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법이 문제다"
HL홀딩스 주주들이 반발하고 있다. HL홀딩스가 4년전 취득한 자사주를 재단법인에 무상출연하겠다고 결정한 데 대한 분노다. 최근 기업들이 잇따라 내놓고 있는 밸류업 정책의 방향과도 역행하는 주주가치 훼손적 결정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자료=2020년 2월 당시 HL홀딩스는 자사주 취득목적으로 주주친화정책 시행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명시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상황은 이렇다. HL홀딩스는 지난 2020년 2월과 2021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총 56만720주를 취득한다. 당시 회사가 공시한 취득목적은 주주친화정책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였다.
하지만 지난 11일 회사는 이중 84% 규모에 해당하는 47만193주(약 163억원)를 재단법인에 무상출연키로 했다고 공시한다. 처분 목적은 사회적 책무 실행을 위한 재단법인을 위한 무상출연.
주주들이 지적하는 포인트는 크게 세가지다. 먼저 주주가치 제고라는 취득목적에 역행하는 과도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지난 2011년 고점을 기록한 이후 10년째 줄하향세를 그리고 있는 HL홀딩스 주가 차트 =토스증권WTS캡처)
최근 10년간 HL홀딩스의 주가 흐름을 살펴보면 줄곧 하향세를 그려왔다. 1, 2차 자사주 취득 발표이후에도 주가는 20% 수준의 하락을 기록하고 있어 본래 취득 목적 달성은 커녕 주주들의 손실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무상출연할 경우 160억원 이상이 회계상 손실로 일시에 반영돼 또다시 주가 하락에 영향을 미친다면 주주들의 손실폭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번 무상출연 규모는 최근 3년 평균 지배주주순이익의 31%에 해당한다. HL홀딩스의 3분기 지배주주 순이익만 떼어놓고 본다면 229억원이라는 대규모 적자 상태인데 무리해서 재단 출연을 하는 데 대해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납득이 어렵다는 것.
또한 통상적인 경우에 비춰보더라도 재단에 대한 무상출연을 법인에서 참여한다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일반적으로 비영리재단 무상출연은 대주주 개인지분을 통해 이뤄진다. 만일 법인이 참여할 경우 회사의 사정과 사회적 지위, 이해관계자들의 이해충돌문제를 충분히 고려한 뒤 결정되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근 5년간 정몽원 회장이 HL홀딩스의 급여와 배당 등을 통해 수령한 금액만 595억원으로 연평균 120억원에 달한다. 특히 지난 2022년에는 회사의 지배주주순이익이 전년보다 97% 줄어든 31억원에 그쳤음에도 정 회장은 오히려 전년보다 32% 많은 82억원을 보수로 챙겼다.
(자료=2024년 3월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에 대해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출처=좋은기업지배구조 연구소)
회사의 실적 부진과 무관하게 정 회장은 과도한 급여와 정액배당을 통해 개인 재산을 늘려 지난 2023년에 이어 올해도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로부터 이사 보수한도 승인 건에 대한 반대를 권고받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자사주를 무상출연할 경우 부활하는 의결권과 관련된 부분이다. 현금 출연과 달리 자사주 무상출연의 경우 해당 의결권 행사의 주체와 의결권 행사에 누가 영향을 미치는지에 따라 주주간 이해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회사는 이와 관련해 5년간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이는 현재 위기만 모면하겠다는 미봉책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일정규모 이상의 자사주 보유시 자사주 보유목적, 취가 취득 및 소각, 처분 계획 등을 포함한 보고서를 작성해 이사회 승인을 거쳐 사업보고서에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최근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 등 상법개정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대주주 측에서 상법 개정 이전에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는 거래를 서둘러 종결하려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현재 HL홀딩스의 지배구조는 최대주주인 정몽원 회장(25.03%)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이 31.58%의 지분을 보유 중이며 VIP자산운용(10.41%), 베어링자산운용(6.59%), 국민연금공단(5.37%) 등으로 구성돼 있다.
2대 주주인 VIP자산운용의 김민국 대표는 "재단 출연 공시를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주주가치 제고목적으로 취득한 자사주를 무상출연하는 것에 대해 이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이의제기 하지 않았다"며 "재단 무상출연을 강행할 경우 이번 주주의 피해와 자본시장의 우려, 유무형의 기업가치 하락이 매우 심각한 만큼 지금이라도 주주들의 목소리를 경청해 회사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