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해 12월 열린 제5차 보험개혁회의에서 보험 판매채널 등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자료=금융위원회)
6차까지 진행된 보험개혁회의가 마무리 수순이다. 금융당국은 마지막 7차 회의에서 미래 대비 방안을 논의한 후 상시개혁 체제로 전환할 방침이다. 그 동안 수많은 이슈가 쏟아져 나왔지만 사실 담당기자 본인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이가 이 정도인데 생업에 바쁜 소비자나 투자자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지난해 9월 진행한 [보험개혁 Why] 시리즈에 이어 [보험개혁 How] 시리즈를 통해 그 간극을 좁혀본다. -편집자 주-
생명보험협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제17차 생명보험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보험 가입의 96.1%가 대면 채널을 통해 이뤄졌다. 대면 채널 중에서도 보험설계사 채널이 93.0%로 압도적으로 높다. 방카슈랑스 등 금융기관 창구는 1.9%에 그친다. 인터넷, 홈쇼핑, 우편 등 비대면 채널(3.9%)은 다 합해도 4%가 채 안된다. 지난해 9월말 기준 생명보험 누적 계약 건수는 보장성 6197만 건, 저축성 667만 건 등 총 7183만 건에 달한다. 93%를 적용하면 약 6680만 건이 보험설계사를 통한 가입이란 의미다.
상품 판매의 대부분을 보험설계사에 의존하는 구조다 보니 설계사 수도 가파르게 늘었다. 2010년 22만명 수준이던 설계사 수는 2020년 61만명으로 10년 만에 약 3배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64만9000명이다.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 100명 중 1.8명은 보험설계사란 얘기다. 과거엔 보험사 소속 전속설계사 중심의 영업이 대세였지만 현재는 법인보험대리점(GA)이 시장 주도권을 쥐고 있다. 전속설계사 수는 2020년 19.9만명에서 지난해 18.7만명으로 1.2만명 감소한 반면, GA 설계사는 같은 기간 23.3만명에서 28.5만명으로 5.2만명 증가했다. 2021년 한화생명을 필두로 자회사형 GA 설립 붐이 일면서 ‘제판분리(제조-판매 분리)’ 현상이 가속화한 결과다.
소속 보험사의 상품만 팔 수 있는 전속설계사와 달리 GA 설계사는 여러 보험사 상품을 다양하게 팔 수 있다. 소비자에게 폭넓은 선택권을 주는 측면에서 GA 설계사는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GA가 국내 보험시장의 최대 판매채널로 성장하면서 다양한 문제점도 노출됐다. 특히 2023년 새로운 회계제도(IFRS17) 시행 전후로 보험사들이 너도나도 보장성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면서 시장 분위기가 급격히 혼탁해졌다. 보험사가 주력 상품을 만들어 GA에 영업 드라이브를 걸면 제조업체가 납기 물량을 맞추듯 GA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험계약을 납품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 보험가입 96% 대면채널...GA 영향력↑
보험계약의 96%가 대면 채널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설계사 수의 증가는 곧 보험계약 증가를 의미한다. GA 간 설계사 스카우트 경쟁이 벌어졌고, 설계사들 몸값은 크게 올라갔다. 이는 GA의 대형화로 이어져 설계사 3000명 이상을 보유한 초대형 GA만 현재 21개사에 달한다. GA의 수입원은 보험사로부터 받는 판매수수료가 거의 전부다. 회사 운영비도, 설계사 스카우트 비용도 원수보험사의 수수료가 밑천이다. GA 입장에서는 수수료를 후하게 쳐주는 보험사에 더 끌릴 수밖에 없다. 설계사 입장에서도 수수료가 높은 상품을 파는 것이 이득이다. 소비자에게 최적의 상품을 추천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일부 보험설계사들은 목표 실적 달성을 위해 작성계약(허위·가공계약), 승환계약, 경유계약 등 편법과 불법을 서슴지 않았다. 이는 소비자들의 보험 민원 증가와 신뢰 추락으로 이어졌다. ([보험개혁 Why②] 한화생명은 왜 제판분리 나섰나 참조) 보험개혁회의에서는 장기간 논의 끝에 지난해 12월 제5차 회의에서 ‘판매채널’ 문제와 관련한 대책을 내놨다. 보험상품 설명방식 개선, 예보료 차등보험료율 개편 등 다양한 방안이 나왔지만 시선은 보험 판매수수료 개편에 쏠렸다. 단기 성과 중심의 과당 경쟁 등 GA와 설계사들이 무리한 영업을 펼친 배경에 판매수수료 문제가 핵심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개편 방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판매수수료 분급 확대 방안이 담겼다. 