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보험개혁’을 선언했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관련업계나 언론조차 해당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이 드물다. 이에 정부 당국은 왜 보험개혁에 나서는지,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7회에 걸쳐 주요 내용을 살펴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순서> ①지금, 왜 보험개혁인가 ②한화생명은 왜 제판분리 나섰나 ③삼성화재는 왜 방카에서 철수했나 ④교보생명은 왜 디지털에 뛰어들었나 ⑤토스는 왜 보험 전략을 수정했나 ⑥KB라이프는 왜 시니어사업에 뛰어들었나 ⑦금리하락기, 보험사는 왜 두려운가 “당시 삼성생명 반발이 대단했죠. 그때나 지금이나 삼성 이익을 건드리는 건 큰 각오를 해야해요.”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한 지인의 기억은 그랬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열기가 어느 정도 식을 무렵, 금융권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부가 그해 11월 공청회를 열어 ‘방카슈랑스(금융기관보험대리점)’ 도입을 공식화하자 보험업권은 ‘보험설계사들이 길바닥에 나앉게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설계사 보유 규모가 손해보험의 3배에 달했던 생명보험권 반발이 심했다. 이른바 ‘생보 빅3’인 삼성·대한·교보생명은 “방카슈랑스가 성공하면 설계사의 50% 수준인 11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며 막무가내로 반대했다. 인적 관계에 기반한 ‘묻지마 계약’ 등 당시에도 보험산업의 후진성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였다. 1997년 외환위기를 수습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금융개혁 의지는 확고했다. 방카슈랑스가 도입되면 보험판매 채널이 다양화되고 보험료가 내려가 금융소비자의 편익이 커진다고 봤다. 정부로서는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 업계 반발이 문제였다. 금융당국은 ‘단계적 도입’ 카드를 꺼내 보험사들을 달랬다. 2003년 8월부터 시행하되 저축성·가계성 보험부터 허용하고 2005년에는 제3보험과 자동차보험, 2007년 4월 이후에는 모든 상품의 판매를 허용키로 했다. 일단 제도를 도입하는 게 중요했으므로 끼워팔기 등 우려되는 부작용에 대해선 별도의 안전장치만 달았다. 자산 2조원 이상 대형금융기관에 대해선 전속대리점을 불허하고 특정 보험사의 상품판매 비중에 제한을 뒀다. 또한 금융기관 점포 내 별도의 보험창구에서만 판매토록 하고 방문판매 및 TM(전화권유 판매)은 금지했다. 모두 보험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조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당초 계획은 어그러졌다. 2007년부터 모든 상품의 판매를 허용하기로 했지만 종신보험 등 개인보장성상품과 자동차보험 등은 아직까지도 취급이 금지돼 있다. 제도 시행 초기 50% 미만이었던 특정 보험사의 상품판매 비중 규제는 25% 미만으로 더 강화됐다. 은행이 각 점포별로 최대 2명의 범위 내에서만 방카슈랑스 상품을 판매하는 규제가 오히려 새로 생긴 것. 이것이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이른바 방카슈랑스 3대 핵심규제(판매상품·판매비중·판매인수)의 탄생이다. 금융소비자의 편익 제고를 목표로 야심차게 시행됐지만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 방향으로 운영이 후퇴하면서 20년이 넘도록 반쪽짜리 제도로 고착화됐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이석호 연구원은 이 문제를 10년 넘게 지적해 왔다. 하지만 현실에서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서 방카슈랑스를 키워드로 넣고 검색해 보면 놀랍게도 2013년 이후 제도 운영과 관련해 다룬 내용이 전혀 없다. 심지어 금융위원회 홈페이지에는 2006년이 마지막 보도자료 생산 연도다. 당국자들의 뇌리에서 완전히 잊힌 제도라고 보면 된다. 지난해 은행연합회는 ‘방카슈랑스 20주년 기념 세미나’를 열어 ‘25% 룰’ 폐지를 제안했지만 당국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2024년 보험개혁의 주요 동인은 판매채널에서의 악습에 따른 소비자 신뢰 추락이다. GA(법인보험대리점)의 영향력이 커졌지만 내부통제 및 판매관리 체계는 미흡하다는 것이 문제다. 문제 해결의 한 방편으로 방카슈랑스 활성화를 지렛대로 삼을 법도 한데 ‘60개+α 과제’에는 방카슈랑스의 ‘방’ 자도 찾아볼 수 없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당국자들이 전속설계사 중심인 삼성생명 심기를 살피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나온다. 한국금융연구원이 2022년 내놓은 ‘방카슈랑스 소비자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험가입 시 판매채널 선택에 있어 주된 고려사항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저렴한 보험료(32%)’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보험가입 시 방카슈랑스 채널을 선택하지 않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구체적 이유에 대해 물어본 결과 ‘가입할 수 있는 보험상품이 다양하지 않아서(17.9%)’라는 응답률이 가장 높았다. 아울러 방카슈랑스 3대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고 응답한 소비자의 비율은 절반을 웃돌았다. 특히 영업 일선에서 방카슈랑스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판매자의 경우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판매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 비율이 무려 81.0%에 달했다. ‘판매비중 규제(46.8%)’, ‘판매상품 규제(42.6%)’ 때문이었다. 해당 연구를 담당해온 이석호 선임연구위원은 “3대 규제 완화 또는 폐지를 통해 방카슈랑스가 활성화된다면 소비자가 누리는 긍정적 효과가 확장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시장 참여자인 소비자가 보험가입 시 적잖은 불편을 겪고 있다는 점을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새로운 회계제도(IFRS17)의 도입은 가뜩이나 위축된 방카슈랑스 시장에 치명타가 됐다. 판매상품 및 판매비중 규제 때문에 현재 은행에서 취급하는 보험의 대부분은 저축성 상품이다. 저축성 상품은 보장성 상품과 달리 만기가 도래하면 원금 이상을 고객에게 돌려줘야 한다. 많이 팔아도 부채만 커지고 수익성 지표인 CSM(보험계약서비스마진)에는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 삼성화재가 올해 방카슈랑스 취급을 전면 중단한 배경이다. 2003년 방카슈랑스 영업을 시작한 이래 21년 만의 철수였다. 삼성화재에 앞서 흥국화재, 메리츠화재 등은 더 일찍 철수했다. 이제 남은 사업자는 현대, KB, DB, NH 정도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전체 판매채널에서 방카슈랑스 채널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판매량이 미미한데 회계적으로도 불리하니 공략할 이유가 없다. 상품판매 규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손해보험사에 방카슈랑스는 큰 메리트가 없는 셈이다. 다만, 생보사의 상황 인식은 손보사와 약간 다르다. 제3보험 시장에서 손보사와 치열하게 경쟁 중인 생보사는 종신, 연금, 변액 3종 세트가 핵심 상품이다. 종신의 장벽을 지키는 와중에 손보사가 방카슈랑스에서 철수하면 시장 경쟁력이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 생보사는 손보사 대비 자산운용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수익성은 낮아도 저축성보험은 버릴 수 없는 주력 상품이다. 특히 은행의 신용도 높은 자산가들의 고액 상품 가입은 유동성 관리에 매우 유리한 측면이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20년 전 제도 도입 당시에는 도입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에 공급자 중심으로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어느 정도 수긍되는 측면이 있었지만 현재는 핀테크 활성화 등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며 “특히 올해 가동된 보험개혁의 경우 소비자 신뢰회복을 최우선에 두고 있으므로 수요자 중심으로 규제를 푸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보험개혁 Why③] 삼성화재는 왜 방카에서 철수했나

