의 대상이 개혁을 하려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지만 현재 상황은 미묘하게 변한 것 같습니다. 금감원 조사는 용두사미로 끝났고, 국정감사는 강 회장에게 별다른 타격을 가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힘을 실어줬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지도 모릅니다.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NH농협은행의 금융사고는 잇따라 또 터졌습니다. 현실적으로 농협금융 개혁의 주체는 강 회장일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고 있습니다.

다만, 금융지주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더라도 강 회장에게는 훨씬 더 풀기 어려운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협동조합의 본질이자 지속가능성의 원천인 자발성, 민주성, 자율성을 강화하는 일입니다. 이를 현실화하려면 본인이 가진 권한과 특권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모든 통치자들이 십중팔구 실패한다는 ‘스스로에게 칼을 대는 것’ 말입니다. 물론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농협 내부 분위기는 일치단결과는 거리가 멉니다. 전국 사방팔방에서 더 많은 지원을 호소합니다. 농어촌 현장은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관료들은 여차하면 치고 들어올 기세입니다.

강 회장은 과연 ‘톱다운’에 익숙한 중앙회를 ‘바텀업’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까요. 또 금융지주 인사 문제는 현명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요. 여러 모로 ‘솔로몬의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뷰파인더] 코너는 국내 금융회사의 이슈와 전략을 조금 더 실감나게 보여주는 콘텐츠입니다. 현재의 기업 전략을 이해하려면 기업의 발자취, 그간의 경영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기업 CEO와 대주주에 대한 평가도 있어야겠죠. 이를 통해 기업의 성장성과 미래를 입체적으로 살피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농협 조직 구성(자료=NH농협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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