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은 2023년 12월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을 발표했다. ‘셀프 연임’ 등 국내 은행의 지배구조가 글로벌 기준에 비해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였다. 5대 금융지주는 당국이 제시한 ‘모범관행’을 준수하기 위해 지난 한 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정기인사를 마무리했다. 발표 이후 1년이 지난 시점, 각 금융지주들이 ‘모범관행’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점검해본다. - 편집자주 양종희 KB금융 회장(자료=KB금융)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KB금융지주의 지배구조는 ‘모범’과 거리가 멀었다. MB정부 시절 4대 금융천왕으로 불렸던 어윤대 회장(전 고려대 총장)이 2013년 연임을 시도하다 여러 잡음이 일었고,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인 임영록 당시 KB금융 사장은 사외이사들의 지지를 얻어 차기 회장직에 올랐지만 이건호 은행장과 갈등을 빚다 조기 낙마했다. 주인 없는 기업의 수장 자리가 외부 낙하산 인사들의 먹잇감이 돼 여러 불필요한 갈등이 구조적으로 발생하던 시기였다. ■ 윤종규의 '결이 달랐던' 리더십 KB금융은 2014년 11월 임영록의 후임으로 윤종규를 회장으로 맞으면서 안정을 찾았다. 그 역시 외부 인사였지만 앞선 회장들과는 결이 달랐다. 상고를 나와 은행원(외환은행)으로 일하며 야간대학(성균관대)을 졸업했다. 행정고시를 합격하고도 면접에서 억울하게 탈락해 공인회계사로 전향했지만 낭중지추의 실력으로 2002년 국민은행 부행장에 전격 스카우트된 인물이다. 갈등 중재 능력이 탁월해 어윤대-임영록 갈등뿐만 아니라 KB금융의 근원적 갈등, 즉 M&A로 인한 국민은행-주택은행 갈등까지 큰 잡음 없이 컨트롤했다. 출중한 능력을 바탕에 둔 화합형 리더십은 2017년, 2020년 두 차례 회장직을 연임하는 데 훌륭한 자산으로 작용했다. 총 9년의 임기 동안 KB금융은 LIG손해보험, 현대증권, 푸르덴셜생명 등 굵직한 M&A를 성사시키며 은행·보험·증권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덕분에 KB금융의 비은행 부문 수익 기여도는 지난해 50%에 바짝 다가섰다. 다른 금융지주들은 엄두도 내기 힘든, 수익 다변화 목표를 비교적 단기간에 이뤄낸 것이다. 과거의 소모적인 내부 갈등을 잠재우면서 업의 본질과 경쟁력 강화에 천착한 결과였다. 이는 지배구조 안정이 회사 경영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모범사례로 통한다. 윤 회장은 투명하고 공정한 지배구조를 마련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능력 있고 합리적인 이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사외이사 선발에 신중을 기하는 한편,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글로벌 기준에도 부합하는 경영승계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사외이사들과 함께 노력했다. KB금융은 지배구조 내부규범에 최고경영자의 자격요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금융회사의 CEO에 준하는 업무 경험과 전문성, 리더십 및 도덕성을 갖추고, KB금융그룹의 비전과 가치관을 공유하며, 장단기 건전경영에 노력할 수 있는 자여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 자격요건에 부합하는 인물을 발굴하기 위해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상시적으로 내·외부 후보자를 확보·관리·평가하고, 회추위 자체도 매년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게 공들인 시스템의 최초 수혜자가 양종희 현 회장이다. 그는 KB금융 최초의 내부 출신 회장이다. 1989년 주택은행에 입사한 양 회장은 20년 가까이 영업점 및 재무 관련 부서에 근무하다 2008년 KB금융의 지주회사 출범과 함께 지주사에 몸담았다. 그는 황영기·강정원·어윤대·임영록·윤종규 회장을 모두 경험했다. 2013~2014년 이른바 ‘KB사태’ 당시에는 지주사 전략기획부장을 맡아 첨예한 갈등과 혼란을 지근거리에서 목도했다. 윤종규 회장의 눈에 들어 부사장으로 고속 승진한 그는 2016년 인수합병 회사인 KB손해보험(LIG손보)의 초대 CEO라는 중책을 맡았다. 2019년 지주사로 복귀한 후에는 보험부문 부문장, 부회장을 거쳐 2023년 11월 회장직에 올랐다. ■ '상대적 우위' KB금융 모범관행, 약점은 있다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비춰보면 KB금융의 경영승계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우수한 편에 속한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승계계획을 문서화하고 있고, 미리 마련된 CEO 자격요건에 따라 상시 후보군을 관리하고 있다. 다만, ‘후보군 및 평가방식 다양화’와 관련해선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할 것들이 있다. 당국의 모범관행 원칙 30개 가운데 경영승계와 관련된 원칙은 10개고, 이 중에는 ‘후보군에 대한 평가주체 및 평가방식 다양화(원칙12)’, ‘외부후보군의 자격요건·추천경로 명확화, 체계적인 검증절차 마련, 평가방법 및 시기의 공평성 확보(원칙13)’ 등이 핵심 내용으로 담겨 있다. 양종희 회장의 경우 당국의 모범관행 발표 전 회장에 선임됐기 때문에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문제는 차기 회장의 경우 ‘모범관행’ 원칙에 최대한 부합해야 할텐데 KB금융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윤종규 회장의 9년 장기 집권과 관련이 있다. 