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기업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영풍과 법적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고려아연과 모회사인 영풍그룹은 75년의 동업 관계로 이뤄졌지만, 양측 창업자 가문의 동업 관계가 깨지면서 경영권 다툼을 벌여왔다. 국내 비철금속 산업에서 중요한 기업으로 평가받는 고려아연인 만큼 산업계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과 영풍의 경영권 분쟁은 양측의 여론전으로 치열해지고 있다. 이날 고려아연은 최윤범 회장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고려아연은 영풍과 경영권 분쟁,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공개 매수에 나서는 부분에 대해 대응하는 전략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각각 입장을 밝혀 고려아연 주식매수에 대한 당위성을 밝히며 맞불을 놓고 있다.
특히 고려아연은 독립적인 경영권 유지에 대한 의지나 향후 비철금속 공급망 안정화 계획, 주요 파트너사들과 협력 유지 방안 등을 언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풍그룹의 두 창업자 가문인 장씨 일가의 장형진 영풍 고문(왼쪽)과 최씨 일가의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영풍, 고려아연)
■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배경은…75년의 동업관계 깨져
고려아연과 영풍그룹 간의 경영권 분쟁은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 독립성에 대한 깊은 갈등에서 비롯됐다.
고려아연은 한국 비철금속 산업의 선두주자이자 이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이다. 그간 영풍그룹의 지배하에 있었다. 영풍그룹은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로 경영권을 행사해왔다.
영풍그룹의 공동설립자인 고(故) 장병희, 최기호 창업주가 1974년 고려아연을 설립했다. 고려아연은 최씨 가문이, 영풍그룹은 장씨 가문이 경영을 그간 맡았다.
하지만 2년 전 3세인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회장에 나서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영풍그룹 장 회장 일가는 동업 관계를 청산하고, MBK파트너스와 함께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에 나섰다.
특히 이번 분쟁의 중심에는 영풍과 손을 잡은 MBK 파트너스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다. MBK 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의 지분을 매입해 경영권 확보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 공개 매수 가격을 인상하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영풍은 전날(23일)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 관련 “최 회장의 전횡을 막고 경영 정상화를 위한 것”이라며 “스스로 팔을 자르고 살을 내어주는 심정으로 MBK파트너스에 1대 주주 지위를 양보했다”고 밝혔다.
앞서 영풍은 MBK파트너스에 고려아연 지분 절반과 1주를 넘기고, 고려아연 지분 약 7∼14.6%를 공개 매수하겠다고 했다. 이러한 대립은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향후 회사의 경영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 경영권 분쟁, 산업계 파장은…현대차·한화·LG화학·포스코 등 공급망 영향
고려아연과 영풍의 경영권 분쟁은 장기화될 경우 회사의 내부 운영뿐만 아니라 금융 시장, 산업계 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영권 분쟁이 지속될 경우 고려아연이 속한 비철금속 산업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하는 철강, 자동차, 전자 부품 등의 관련 산업군에서도 물량 확보와 가격 불안정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이 어떤 경영 방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국내외 공급망의 안정성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어서 다양한 기업들이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투자자들도 고려아연의 지분 변동과 경영 전략 변경 가능성에 따라 자산 가치를 주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주가 변동성이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이유다.
고려아연은 여러 국내 대기업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된 원자재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차와 고려아연은 니켈 공급망에서 협력하고 있다. 현대차는 고려아연과 전기차 배터리용 니켈의 공급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2031년까지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니켈의 50%를 고려아연으로부터 조달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이러한 협력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생산 안정화와 함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요구를 충족하고 있다.
LG화학은 고려아연과 함께 니켈 및 고순도 금속 공급을 위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두 회사는 2022년 코리아 프리커서 컴퍼니(Korea Precursor Company)라는 합작 회사를 설립해 배터리 핵심 원자재인 니켈 황산염을 생산하고 있다. 이는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 소재로 활용된다.
한화그룹은 고려아연의 지분을 7.75% 보유하고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와 친환경 소재 사업에서 협력하고 있다. 한화와 고려아연은 친환경 금속 재활용과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에서도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한화는 고려아연의 주요 주주로서, 이번 경영권 분쟁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포스코와도 중요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비철금속이 철강 산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 포스코는 고려아연과 금속자원 공급망에서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업보다는 금속자원 확보 측면에서 연계된 관계다.
한국타이어도 고려아연의 최 회장의 편을 들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과거 MBK 파트너스의 지분 매입 시도에서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 이에 최 회장을 도울 가능성이 크다.
■ 법적 분쟁 비화…검찰, 수사 착수
고려아연 본사가 있는 울산지역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고려아연 인수에 나선 MBK가 중국 자본을 끌어들였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MBK는 10조원을 목표로 펀드를 조성해 고려아연 인수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 연기금인 중국 투자공사가 50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비율로는 5%가량이 중국 자본이라는 말이다.
MBK는 기자회견을 통해 “절대로 고려아연을 중국에 팔지 않고 국내 대기업에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에 대한 약속이 법적으로 문서화되지 않는 한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현재 양측은 이번 경영권 분쟁을 놓고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고려아연 측은 지난 19일 배임 혐의로 장형진 영풍 고문과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등을 고소했다. 영풍이 고려아연 주식을 저가에 MBK파트너스에 넘겨 영풍 법인과 주주들에게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다. 검찰은 20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김용식)에 사건을 배당해 바로 수사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