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이 최근 한국산 소금에 대해 ‘강제노동’ 의혹을 이유로 수입을 금지하면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이슈가 무역과 수출의 결정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단지 소금 산업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ESG 리스크는 모든 산업에 걸쳐 수출의 명운을 가를 요소가 될 수 있다. 특히 환경 오염과 직결된 정유업계는 더욱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국내 4대 정유사(GS칼텍스,HD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SK에너지) 가운데 일부는 이미 반복적인 환경법 위반과 지역사회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ESG 경영이 단순한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으로 변모하고 있는 지금, 정유업계의 환경 리스크를 점검해본다. <편집자주>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 (사진=에쓰오일)
■ 미래 위한 대형 투자···울산시 적극적 지원
에쓰오일이 추진 중인 ‘샤힌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국내 최대 규모의 민간투자로 주목받는 이 사업은 지역경제를 살릴 ‘게임 체인저’로 기대를 모으지만, 그 이면에는 기후위기 역행, 석유화학 공급과잉, 국부 유출이라는 구조적 한계가 교차하고 있다.
샤힌 프로젝트는 울산광역시 온산국가산업단지 내 약 88만㎡ 부지에 9조2580억 원을 들여 고부가가치 석유화학시설을 짓는 국내 석유화학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간 투자사업이다. 주요 시설은 연간 180만 톤의 에틸렌을 생산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팀 크래커와, 사우디 아람코의 신기술이 적용된 TC2C(Thermal Crude to Chemical) 설비, 고부가 폴리머 생산라인 등으로 구성된다.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며, 에쓰오일은 이를 "미래 성장동력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울산시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미래형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규정했다. 부지 조성부터 인허가 간소화, 기반시설 확충까지 전방위적 행정·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건설 단계부터 약 1만7000명의 일자리가 제공되고, 가동 이후 상시 고용이 기대된다는 점에서 지역경제의 ‘효자’로 기대를 모으는 배경이다.
녹색전환연구소는 샤힌프로젝트에 대한 에쓰오일의 설명을 'bad'로 규정하고 있다. (자료=녹색전환연구소)
■ 탄소중립 역행 ‘기후 리스크’···기후 대응 ‘낙제’ 에쓰오일
그러나 이 거대한 투자의 실질적인 수혜자가 과연 지역사회인지, 아니면 외국계 모기업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역대급 투자’뒤엔 탄소 폭증, 수익 역외 이전, 산업 종속이라는 구조적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에쓰오일은 이미 국내 정유업계 가운데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다. 기후솔루션의 ‘멈춰선 탄소중립: 한국 석유화학기업의 길 잃은 약속’에 따르면 2023년 온실가스 배출량 명세서를 기준으로 에쓰오일이 약 950만 톤으로 가장 많은 배출량을 기록했으며, GS칼텍스와 LG화학이 각각 850만 톤, 800만 톤으로 뒤를 이었다.
샤힌 프로젝트가 가동되면 이 수치는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신규 크래커와 TC2C 설비는 탄소 집약적인 공정으로, 녹색전환연구소는 연간 최소 300만 톤에서 최대 2000만 톤의 추가 배출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에쓰오일은 기후정보 공시와 관련해 녹색전환연구소로부터 낙제 수준인 37.5점을 받았다. 이는 ESG 기준의 형식적 충족을 넘어, 실질적 감축 계획이나 기후 리스크 대응 전략이 미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시장 수요 외면한 투자···지역 경제냐, 사우디 실험장이냐
샤힌 프로젝트의 핵심은 석유화학 제품 생산 능력을 대폭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이미 공급 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 국내 주요 화학기업들은 연이어 실적 부진을 겪고 있으며, 글로벌 수요 둔화와 맞물려 생산량 조절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샤힌 프로젝트가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수익성 악화와 매출 감소의 악순환이 지속된다면 울산공장은 사우디산 원유를 처리해 재수출하는 ‘저부가 보급처’로 전락한 위험도 있다.
에쓰오일의 지분 63.4%는 사우디 국영기업 아람코가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서 발생한 수익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구조 속에서, 지역경제와 산업기반에 실질적으로 남는 이익은 제한적이다.
올해 일반주에는 배당을 하지 않았지만, 의결권 없는 대신 우선배당권을 지닌 우선주에는 주당 25원을 배당하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아람코는 여전히 배당수익을 챙긴 셈이다.
에쓰오일의 대규모 투자는 겉으로는 지역경제를 살리는 호재로 보이지만, 실상은 기후위기에 역행하는 구조 속에 국산 산업 기반의 소외,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익, 그리고 울산의 단순 처리기지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대규모 투자는 환영 받아야 하지만 이를 담보로 내어주는 것이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이라면 무게가 다르다.
‘탄소중립’과 ‘산업 전략’이라는 두 개의 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초대형 투자도 미래세대에겐 부담만 안길 수 있다. 게다가 수익 대부분이 사우디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고,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이 예고된 산업에 단기 고용과 지역 예산 투입만으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이제는 ‘얼마를 투자했는가’가 ‘누구를 위해’ 투자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