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산업단지 DL케미칼 공장 (사진=DL케미칼)

국내 석유화학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DL케미칼이 여천NCC 구조혁신 과정에 대해 한발 더 깊이 관여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DL케미칼은 단순한 원료공급 계약을 넘어 원가 보전, 크래커 감축, 다운스트림 재편, 고용과 금융 지원까지 포괄하는 ‘주주 책임 경영’을 전면에 내세운 공식 입장을 15일 밝혔다.

■ 외부 컨설팅은 출발점…“기준 생겼지만 충분하지 않다”

DL케미칼은 최근 논란이 돼 온 여천NCC 원료가격 산정 문제에 대해 외부 컨설팅 결과를 “현실을 직시한 기준점”으로 평가했다. 그동안 원료가격을 둘러싼 해석 차이가 주주·채권단·정부 간 신뢰를 흔들어왔다는 점에서 합의 가능한 출발선이 마련됐다는 의미다.

다만 회사 측은 이 기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선을 그었다. 중국발 공급 과잉, 시황 변동성, 자구 노력의 불확실성까지 고려할 때, 채권단과 정부가 요구하는 수준의 안정성을 담보하려면 보다 강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DL케미칼이 가장 분명하게 꺼내 든 카드는 NCC 원가 보전 비중 확대다. 자구 계획이 항상 계획대로 이행된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구조혁신안에 보다 보수적인 원가 반영 구조를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여천NCC의 실적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2025년 실적은 당초 주주사에 보고된 손익분기점(BEP) 수준의 경영계획 대비 약 3000억 원 이상 후퇴한 것으로 파악된다. 외부 회계법인과 주요 전망기관들은 중국발 추가 증설 리스크를 중단기 최대 변수로 꼽고 있다.

에틸렌과 프로필렌 가격 역시 하락세다. 주요 전망기관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기초유분 가격은 연초 대비 두 자릿수 하락했고, 2026~2027년 전망 가격도 낮은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DL케미칼이 “원가 보전 강화 없이는 현금 창출과 채무 상환, 지속가능성 모두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배경이다.

■ 크래커 감축 옵션 따라 다운스트림 비즈니스 재편

DL케미칼의 메시지는 업스트림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부의 크래커 감축 기조에 맞춰 여천NCC가 감산 방향을 확정할 경우 주주사인 DL케미칼 역시 다운스트림 비즈니스를 전면 재편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수익성이 낮은 제품군은 단계적으로 정리하고 일부 설비는 스크랩하거나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재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축소된 생산 규모를 전제로 연구개발(R&D)을 통한 고부가 전환에 자원을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일본 화학업계의 감산·고도화 사례를 언급하며 “규모의 경제보다 수익성 중심의 내실 경영”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여천산단 전반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크래커 감축 이후의 시대에는 다운스트림 고부가화가 선택이 아닌 생존 조건이라는 인식이다.

이번 입장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고용과 금융 지원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점이다. DL케미칼은 구조혁신 과정에서 필요한 시장성 조달에 대해 주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생산시설 감축 이후에도 내부 재배치를 우선하고, 불가피한 잉여 인력 발생 시에도 고용 안정성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 시장성 조달 및 고용 안정성 확보···‘책임 있는 주주’ 선언

여기에 더해 모든 자구 노력 이후에도 시황 악화로 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경우 추가 금융 지원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DL케미칼 관계자는 “여천NCC가 자생 노력을 전개하고, 크래커 감축과 다운스트림 재편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시장성 조달에 대해 주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 온 기업으로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지키고, 지역 경제가 나빠지지 않도록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종현 DL케미칼 부회장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지 않겠다”며 “DL케미칼은 여천NCC의 주주로서 원가 보전, 비즈니스 재편, 고용, 재무까지 함께 책임지는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업계와 지역사회, 그리고 채권단이 안심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먼저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