윤 회장의 2회 연임은 후계자들에게는 오랜 기다림을 의미한다. 경영의 영속성과 안정성에는 유리했지만 차기 회장 후보자들간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내부 후보들이 설 자리도 좁은데 외부 후보들까지 끼워주는 것은 아무래도 께름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오랜 기다림 끝에 어렵사리 CEO에 오른 양종희 회장 입장에선 3년의 임기가 짧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연임을 염두에 두고 경영을 펼친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 결국 양종희에 달렸다 결국 모범관행 핵심인 ‘후보군 및 평가방식 다양화’의 경우 양 회장의 속내와 의지, 사외이사들의 판단이 향후 방향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양 회장이 ‘셀프 연임’을 위해 내부 경쟁자들을 암암리에 배척할 경우 경영승계 프로그램은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연임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현직 프리미엄만 누리며 공정경쟁을 펼치기로 마음 먹는다면 ‘모범관행’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다. 현재 사외이사 7인은 교수 4명, 경영인 2명, 연구원 1명 등으로, 회장의 입김이 제한된 독립적 구성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기업은행장 출신인 권선주 이사회 의장을 포함해 여성 CEO 2명이 포진해 있다. 다만, 모두 양 회장보다 임기가 짧아 연임에 성공한 사외이사들만 차기 회장 선출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모범관행의 또 다른 핵심 원칙인 ‘이사회 구성의 집합적 정합성·독립성’이 지속되기만 한다면 양 회장의 ‘셀프 연임’은 어느 정도 견제가 가능한 구조로 볼 수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양 회장은 취임 1년 만에 자신의 뜻이 반영된 인사를 지난 연말 단행했다. 연임될 것이란 주변의 예상을 깨고 이재근 KB국민은행장을 이환주 KB라이프생명 대표로 전격 교체했다. 부행장을 행장으로 승진시키던 관례를 깨고 계열사 CEO를 은행장으로 발탁한 최초 사례다. 양 회장 본인이 은행장을 거치지 않고 지주 회장에 오른 것처럼 그룹에서 가장 취약한 포트폴리오인 생명보험사의 수장에게 핵심 계열사를 맡김으로써 임직원들의 ‘은행 바라기’ 문화에 충격을 주려는 의도로 읽힌다. 김재관 부사장과 정문철 부행장이 각각 카드, 생보 대표로 옮긴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아직도 갈 길이 먼 증권, 보험, 캐피탈 등 비은행 부문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핵심 인재들이 스스로 ‘험지’를 찾는 용기가 절실하다는 것이 KB금융 내부 인사들의 전언이다. 다만, 경영성과가 괜찮았던 이재근 행장을 경질하는 것은 양 회장도 원치 않은 모양새였던 듯싶다. 지주 글로벌사업부문장으로 임명해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 부실의 마무리를 맡겼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정무위 위원들의 질타를 받았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제재를 벼르고 있어 부코핀 문제가 행장 연임에 걸림돌로 작용했을 거란 분석도 제기된다. ■ 향후 주목할 관전 포인트 몇가지 문제는 신설된 ‘부문장’이란 직책이 과거 ‘부회장’의 다른 이름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이번 인사로 임명된 부문장은 이재근 글로벌부문장 외에 이창권 디지털부문장이 있다. 현재는 2명이지만 앞으로 3명, 4명으로 늘어날 여지도 있다. 그렇게 되면 윤종규 회장 시절 양종희·허인·이동철 부회장과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시스템이 된다. 이는 곧 ‘부회장제 부활’을 의미한다. 감독당국의 ‘모범관행’에선 금융지주가 부회장제를 운영하려면 “경쟁력 있는 외부후보자에게도 비상근 직위부여, 은행의 역량개발 프로그램 참여 등을 통해 이사회와의 접촉 기회 등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하고 있다. KB금융은 부문장 호칭을 사용하며 사실상 부회장제를 부활시켰지만, 외부후보자의 이사회 접촉 기회를 제공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모범관행이란 것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리딩금융’ 지위를 가진 KB금융이 지키지 않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다. 현재 KB금융 지배구조에서 관전 포인트는 외부 인재에 대한 개방성이다. 현재는 내부 인사들끼리도 속된 말로 ‘박이 터질’ 지경이다. 허인, 이동철, 박정림 등 양 회장의 경쟁자였던 인재들조차 귀하게 쓰지 못하고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이에 적어도 양 회장 임기 중에는 KB금융이 CEO 선임에 있어 외부 인사에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관전평이다. 양 회장은 모범관행 부담에도 불구하고 부회장제를 부활시킬까. 아니면 다른 직책을 신설하며 우회로를 마련할까.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6명의 사외이사들은 어떻게 중지를 모을까. 향후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들이다. <자료=금융감독원>