기존에는 사실상 선지급(1~2년)으로만 수수료가 지급돼 계약을 중장기적으로 유지·관리할 유인이 적었지만 앞으로는 3~7년 간 나눠 지급해 보험계약의 장기적 유지·관리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다음으로 사업비 부과 목적에 맞는 판매수수료가 집행될 수 있도록 보장성보험의 선지급 수수료를 개별상품에 부과된 계약체결비용 내에서 집행하도록 했다. 사업비는 계약체결비용과 계약관리비용으로 구성되는데 임직원 급여 등 계약관리비용을 계약체결비용으로 전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일명 ‘1200%룰’을 확대하는 내용도 담겼다. 1200%룰이란 보험계약 1차년도에 보험사가 설계사에 지급할 수 있는 판매수수료 한도를 월 보험료의 1200%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월 보험료가 10만원이면 120만원 내에서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 이 룰은 GA 소속 설계사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설계사 스카우트 경쟁과 부당승환을 야기했던 설계사 정착지원금(계약금)도 1200%룰 한도에 포함된다. 이 밖에 보험사는 자체 상품위원회를 통해 상품별 적정 사업비 부과 원칙을 마련해야 하고, 판매채널·상품군별로 상세 수수료율 정보를 공시하는 등 수수료 정보 공개도 확대해야 한다. 개편 방안은 올해 1분기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 고액 사업비 두고 과당 경쟁...소비자 '뒷전'
금융당국이 마련한 판매수수료 개편 방안은 사실 보험소비자 입장에선 뭐가 바뀐 건지 알아채기 쉽지 않다. 수수료 분급, 계약체결비용 내 집행, 1200%룰 확대, 적정 사업비 원칙 마련 등은 모두 보험사 및 설계사 영역에 국한된 내용이다. 당국이 잘 감독해 건전한 영업환경이 조성되면 결국에는 소비자 혜택으로 돌아오겠지만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체감일 수밖에 없다.
다만 마지막 대책인 ‘수수료 정보공개 확대’는 소비자가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변화다. 지금까지 소비자는 보험상품에 가입하면서 판매수수료가 얼마인지 알지 못했다. 설계사에게 묻는 것은 금기 사항이고, 묻더라도 ‘영업비밀’이라며 공개를 꺼렸다.
금융당국이 예시로 내놓은 ‘수수료 안내표 양식(안)’을 보면 보험계약 1차년도 수수료율(4.6%), 2차년도 수수료율(1.9%), 3~7차년도 수수료율(매년 0.6%)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낸 보험료 총액의 9.5%가 수수료로 지급된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게 했다. 설계사뿐만 아니라 보험사도 상품별, 판매채널별 선지급 수수료율과 유지관리 수수료율을 공시해야 해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설계사가 소비자에게 유리한 상품을 권유하는지, 설계사 본인에게 유리한 상품을 권유하는지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수수료가 높은 상품이 반드시 나쁜 상품은 아니다. 보장 범위와 금액이 높으면 당연히 보험료도 비싸질 수밖에 없다. 비싼 보험을 파는 데에는 설계사의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소모되기 마련이다. 다만, 지금까지 영업 관행에서 높은 수수료 책정이 설계사의 노력에 대한 합리적인 대가였느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보험개혁회의가 꾸려진 동인도 사실상 이 부분에서 촉발됐다고 보는 것이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판매수수료 개편 방안에 대해 GA 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은 배경이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카금융서비스, 에이플러스에셋 등 대형 GA의 경우 이미 기업공개까지 성공해 수익성뿐만 아니라 탄탄한 자본력까지 갖췄다”며 “하지만 중소형 GA의 경우 보험개혁회의의 수수료 개편 방안이 그대로 실행되면 타격이 커 M&A 등 대형 GA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보험개혁회의 5차회의에서 제시된 '보험판매수수료 개편방향' 중 정보공개 강화 부분(자료=금융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