최중혁 기자 승인 2024.09.04 14:05 | 최종 수정 2024.09.10 14:11 의견 0

금융당국이 ‘보험개혁’을 선언했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관련업계나 언론조차 해당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이 드물다. 이에 정부 당국은 왜 보험개혁에 나서는지,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7회에 걸쳐 주요 내용을 살펴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순서>

①지금, 왜 보험개혁인가
②한화생명은 왜 제판분리 나섰나
③삼성화재는 왜 방카에서 철수했나
④교보생명은 왜 디지털에 뛰어들었나
⑤토스는 왜 보험 전략을 수정했나
⑥KB라이프는 왜 시니어사업에 뛰어들었나
⑦금리하락기, 보험사는 왜 두려운가


“당시 삼성생명 반발이 대단했죠. 그때나 지금이나 삼성 이익을 건드리는 건 큰 각오를 해야해요.”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한 지인의 기억은 그랬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열기가 어느 정도 식을 무렵, 금융권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부가 그해 11월 공청회를 열어 ‘방카슈랑스(금융기관보험대리점)’ 도입을 공식화하자 보험업권은 ‘보험설계사들이 길바닥에 나앉게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설계사 보유 규모가 손해보험의 3배에 달했던 생명보험권 반발이 심했다. 이른바 ‘생보 빅3’인 삼성·대한·교보생명은 “방카슈랑스가 성공하면 설계사의 50% 수준인 11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며 막무가내로 반대했다.

인적 관계에 기반한 ‘묻지마 계약’ 등 당시에도 보험산업의 후진성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였다. 1997년 외환위기를 수습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금융개혁 의지는 확고했다. 방카슈랑스가 도입되면 보험판매 채널이 다양화되고 보험료가 내려가 금융소비자의 편익이 커진다고 봤다. 정부로서는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

업계 반발이 문제였다. 금융당국은 ‘단계적 도입’ 카드를 꺼내 보험사들을 달랬다. 2003년 8월부터 시행하되 저축성·가계성 보험부터 허용하고 2005년에는 제3보험과 자동차보험, 2007년 4월 이후에는 모든 상품의 판매를 허용키로 했다.

