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칭다오의 한 수출항(사진=연합뉴스)

■ 코로나가 바꾼 방향···‘제조업 귀환 전쟁’의 서막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화 30년의 균열을 드러낸 결정적 사건이었다. 팬데믹 초기인 2020년 국제 교역량이 3분의 1 가까이 감소했다. 물류검역 강화와 항공화물 운임 급등으로 실질 관세율이 3.4%p 상승하면서 ‘세계의 공장’ 체계는 흔들렸다.

비용 절감을 위해 세계 각지로 분산시켰던 글로벌 공급망이 팬데믹 봉쇄와 물류 교란으로 마비되자, 각국은 뒤늦게 ‘너무 멀리 간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대가를 체감했다. 여기에 미·중 간 냉전이 장기화되며 반도체·배터리·의약품 같은 전략물자의 자급체계 필요성이 커졌다.

■ 美·日·EU…제조업의 귀환, 국가전략의 중심으로

리쇼어링 전쟁의 선봉은 미국이다. 미 행정부는 해외 생산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칩스법(CHIPS and Science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잇달아 시행하며 첨단 제조업을 미국 본토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와 동시에 멕시코·캐나다로 생산라인을 분산하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 전략도 병행 중이다.

유럽연합(EU) 역시 ‘EU 반도체법’을 제정해 2030년까지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오프쇼어링은 지속 불가능하다. 유럽은 산업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영국도 자국 내 첨단 생산라인 복귀를 지원하고 있다.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등 비(非)제조국도 산업구조 전환에 나섰다. 호주는 친환경 제조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호주산 미래법’을, 사우디는 라스알카이르 지역에 세계 최대 규모의 킹살만 조선산업단지를 조성하며 제조생태계를 새로 구축하고 있다.

■ 일본, “보조금은 잊어라…기술이 돌아오게 하라”

일본은 코로나 이후 리쇼어링 정책의 방향을 빠르게 전환했다. 2020년 1800억 엔 규모의 보조금 정책으로 시작했지만, 2년 만에 이를 세액공제 중심 구조로 전환했다. 단기 보조금보다 지속 가능한 기술 귀환형 리쇼어링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경제산업성(METI)은 반도체·배터리·로봇 등 전략산업 투자 기업에 시설투자액의 최대 40%를 법인세에서 공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지방정부는 전력·용수·인허가를 원스톱으로 처리했다. 그 결과 소니, 도요타, 무라타제작소 등 주요 제조업체가 일본 내 신규 투자에 나섰다. 도요타는 아이치현에 신규 조립공장을, 혼다는 구마모토현에 스쿠터 생산라인을 세웠다. 엔저와 맞물린 이 흐름은 ‘기술이 돌아오는 리쇼어링’의 전형이 됐다.

■ 대만, “복귀 기업은 함께 모여야 산다”

대만은 개별 보조금보다 집적의 힘을 택했다. 정부가 직접 산업단지를 조성해 복귀 기업을 한데 모으는 ‘클러스터형 리쇼어링’을 추진했다. 2019년부터 추진된 ‘대만 기업 귀환 행동계획’을 통해 복귀기업 전용 산업단지를 신주·타이중 등지에 조성하고 입주기업에는 토지·전력·세제 혜택을 일괄 제공했다. 복귀 기업의 90%가 단지 내 입주하며 공급망이 단기간에 복원됐다.

■ 여전히 ‘보조금 리쇼어링’ 덫에 갇힌 한국

한국은 10년 넘게 보조금 중심의 리쇼어링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산업부, 중기부, 국토부 등 부처별로 제각각 운영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지원체계가 복잡하고 유인 효과가 낮다. 2023년 기준 복귀 기업은 40곳 남짓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공정 일부만 들여왔다. 산업용지 확보와 인허가 절차도 중앙-지방 간 엇박자가 심하다.

전문가들은 “기업을 부르는 정책이 아니라 기업이 돌아올 이유를 만드는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세제·인프라·인력·노동환경이 결합된 종합 생태계가 없으면 복귀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코로나 이후의 리쇼어링은 단순한 ‘산업정책’이 아니라 국가운영 철학의 시험대다. 유턴을 강요할 게 아니라, 기업이 돌아오고 싶게 만드는 시스템 설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