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압축 성장 과정에서 ‘재벌’이라는 독특한 집단을 낳았다. 거친 풍파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재벌이지만 ‘부의 대물림’ 시기만큼은 이들도 예외다. 그들이 갈라서고 쪼개질 때 나라 경제가 휘청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재벌가 금융 계열사들의 역할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 왔다. 기업의 흥망성쇠에 결정타가 된 적도 여러 번이다. 자본과 금융시장 역할이 갈수록 긴요해지는 요즘, 재벌가의 숨은 조력자 혹은 아픈 손가락이기도 했던 금융 계열사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삼성그룹의 이병철 창업주 상속 재산의 차명 관리와 관련, 장남인 이맹희 씨와 차녀인 이숙희씨는 동생인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2012년 2월 각각 7100억원, 1900억원대의 상속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이건희 회장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회장이 25년간 숨겨왔던 내 재산을 되찾으려는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법원은 문제제기 기한이 지났다며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자료=연합뉴스)
“5·16 이후 은행이 내 손을 떠나 정부 소유로 환원되고 말아버리니, 산업자금을 모으고 공급하는 기능을 갖는 금융기구 필요성을 절감했다. 여러모로 생각한 끝에 생명보험사의 신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 무렵, 1963년 봄의 어느 날 동방생명의 임원 한 사람이 찾아와 회사를 인수해 달라고 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이하 직함 생략)가 회고록에서 밝힌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인수 배경이다. 소유하던 은행들을 군사정권에 빼앗기고 대안으로 생보사 설립을 구상하던 중에 생보사 인수 기회가 제 발로 찾아온 것이다. 이에 이병철은 “인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총주식(總株式) 전부를 매입했다”고 기술했다. 회고록을 작성하던 1980년대 중반에는 이 삼성생명 ‘총주식’이 앞으로 어떤 파란곡절을 겪게 될지 노(老) 회장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리라.
■ 7년간 지속된 2세대 상속 재산 싸움
삼성생명 주주 구성에 대해 1998년 이전까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2020년 출간된 ‘이건희 스토리’에 따르면 1987년 이병철 사후 후계자인 3남 이건희의 지위는 그다지 공고하지 않았다. 선대 회장의 가신(家臣)들 입김이 더 셌고, 형제들 간 재산 싸움도 치열했다. 팽팽하던 재산 줄다리기는 1991년 이병철의 차남 이창희의 사망을 계기로 급물살을 탄다. 전주제지, 고려병원, 신세계백화점, 제일제당, 안국화재, 제일합섬 등이 가족들 몫으로 배분됐지만 삼성생명만큼은 굳게 방어했다. 오히려 다른 가족들이 가진 지분을 거꾸로 사들이기까지 했다. 1세대에서 2세대로의 재산 상속 마무리는 1995년 2월 미국 LA에서의 가족 모임, 이른바 ‘최후의 대협상’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그 때 받은 스트레스가 상당했던지 이건희의 3세 승계 작업은 1994년부터 일찌감치 진행된다.)
베일에 싸여 있던 삼성생명의 주주 구성은 삼성자동차 위기로 1998년 국정감사에서 처음 공개된다. 이건희 지분은 10.0%인데 반해, 신세계(14.5%)와 제일제당(11.5%)의 지분은 오히려 더 많았다. 그런데 이듬해 삼성자동차 채권단에 이건희 개인 소유의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내놓기로 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불과 9개월 만에 이건희의 지분이 26.0%로 늘어나 있었고, 2.25%에 불과했던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또한 20.67%로 변해 있었던 것.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마법 같은 일이 가능했을까.
해답은 차명 주식에 있었다. 이병철 사후 창업주 재산의 상당수가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명의로 관리되고 있었던 것. 정석대로 상속이 진행됐다면 삼성생명 지분을 포함한 창업주의 재산이 배우자와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눠져 후계자 이건희의 삼성그룹 지배력은 크게 위축될 수 있었기에 취해진 조치였다. 삼성자동차 실적 악화에 시달리던 이건희는 이 차명주식을 적극 활용하기로 마음먹는다. 1998년 12월 삼성생명 차명 주식을 주당 9000원에 헐값으로 사들여 일부를 삼성차 채권단에 제공하기로 약속하고 일부를 삼성에버랜드에 팔았다. 삼성자동차라는 위기를 넘기는 동시에 지지부진하던 삼성생명 상장, 이재용 3세 경영 세습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일석삼조’의 전략이었다.
다만 이 전략에는 몇 가지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먼저 세금 문제다. 이병철의 삼성생명 지분이 아들 이건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상속세 탈루 문제가 제기됐다. 다음으로 삼성에버랜드로 넘어간 임직원 차명 주식 역시 3세 세습에 활용됐다는 측면에서 증여세 탈루 문제가 불거졌다. 주당 9000원에 넘겨받은 주식을 삼성차 채권단에는 주당 70만원의 가치를 매겨 제공한 것 역시 ‘뻥튀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더 나아가 선대 회장의 재산을 고의로 숨긴 것이므로 장남 이맹희의 소송 등 상속 재산 다툼이 재점화됐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강조했던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스스로 저버렸다는 점에서 값으로 매기기 어려운 신뢰도 추락이 불가피했다.
