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보험개혁’을 선언했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관련업계나 언론조차 해당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드물다. 이에 정부 당국은 왜 보험개혁에 나섰는지,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7회에 걸쳐 주요 내용을 살펴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순서>
①지금, 왜 보험개혁인가
②한화생명은 왜 제판분리 나섰나
③삼성화재는 왜 방카에서 철수했나
④교보생명은 왜 디지털에 뛰어들었나
⑤토스는 왜 보험 전략을 수정했나
⑥KB라이프는 왜 시니어사업에 뛰어들었나
⑦금리하락기, 보험사는 왜 두려운가
자료=교보라이프플래닛 홈페이지
교보생명은 ‘돈 안 되는’ 사업 2개를 뚝심으로 유지하고 있다. 하나는 교보문고, 다른 하나는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보험이다. 전자는 사회적인 사명감, 후자는 오너(owner)의 신념을 자양분으로 버티는 사업들이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의사로 재직 중이던 1996년, 창업주 아버지(신용호)의 건강 악화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보험업 경영에 발을 들였다. 당시에도 생명보험업은 시장 포화에 따른 성장 한계 업종으로 평가받고 있었지만 40대 초반의 젊은 CEO에게 물려받은 기업을 잘 유지만 하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신 회장은 돌파구를 은행에서 찾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무너지는 은행들을 지켜보며 기회를 노린 것. 일단 2014년 정부 소유였던 우리은행의 인수를 추진하며 ‘10년 숙원’을 해소하나 싶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불허로 ‘교보은행’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ING생명, 인터넷전문은행 등에도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다만, 보험업 내에서 신성장동력으로 추진한 ‘디지털보험사(인터넷전문보험사)’의 씨앗은 무사히 파종을 마쳤다. 일본 인터넷 생명보험사인 라이프넷(지분 25.5%)과 합작으로 2013년 교보라이프플래닛을 자회사로 설립한 것. 2008년 설립된 라이프넷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며 급성장 중이었는데 신 회장은 한국에서도 통한다고 봤다.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한 둘째 아들 중현씨가 당시 일본의 금융회사에서 일하며 최신 흐름을 신 회장에게 전달한 것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현재 차남인 신중현씨는 교보라이프플래닛에서 디지털전략실장으로 근무 중이다.
교보라이프플래닛은 ‘최초’ 타이틀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국내 1호 디지털보험사이고, 2015년 처음으로 ‘모바일 가입 서비스’를 개시했다. 2017년에는 업계 최초 ‘모바일 앱 지문인증서비스’를 도입했고, 2018년에 개시한 인터넷 보장내역 조회분석 ‘바른보장서비스’도 업계 최초다. 지금은 사소해 보이지만 2015년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던 ‘간편 로그인’도 교보라이프플래닛이 금융업계 최초로 도입한 서비스다. 한 마디로 2010년대 금융업계 디지털 혁신의 선두 주자이자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결정적 결함이 있었으니 영리 회사의 가장 기본인 ‘수익성’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 2013년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11년 연속 적자다. 금융위원회는 2013년 보험업 허가를 내주면서 320억 자본금을 2017년까지 1060억원으로 확대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라이프넷이 증자에 난색을 표명하면서 모든 부담은 교보생명이 지게 됐다. 2018년에는 라이프넷이 풋옵션을 행사하며 아예 발을 뺐고, 교보생명은 그 이후 세 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총 2600억원의 자금을 추가로 쏟아부었다. 신 회장은 설립 당시 ‘5년 내 흑자’를 목표로 삼았지만 그 배의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적자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만성 적자의 원인을 회사의 역량 부족으로만 설명하기엔 애매한 구석이 많다. 첫 단추부터 이상하게 꿰어졌다. 금융위는 설립 당시 ‘총보험계약건수 및 수입보험료의 100분의 90 이상을 전화, 우편, 컴퓨터통신 등 통신수단을 이용해 모집할 것’이란 허가 조건을 달았다. 당시에는 금융규제 샌드박스(새로운 금융서비스의 시장 테스트 제도)도 없어 디지털보험사 설립을 보험업법 시행령 제13조(통신판매전문보험회사)에 옭아맨 것이다.
