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정상회의 기자회견장의 트럼프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비용 청구서가 다시 아시아 동맹국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미국 국방부가 최근 “한국도 나토(NATO) 수준의 국방비 지출이 필요하다”고 직접 언급하면서 ‘GDP 5%룰’이 아시아 동맹국으로 확대 적용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유럽에서 시작된 안보비용 프레임이 인도·태평양 동맹국으로 확산되면서, 한국은 다시 동맹의 경제학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32개 회원국은 오는 2035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총 5%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겉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과 집단방위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주장해온 ‘공정한 분담’ 원칙이 유럽 안보 질서의 공식 기준으로 반영된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4개국(IP4,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역시 이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은 7월 8일 상호 관세 유예 종료를 기점으로 안보비 분담과 통상 협상을 연계한 다층적 압박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도 5% 내라”…美 국방부 첫 공식 언급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다목적 무인차량 '아리온스멧'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나토 정상회의 직후, 미국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을 포함한 주요 동맹국들도 GDP의 5% 수준으로 국방비를 지출해야 한다”고 공개 발언했다. 미국이 한국에 나토식 국방비 기준을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국방예산은 GDP의 2.32%인 61조 2469억원에 이른다. 만약 미국이 요구하는 5% 기준을 수용할 경우, 연간 국방비는 120조원 이상으로 증가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유세에서 “한국은 돈 잘 버는 기계”라며 방위비 5배 증액을 압박한 바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를 동맹이 아닌 거래로 본다”며 “이번 청구서는 주한미군 운용비, 무기 구매, 전략자산 전개비 등 전방위적 비용 전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시장화된 계약으로 접근한다. ‘공정한 분담(fair share)’이라는 정치적 슬로건 아래 미국은 각국의 안보비용을 수치로 산출하고 이를 재협상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한국이 분단국가라는 안보 특수성을 주장하더라도 미국은 이를 ‘미국이 지불해온 비용’으로 환산해 반격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트럼프는 나토 동맹국들에게도 같은 논리로 압박을 가해왔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27일 서울 용산구 육군회관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위기이자 기회’…K-방산 연계 전략 필요
반대로 이번 요구는 한국 방산의 글로벌 진출 기회가 될 수 있다. 나토는 이번 회의에서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와의 협력 확대를 공식화했다. 사이버 안보, 공동 R&D, 고가시성 무기체계 개발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한국 기업이 나토 공급망에 편입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국내에선 나토식 5%룰의 일괄 적용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 남북 대치 상황에서 유럽보다 높은 수준의 재래식 전력을 갖추고 있고 세계 5위권 국방비를 집행 중인 국가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2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한민국은 더 이상 옛날 수준의 나라가 아니”라며 “세계 경제력 10위, 국방비 5위 국가로서 당당하게 협상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2기 정부는 다시 ‘동맹의 경제학’을 들고 나왔다. 안보는 거래가 아니지만 거래가 현실이라면 계산서 항목을 바꾸는 것이 가장 전략적인 선택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