[모범관행 점검①KB금융] ‘불비불명’ 양종희의 선택은

최중혁 기자 승인 2025.01.16 11:30 | 최종 수정 2025.01.16 11:37 의견 0

금융당국은 2023년 12월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을 발표했다. ‘셀프 연임’ 등 국내 은행의 지배구조가 글로벌 기준에 비해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였다. 5대 금융지주는 당국이 제시한 ‘모범관행’을 준수하기 위해 지난 한 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정기인사를 마무리했다. 발표 이후 1년이 지난 시점, 각 금융지주들이 ‘모범관행’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점검해본다. - 편집자주

양종희 KB금융 회장(자료=KB금융)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KB금융지주의 지배구조는 ‘모범’과 거리가 멀었다. MB정부 시절 4대 금융천왕으로 불렸던 어윤대 회장(전 고려대 총장)이 2013년 연임을 시도하다 여러 잡음이 일었고,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인 임영록 당시 KB금융 사장은 사외이사들의 지지를 얻어 차기 회장직에 올랐지만 이건호 은행장과 갈등을 빚다 조기 낙마했다. 주인 없는 기업의 수장 자리가 외부 낙하산 인사들의 먹잇감이 돼 여러 불필요한 갈등이 구조적으로 발생하던 시기였다.

■ 윤종규의 '결이 달랐던' 리더십

KB금융은 2014년 11월 임영록의 후임으로 윤종규를 회장으로 맞으면서 안정을 찾았다. 그 역시 외부 인사였지만 앞선 회장들과는 결이 달랐다. 상고를 나와 은행원(외환은행)으로 일하며 야간대학(성균관대)을 졸업했다. 행정고시를 합격하고도 면접에서 억울하게 탈락해 공인회계사로 전향했지만 낭중지추의 실력으로 2002년 국민은행 부행장에 전격 스카우트된 인물이다. 갈등 중재 능력이 탁월해 어윤대-임영록 갈등뿐만 아니라 KB금융의 근원적 갈등, 즉 M&A로 인한 국민은행-주택은행 갈등까지 큰 잡음 없이 컨트롤했다.

