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에 전시된 LIG넥스원 공개 항공무장 (사진=LIG넥스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적 재무장 흐름이 본격화되며 한국 방산이 ‘K-디펜스’란 이름으로 전성기를 맞고 있다. 3분기 국내 주요 방산 4사의 합산 매출은 10조원에 육박했으며 합산 영업이익도 지난 2분기에 이어 1조원을 돌파했다. 3분기 수주잔고 100조원을 넘기며 역대급 호황을 맞고 있지만 이면에는 기업별 실적의 온도차가 ‘성장 속 역성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12일 전자공시와 업계 자료를 종합하면 방산 4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KAI·LIG넥스원)의 2025년 3분기 매출은 9조8574억원, 영업이익은 1조2839억원으로 집계됐다.
■ 수주 호황 속 온도차…“양산형 웃고, 완제기 울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매출 6조4865억원, 영업이익 8564억원으로 4사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6.5%, 영업이익은 79.5% 급증했다. 폴란드·호주·중동 등 해외 수출과 유도무기·부속품 매출 집중이 실적을 끌어올렸다.
현대로템은 매출 1조6196억원, 영업이익 2777억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K2 전차의 폴란드 수출 본격화로 매출과 이익이 동시에 개선됐으며 수주잔고는 29조6000억원대로 2분기보다 36% 이상 증가했다. 비(非)방산 부문인 레일·에코플랜트의 회복도 실적에 기여했다.
LIG넥스원은 매출 1조492억원, 영업이익 896억원으로 각각 41.7%, 73% 증가했다. 천궁Ⅱ 등 유도무기와 항공·전자 부문이 성장세를 주도했다. 분기 말 수주잔고는 약 23조원으로 견조한 흐름을 유지했다.
■ ‘수주잔고 110조원’ 착시…납품·검수 지연은 재무 부담으로
반면 KAI는 매출 7021억원, 영업이익 602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2.6%, 21.1% 감소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LIG넥스원은 유도무기·지상장비·부품 등 양산형 수출 품목의 비중이 높아 분기 매출을 빠르게 인식하지만 KAI는 완제품(헬기·항공기) 중심의 사업 구조상 납품·검수·인도 시점이 실적을 직접 결정한다. 그래서 작은 일정 지연도 분기 실적에 큰 변동으로 이어졌다.
3분기 말 기준 4사 합계 수주잔고는 약 110조원이다. 개별 잔고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약 31조원, 현대로템 29조6100억원, KAI 26조2000억원, LIG넥스원 23조4300억원 수준으로 외형적 규모는 탄탄하다. 그러나 완제기의 특성상 제작 기간·납품 지연이 길어지면 매출채권·재고가 쌓이며 재무 부담으로 전환된다.
KAI는 특히 현금 회전의 취약성이 도드라진다. 제작 중인 재고자산이 2023년 1조7355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3조1359억원으로 거의 두 배로 늘었고, 매출채권도 5141억원에서 1조1906억원으로 급증했다. 시설·개발·자본투자 비용도 3분기 누계 기준 2431억원으로 전년 동기(1362억원)보다 78.5% 증가했다.
KAI 부스를 방문한 무하마드 하피주디엔 말레이시아 육군총장 (사진=KAI)
■ “수주보다 중요한 건 실행력”…K-디펜스 2.0의 과제
KAI의 실적 둔화는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 타이밍의 문제일 가능성도 있다. KF-21 양산과 FA-50의 해외 인도가 본격화되면 매출·현금 회복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재무압박(차입 확대·현금흐름 악화)이 지속될 수 있다.
지금의 호황은 지정학적 수요와 대규모 수주잔고에 힘입은 것이다. 하지만 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수주잔고 수치가 크더라도 결국 실적은 ‘납품을 제대로 실행했느냐’와 ‘기술 경쟁력’이 결정한다”고 말했다. 풍요의 외형 뒤에 숨은 이 불균형은, K-디펜스가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느냐를 가르는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