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가공식품들. (사진=김성준 기자)
지난해 식품업계가 내수 부진 속에서도 해외에서 거둔 호실적을 바탕으로 외형 확대를 이어갔다. 국내 시장 성장세는 여전히 정체된 모습을 보였지만, 해외 매출이 빠르게 성장하며 새로운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높은 해외 매출 비중이 수익성으로도 연결되면서 해외를 향한 식품기업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칠성음료, 오리온, 풀무원, 삼양식품 등은 해외 법인 성과에 힘입어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경신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매출4조245억원을 거두며 국내 음료기업 최초로 연매출 4조원을 넘어섰다. 전년대비 24.8% 증가한 수치로 글로벌 자회사 ‘필리핀펩시’가 매출 확대를 이끌었다. 지난해 롯데칠성음료 해외 자회사 매출 합계는 1조2456억원으로 전년대비 192% 증가했다. 해외에서 거둔 영업이익도 174억원에서 410억원으로 135% 늘었다.
오리온과 풀무원도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새로 쓰며 ‘3조 클럽’에 첫 입성했다. 오리온 지난해 매출은 3조1043억원, 영업이익은 5436억원으로 전년대비 각각 6.6%, 10.4% 증가했다. 중국(7.7%), 베트남(8.2%), 러시아(15.1%) 등 주요 해외 법인에서 국내 법인(2.6%)을 웃도는 매출 성장세를 기록했다. 풀무원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3조2137억원, 영업이익 92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7.4%, 48.6% 증가한 수치로, 해외사업 약 70%를 차지하는 미국 법인이 높은 매출 성장률(21.6%)을 거두며 실적개선에 힘을 보탰다.
삼양식품 역시 지난해 사상최대실적을 또 한번 경신했다. 지난해 매출은 1조7300억원, 영업이익은 3442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45%, 133% 증가했다. 2023년 68%였던 삼양식품 수출 비중은 지난해 3분기엔 77%까지 늘어났다. ‘불닭볶음면’ 수출을 본격화한 이후 해외에서 지속되고 있는 ‘불닭 열풍’이 고성장을 뒷받침했다. 미국 주요 현지 유통 채널에 입점하는 등 급증한 해외 수요에 빠르게 대응한 것이 최대 실적으로 이어졌다.
■해외 사업 비중이 실적 판가름…내수 부진에도 '방긋'
해외 사업이 전체 실적을 견인하는 흐름은 지난해 식품업계 전반에서 나타났다. 국내 최대 식품기업인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식품부문 매출 11조3530억원으로 전년대비 0.8% 증가하는데 그쳤다. 내수 침체 속에서도 해외 식품사업 매출이 3.6% 성장(5조5814억원)하며 실적을 지탱했다. 전체 식품사업에서 해외매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역대 최대인 49.2%까지 증가했다. 롯데웰푸드도 국내 실적에 뚫린 구멍을 해외에서 메웠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4조443억원으로 0.5% 감소했지만, 글로벌사업 매출은 7% 성장했다.
해외 사업은 수익성 면에서 특히 빛을 발했다. 지난해 식품업계 전반에서 해외사업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대체로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해외사업 비중이 80%에 육박하는 삼양식품은 영업이익률 19.9%로 20%를 목전에 뒀다. 해외법인 매출 비중이 65%인 오리온도 17.5%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국내와 달리 ‘K푸드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비교적 자유로운 가격 책정이 가능하다는 점이 높은 수익성을 거둔 배경으로 꼽힌다.
반면 내수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국내 경기 침체 여파에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농심 지난해 매출은 3조4387억원으로 전년대비 0.8%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576억원으로 23.1% 감소했다. 증권가 추정치에 따르면 오뚜기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3조5029억원, 24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 증가, 5.8% 감소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웰푸드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1571억원으로 11.3% 감소했다. 농심 내수 비중은 약 60%, 오뚜기와 롯데웰푸드는 각각 90%, 80%에 달한다.
해외 매출 비중에 따라 실적 희비가 엇갈리면서 국내 식품기업들은 해외 진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농심은 오는 3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유럽법인 ‘농심 유럽’을 설립한다. 성장세가 가파른 유럽 라면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롯데웰푸드도 성장성이 크다고 평가받는 인도 시장 공략에 집중한다. 롯데웰푸드는 지난 6일 인도 '하브모어 푸네 신공장'을 준공하고 오는 2028년까지 생산라인을 9개에서 16개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원가 부담 가중에도 가격을 올리기 쉽지 않은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는 국내보다도 높은 가격을 매길 수 있는 등 가격 조정이 훨씬 자유롭다”면서 “제품 원가에서 원자재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업종 특성 상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은 수익성과도 직결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