출중한 능력을 바탕에 둔 화합형 리더십은 2017년, 2020년 두 차례 회장직을 연임하는 데 훌륭한 자산으로 작용했다. 총 9년의 임기 동안 KB금융은 LIG손해보험, 현대증권, 푸르덴셜생명 등 굵직한 M&A를 성사시키며 은행·보험·증권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덕분에 KB금융의 비은행 부문 수익 기여도는 지난해 50%에 바짝 다가섰다. 다른 금융지주들은 엄두도 내기 힘든, 수익 다변화 목표를 비교적 단기간에 이뤄낸 것이다. 과거의 소모적인 내부 갈등을 잠재우면서 업의 본질과 경쟁력 강화에 천착한 결과였다. 이는 지배구조 안정이 회사 경영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모범사례로 통한다.

윤 회장은 투명하고 공정한 지배구조를 마련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능력 있고 합리적인 이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사외이사 선발에 신중을 기하는 한편,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글로벌 기준에도 부합하는 경영승계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사외이사들과 함께 노력했다. KB금융은 지배구조 내부규범에 최고경영자의 자격요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금융회사의 CEO에 준하는 업무 경험과 전문성, 리더십 및 도덕성을 갖추고, KB금융그룹의 비전과 가치관을 공유하며, 장단기 건전경영에 노력할 수 있는 자여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 자격요건에 부합하는 인물을 발굴하기 위해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상시적으로 내·외부 후보자를 확보·관리·평가하고, 회추위 자체도 매년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게 공들인 시스템의 최초 수혜자가 양종희 현 회장이다. 그는 KB금융 최초의 내부 출신 회장이다. 1989년 주택은행에 입사한 양 회장은 20년 가까이 영업점 및 재무 관련 부서에 근무하다 2008년 KB금융의 지주회사 출범과 함께 지주사에 몸담았다. 그는 황영기·강정원·어윤대·임영록·윤종규 회장을 모두 경험했다. 2013~2014년 이른바 ‘KB사태’ 당시에는 지주사 전략기획부장을 맡아 첨예한 갈등과 혼란을 지근거리에서 목도했다. 윤종규 회장의 눈에 들어 부사장으로 고속 승진한 그는 2016년 인수합병 회사인 KB손해보험(LIG손보)의 초대 CEO라는 중책을 맡았다. 2019년 지주사로 복귀한 후에는 보험부문 부문장, 부회장을 거쳐 2023년 11월 회장직에 올랐다.

■ '상대적 우위' KB금융 모범관행, 약점은 있다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비춰보면 KB금융의 경영승계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우수한 편에 속한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승계계획을 문서화하고 있고, 미리 마련된 CEO 자격요건에 따라 상시 후보군을 관리하고 있다.

다만, ‘후보군 및 평가방식 다양화’와 관련해선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할 것들이 있다. 당국의 모범관행 원칙 30개 가운데 경영승계와 관련된 원칙은 10개고, 이 중에는 ‘후보군에 대한 평가주체 및 평가방식 다양화(원칙12)’, ‘외부후보군의 자격요건·추천경로 명확화, 체계적인 검증절차 마련, 평가방법 및 시기의 공평성 확보(원칙13)’ 등이 핵심 내용으로 담겨 있다. 양종희 회장의 경우 당국의 모범관행 발표 전 회장에 선임됐기 때문에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문제는 차기 회장의 경우 ‘모범관행’ 원칙에 최대한 부합해야 할텐데 KB금융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윤종규 회장의 9년 장기 집권과 관련이 있다. 윤 회장의 2회 연임은 후계자들에게는 오랜 기다림을 의미한다. 경영의 영속성과 안정성에는 유리했지만 차기 회장 후보자들간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내부 후보들이 설 자리도 좁은데 외부 후보들까지 끼워주는 것은 아무래도 께름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오랜 기다림 끝에 어렵사리 CEO에 오른 양종희 회장 입장에선 3년의 임기가 짧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연임을 염두에 두고 경영을 펼친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 결국 양종희에 달렸다

결국 모범관행 핵심인 ‘후보군 및 평가방식 다양화’의 경우 양 회장의 속내와 의지, 사외이사들의 판단이 향후 방향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양 회장이 ‘셀프 연임’을 위해 내부 경쟁자들을 암암리에 배척할 경우 경영승계 프로그램은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연임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현직 프리미엄만 누리며 공정경쟁을 펼치기로 마음 먹는다면 ‘모범관행’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다.