디지털보험사의 설립 취지이자 장점은 보험설계사 비용을 줄여 소비자에게 저렴한 보험상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과 달리 비자발적 거래가 기본인 보험업의 특성상 미래 위험을 스스로 인지해 온라인을 통해 제 발로 찾아오는 고객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시장이 형성되는 초창기에는 온·오프 믹스의 다양한 융통성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수인데 시작부터 규제의 틀에 갇힌 것이다. 법에서는 90% 모집비율을 위반할 경우 비율을 충족할 때까지 통신수단 외의 방법으로 모집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적은 없지만 라이프넷이 증자에 불참하며 풋옵션을 곧바로 행사한 배경에는 당국의 규제도 상당히 작용했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측했다.
이런 이유로 일본에서는 디지털보험 도입 초기 시장에 돌풍이 불었지만 국내의 경우 ‘찻잔 속 돌풍’에도 미치지 못했다. 디지털보험 도입 초기 3년 동안 생명보험사 기준 인터넷 보험판매 비중은 2013년 0.01%(9억원), 2014년 0.04%(47억원), 2015년 0.06%(41억원). 0.1%의 벽도 넘지 못했다. 최근 상황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미니보험 급증에도 불구하고 2021년말 기준 3.0% 수준이다.
2015년 금융개혁 추진 당시 금융당국이 추정한 온·오프 보험료 차이는 20%를 넘었다. A보험사의 40세 남자 20년 만기 1억원 사망 보장 상품의 경우 월납보험료가 대면 보험은 3만9000원, 디지털 보험은 3만1000원이었다. 20년 납입 기준으로 환산하면 936만원, 744만원으로 25.8%(192만원) 디지털 보험이 더 저렴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혜택일 수 있다. 이 같은 이유로 당시 온라인 금융상품 판매관행 개선은 ‘국민체감 20대 금융관행 개혁’에 포함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별반 달라진 건 없었다. 인터넷 전용보험 청약서 양식 간소화, 보험계약 전 알릴의무사항 신고의무 완화 등 부분적인 제도 개선 시도가 있었지만 온·오프 규제 전봇대는 여전히 뽑히지 않고 남아 있다.
교보생명이 적자 늪에서 허덕이는 사이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경쟁사들은 ‘역시 보험은 대면영업’이라는 교훈을 얻는다. 2018년까지 교보라이프플래닛을 빼고는 디지털보험사가 단 1개도 설립되지 않은 이유다. 2019년 금융규제 샌드박스가 시행된 후에야 캐롯손해보험(2019년), 하나손해보험(2020년), 카카오페이 손해보험(2022년), 신한EZ손해보험(2022년) 등이 생겨났다. 그나마 모두 손해보험사다. 생명보험사는 없다. 생보업계에선 12년째 교보생명 홀로 악전고투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에 보험업계에선 현대해상이 다이렉트보험을 흡수한 것처럼 교보생명 또한 디지털보험사 실험을 포기할 것으로 보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신 회장은 올해 1250억원 추가 증자하는 등 오히려 투자 규모를 늘렸다. 교보라이프플래닛은 이번 투자를 계기로 △높은 단계의 제휴 강화 △상품의 전면적 혁신 △하이브리드 채널 구현 △인슈어테크 솔루션 사업 강화 등 새로운 성장을 위한 ‘4대 중점 사업전략 방향’을 수립했다. 보험업계에서 혁신을 선도하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해 한국을 대표하는 디지털 금융 브랜드로 자리매김 한다는 목표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12년째 돈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신창재 회장도 대단하지만 11년 적자를 보는 동안 일관되게 무관심 기조를 보이는 당국이 더 대단해 보인다”며 “GA의 불합리한 영업관행을 문제 삼으면서 디지털보험사를 규제로 꽁꽁 묶어 놓는, 사실상 앞뒤가 맞지 않는 감독 관행”이라고 꼬집었다.
자료=교보라이프플래닛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