일단 제도를 도입하는 게 중요했으므로 끼워팔기 등 우려되는 부작용에 대해선 별도의 안전장치만 달았다. 자산 2조원 이상 대형금융기관에 대해선 전속대리점을 불허하고 특정 보험사의 상품판매 비중에 제한을 뒀다. 또한 금융기관 점포 내 별도의 보험창구에서만 판매토록 하고 방문판매 및 TM(전화권유 판매)은 금지했다. 모두 보험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조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당초 계획은 어그러졌다. 2007년부터 모든 상품의 판매를 허용하기로 했지만 종신보험 등 개인보장성상품과 자동차보험 등은 아직까지도 취급이 금지돼 있다. 제도 시행 초기 50% 미만이었던 특정 보험사의 상품판매 비중 규제는 25% 미만으로 더 강화됐다. 은행이 각 점포별로 최대 2명의 범위 내에서만 방카슈랑스 상품을 판매하는 규제가 오히려 새로 생긴 것.

이것이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이른바 방카슈랑스 3대 핵심규제(판매상품·판매비중·판매인수)의 탄생이다. 금융소비자의 편익 제고를 목표로 야심차게 시행됐지만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 방향으로 운영이 후퇴하면서 20년이 넘도록 반쪽짜리 제도로 고착화됐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이석호 연구원은 이 문제를 10년 넘게 지적해 왔다. 하지만 현실에서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서 방카슈랑스를 키워드로 넣고 검색해 보면 놀랍게도 2013년 이후 제도 운영과 관련해 다룬 내용이 전혀 없다. 심지어 금융위원회 홈페이지에는 2006년이 마지막 보도자료 생산 연도다. 당국자들의 뇌리에서 완전히 잊힌 제도라고 보면 된다. 지난해 은행연합회는 ‘방카슈랑스 20주년 기념 세미나’를 열어 ‘25% 룰’ 폐지를 제안했지만 당국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2024년 보험개혁의 주요 동인은 판매채널에서의 악습에 따른 소비자 신뢰 추락이다. GA(법인보험대리점)의 영향력이 커졌지만 내부통제 및 판매관리 체계는 미흡하다는 것이 문제다. 문제 해결의 한 방편으로 방카슈랑스 활성화를 지렛대로 삼을 법도 한데 ‘60개+α 과제’에는 방카슈랑스의 ‘방’ 자도 찾아볼 수 없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당국자들이 전속설계사 중심인 삼성생명 심기를 살피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나온다.

한국금융연구원이 2022년 내놓은 ‘방카슈랑스 소비자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험가입 시 판매채널 선택에 있어 주된 고려사항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저렴한 보험료(32%)’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보험가입 시 방카슈랑스 채널을 선택하지 않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구체적 이유에 대해 물어본 결과 ‘가입할 수 있는 보험상품이 다양하지 않아서(17.9%)’라는 응답률이 가장 높았다. 아울러 방카슈랑스 3대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고 응답한 소비자의 비율은 절반을 웃돌았다. 특히 영업 일선에서 방카슈랑스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판매자의 경우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판매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 비율이 무려 81.0%에 달했다. ‘판매비중 규제(46.8%)’, ‘판매상품 규제(42.6%)’ 때문이었다.

해당 연구를 담당해온 이석호 선임연구위원은 “3대 규제 완화 또는 폐지를 통해 방카슈랑스가 활성화된다면 소비자가 누리는 긍정적 효과가 확장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시장 참여자인 소비자가 보험가입 시 적잖은 불편을 겪고 있다는 점을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새로운 회계제도(IFRS17)의 도입은 가뜩이나 위축된 방카슈랑스 시장에 치명타가 됐다. 판매상품 및 판매비중 규제 때문에 현재 은행에서 취급하는 보험의 대부분은 저축성 상품이다. 저축성 상품은 보장성 상품과 달리 만기가 도래하면 원금 이상을 고객에게 돌려줘야 한다. 많이 팔아도 부채만 커지고 수익성 지표인 CSM(보험계약서비스마진)에는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 삼성화재가 올해 방카슈랑스 취급을 전면 중단한 배경이다. 2003년 방카슈랑스 영업을 시작한 이래 21년 만의 철수였다.

삼성화재에 앞서 흥국화재, 메리츠화재 등은 더 일찍 철수했다. 이제 남은 사업자는 현대, KB, DB, NH 정도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전체 판매채널에서 방카슈랑스 채널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판매량이 미미한데 회계적으로도 불리하니 공략할 이유가 없다. 상품판매 규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손해보험사에 방카슈랑스는 큰 메리트가 없는 셈이다.

다만, 생보사의 상황 인식은 손보사와 약간 다르다. 제3보험 시장에서 손보사와 치열하게 경쟁 중인 생보사는 종신, 연금, 변액 3종 세트가 핵심 상품이다. 종신의 장벽을 지키는 와중에 손보사가 방카슈랑스에서 철수하면 시장 경쟁력이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 생보사는 손보사 대비 자산운용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수익성은 낮아도 저축성보험은 버릴 수 없는 주력 상품이다. 특히 은행의 신용도 높은 자산가들의 고액 상품 가입은 유동성 관리에 매우 유리한 측면이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20년 전 제도 도입 당시에는 도입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에 공급자 중심으로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어느 정도 수긍되는 측면이 있었지만 현재는 핀테크 활성화 등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며 “특히 올해 가동된 보험개혁의 경우 소비자 신뢰회복을 최우선에 두고 있으므로 수요자 중심으로 규제를 푸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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