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수요 부진과 공급 과잉으로 석유화학 업황이 벼랑 끝에 선 가운데, 여천NCC의 공동 대주주인 한화와 DL이 서로를 향한 불신과 여론전에만 몰두하고 있다.

■ DL “원인분석 없는 묻지마 증자 불가”

DL케미칼은 11일 약 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의결했고, 모회사 DL㈜도 1778억원 규모 증자 참여를 승인했다. 그러나 DL은 단순 자금 투입만으로는 여천NCC의 체질 개선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DL 측은 “3월에 한화와 각각 1000억원씩 증자했음에도 불과 3개월 만에 추가 요청이 왔다”며 “당시 ‘연말까지 현금흐름에 문제없다’던 보고는 거짓이었거나 경영부실이 방치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DL은 여천NCC의 원료가 계약에서 최소 변동비 보장을 요구하며 “에틸렌 가격 경쟁력이 확보돼야 자생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화는 이를 거부하고 “자사 이익 극대화”만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한화 “저가공급 불법 반복 못 해”

한화는 DL의 주장을 ‘사실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한화에 따르면, 올해 초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여천NCC가 DL 측 계열사에 원료를 시장가보다 싸게 공급해 법인세 1006억원이 추징됐다.

한화는 “불공정 거래로 법 위반 소지가 있는 계약을 계속 유지하자는 것은 부당이득을 지키려는 것”이라며 “시장가격에 맞춘 새 계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자금 지원 의지가 확고하다고 강조하면서 “DL도 협의에 나서 조속히 정상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급 계약은 자금 지원 후 공정한 조건으로 체결하자는 입장이다.

■ 2000년대 초반에도 ‘대결구도’

이번 충돌은 처음이 아니다. 2001년 여천NCC 노조 파업 당시에도 한화와 DL(당시 대림)은 수습 방안을 놓고 평행선을 달렸다. 대림은 노사 대화를 통한 해결을, 한화는 원칙 대응을 주장하며 감정싸움으로 비화했다. 이준용 당시 대림 회장이 김승연 한화 회장에게 ‘만나달라’는 호소 광고를 신문에 싣는 이례적 장면도 나왔다. 양측은 성과급·형사고발자 처리 등 현안을 놓고 대립했고 그 과정에서 신뢰의 금은 깊어졌다.

■ 여전히 ‘화학적 융합’ 없는 화학동맹

여천NCC는 1999년 한화와 대림이 50대 50으로 세운 합작사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영철학·이해관계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위기 때마다 같은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동업의 ‘화학적 결합’ 없이는 여천NCC의 정상화도 또다시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수요 부진과 공급 과잉으로 석유화학 업계 전반이 구조적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대주주 간 소모적 대립은 회사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