■ 삼성생명 지분으로 3가지 난제 동시 해결 추진
삼성그룹의 탈세 및 편법 상속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들끓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 국세청 등 진위를 가려야 할 국가 기관들은 소극적 자세로 일관했다. 하지만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이른바 ‘삼성 특검’이 출범, 삼성생명 차명 지분 논란은 다시 공론화됐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건희의 비자금이 약 10조원 규모라고 실토했지만 특검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조5373억원만을 확인·발표했다. 부실 수사, 봐주기 수사 논란이 이후 계속 이어진 배경이다.
숨기고 싶었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삼성그룹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건희 퇴진 및 전략기획실 해체를 선언했다. 차명 계좌와 관련해서는 이건희로의 실명 전환, 누락 세금 납부, 남는 재산 공익 헌납 등을 약속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약속이었기에 국민들은 당연히 지켜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9년 뒤인 2017년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폭로로 삼성이 대국민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금융당국과 조세당국의 방조 아래 실명 전환이 아닌 비자금 대부분을 출금(약 4.4조원)한 뒤 계좌를 없애버렸다. 누락 세금 납부도, 재산 헌납도 없었다. 국내 1위도 아닌, 글로벌 1위 기업의 민낯이 이러했다.
2008년 특검으로 삼성그룹은 치명타를 입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특검으로 오히려 돌아온 혜택이 더 컸다. 2010년 삼성생명의 거래소 상장이 가장 큰 선물이다. 삼성에버랜드가 최대주주인 상태에서 상장할 경우 삼성에버랜드의 삼성생명 지분가치가 회사 자산총액의 50%를 넘어 삼성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로 전환된다.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속에서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가 된다면 삼성생명은 비금융회사인 삼성전자 지분을 소유할 수 없게 된다. 특검이 이건희의 삼성생명 차명 주식을 상속재산으로 인정해 준 덕에 이건희 개인이 삼성생명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계속 보유하는 길이 열렸다.
게다가 삼성생명 상장 당시 공모주 청약대금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면서 이건희 회장은 천문학적인 상장 차익을 손에 쥐었다. 이에 10년 넘게 질질 끌던 삼성자동차 채권단과의 부채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비록 지켜지진 않았지만 누락 세금 납부, 재산 헌납 대국민 약속 덕분에 이건희는 실형을 면하고 사면을 받아 2년 만에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해체됐던 전략기획실은 미래전략실로 이름을 바꿔 달고 부활했다. 게다가 아들 이재용이 지배하는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2대 주주가 되면서 그룹의 핵심 회사인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했다. 1999년 시도했던 ‘일석삼조’ 전략이 우여곡절 끝에 11년 만에 현실이 된 것이다.
■ '절대반지'로 인한 희생, 그럼에도...
1963년 삼성그룹에 인수된 동방생명 ‘총주식’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처럼 주인을 바꿔가며 삼성이라는 거대 제국에 지배력을 선물했다. 삼성생명이 절대반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던 1980년대 보험계약자들의 보험금이 삼성전자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1984년 완공된 삼성전자 기흥공장 1라인에 1000억원, 이듬해 완공된 2라인에 1900억원이 각각 투입됐다. 그룹의 명운이 달린 투자에서 삼성생명이 투입한 금액은 5444억원. 당시로선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삼성생명의 마중물은 40년 뒤 매출 300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이어졌다. 올해 정부 전체 예산(657조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유배당 보험계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생명은 한 번도 투자이익을 배당한 적이 없다. 그룹 총수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은 자본시장의 기초 상식이지만, 삼성생명 계약자들에게는 ‘하이 리스크’만 있었고, ‘하이 리턴’은 없었다. 삼성생명은 오히려 배당 없이 삼성전자 지분을 영구 보유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에 바빴다.
삼성생명이라는 '절대반지'를 차지하기 위해 많은 희생이 불가피했다. 그럼에도 3세 이재용의 지배력은 공고하지 못했다. 이 문제는 2020년 이건희 사후 ‘차등 상속’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S 등 이건희 주식의 대부분은 법정 비율로 상속됐지만 삼성생명 주식만은 예외였다. 배우자(홍라희)를 뺀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3남매에게만 3:2:1의 비율로 상속됐다. 이에 따라 이재용의 삼성생명 지분은 0.06%에서 10.44%로 늘었다. 자신이 지배하는 삼성물산(19.34%)에 이어 2대 주주가 된 것이다. 1994년에 시작된 3세 승계 작업이 27년 만에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삼성생명의 1998~1999년 지분 변동 내역. 그룹에서 차명 관리되던 삼성생명 주식을 이건희 회장이 인수해 지분이 9개월 만에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이 문제는 2008년 '삼성 특검'이 발족되고 나서야 자세한 내막이 밝혀진다.(자료=참여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