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한화 판교 R&D센터를 방문해 한화정밀기계, 한화비전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한화그룹이 김승연 회장의 삼형제 체제로 본격적인 승계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한화에너지’가 승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주주 가치를 희생시키는 방식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 김동관 부회장(한화에너지·방산), 김동원 부사장(한화생명·금융), 김동선 상무(한화갤러리아·유통)가 각자의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 ‘포스트 김승연’ 시대를 준비하는 그림이 드러나고 있다.

한화의 최대주주는 22.63%를 보유한 김승연 회장이다. 이어 한화에너지 22.16%, 김동관 부회장 5.43%, 김동원 부사장 2.14%, 김동선 상무 2.17% 순이다.

한화그룹의 지배구조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김동관 부회장이 50%, 김동원 부사장과 김동선 상무가 각각 25%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들이 한화에너지를 통해 한화를 지배하는 구조다.

향후 승계 시나리오는 한화에너지가 그룹 내 영향력을 확대하고, 한화와의 합병 또는 분할을 거치는 과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은 자금 조달이며, 이를 통해 한화에너지가 한화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주요 전략으로 보인다.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사측은 “해외 방산 및 해양 시장 선점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설명했으나, 시장의 반발은 거셌다. 급락한 주가에 소액 주주들은 “사업 투자는 개인투자자의 돈으로 하면서, 승계는 회사 자금으로 한다”고 비판했다.

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2조4000억 원의 수주 잔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향후 2년간 6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예상돼 굳이 유상증자를 하지 않아도 자체 자금이나 채권 발행 등으로 필요한 투자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김승연 회장과 김동관 부회장이 한화오션 시흥R&D캠퍼스의 상업용 세계 최대 공동수조를 방문해 시연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증 직전인 이달 13일 한화임팩트파트너스(4.99%), 한화에너지(0.69%)와 그 100% 자회사 한화에너지싱가포르(1.62%)가 보유한 한화오션 보통주 지분 7.30%를 1조3000억원에 취득했다. 한화임팩트파트너스는 한화임팩트의 100% 자회사인데, 한화임팩트의 52%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가 한화에너지다. 결과적으로, 한화에너지는 한화오션 지분 매각을 통해 8737억원의 현금을 확보한 셈이다.

유상증자로 인해 주식 수가 늘어나면 기존 주주의 주당 가치는 희석된다. 예를 들어, 기존 주식이 10주였는데 신주가 5주 추가로 발행되면, 전체 주식이 15주로 늘어나 기존 주주가 가진 주식의 비율이 줄어드는 것이다. 신주 발행 가격이 기존 주가보다 저렴하게 책정되면, 신주를 받지 못하는 기존 주주는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아직 발행가를 확정하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할인율을 적용해 신주를 발행하기 때문에 소액주주 피해는 불가피하다.

김동관 부회장이 뒤늦게 30억원어치의 주식을 매입하며 주주 달래기에 나섰지만, 반발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금융당국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삼성SDI의 유상증자를 중점 심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 결정을 한 것인 만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투자자들은 “결론을 정해놓고 심사하는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화그룹의 승계 작업은 유상증자와 지분 매각을 통한 ‘삼형제 체제’ 구축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기존 주주들과의 신뢰 회복이 과제로 남아 있다. 향후 금융당국의 심사 결과와 함께, 한화의 경영 전략이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