현재 사외이사 7인은 교수 4명, 경영인 2명, 연구원 1명 등으로, 회장의 입김이 제한된 독립적 구성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기업은행장 출신인 권선주 이사회 의장을 포함해 여성 CEO 2명이 포진해 있다. 다만, 모두 양 회장보다 임기가 짧아 연임에 성공한 사외이사들만 차기 회장 선출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모범관행의 또 다른 핵심 원칙인 ‘이사회 구성의 집합적 정합성·독립성’이 지속되기만 한다면 양 회장의 ‘셀프 연임’은 어느 정도 견제가 가능한 구조로 볼 수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양 회장은 취임 1년 만에 자신의 뜻이 반영된 인사를 지난 연말 단행했다. 연임될 것이란 주변의 예상을 깨고 이재근 KB국민은행장을 이환주 KB라이프생명 대표로 전격 교체했다. 부행장을 행장으로 승진시키던 관례를 깨고 계열사 CEO를 은행장으로 발탁한 최초 사례다. 양 회장 본인이 은행장을 거치지 않고 지주 회장에 오른 것처럼 그룹에서 가장 취약한 포트폴리오인 생명보험사의 수장에게 핵심 계열사를 맡김으로써 임직원들의 ‘은행 바라기’ 문화에 충격을 주려는 의도로 읽힌다.

김재관 부사장과 정문철 부행장이 각각 카드, 생보 대표로 옮긴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아직도 갈 길이 먼 증권, 보험, 캐피탈 등 비은행 부문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핵심 인재들이 스스로 ‘험지’를 찾는 용기가 절실하다는 것이 KB금융 내부 인사들의 전언이다.

다만, 경영성과가 괜찮았던 이재근 행장을 경질하는 것은 양 회장도 원치 않은 모양새였던 듯싶다. 지주 글로벌사업부문장으로 임명해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 부실의 마무리를 맡겼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정무위 위원들의 질타를 받았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제재를 벼르고 있어 부코핀 문제가 행장 연임에 걸림돌로 작용했을 거란 분석도 제기된다.

■ 향후 주목할 관전 포인트 몇가지

문제는 신설된 ‘부문장’이란 직책이 과거 ‘부회장’의 다른 이름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이번 인사로 임명된 부문장은 이재근 글로벌부문장 외에 이창권 디지털부문장이 있다. 현재는 2명이지만 앞으로 3명, 4명으로 늘어날 여지도 있다. 그렇게 되면 윤종규 회장 시절 양종희·허인·이동철 부회장과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시스템이 된다. 이는 곧 ‘부회장제 부활’을 의미한다.

감독당국의 ‘모범관행’에선 금융지주가 부회장제를 운영하려면 “경쟁력 있는 외부후보자에게도 비상근 직위부여, 은행의 역량개발 프로그램 참여 등을 통해 이사회와의 접촉 기회 등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하고 있다. KB금융은 부문장 호칭을 사용하며 사실상 부회장제를 부활시켰지만, 외부후보자의 이사회 접촉 기회를 제공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모범관행이란 것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리딩금융’ 지위를 가진 KB금융이 지키지 않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다.

현재 KB금융 지배구조에서 관전 포인트는 외부 인재에 대한 개방성이다. 현재는 내부 인사들끼리도 속된 말로 ‘박이 터질’ 지경이다. 허인, 이동철, 박정림 등 양 회장의 경쟁자였던 인재들조차 귀하게 쓰지 못하고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이에 적어도 양 회장 임기 중에는 KB금융이 CEO 선임에 있어 외부 인사에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관전평이다.

양 회장은 모범관행 부담에도 불구하고 부회장제를 부활시킬까. 아니면 다른 직책을 신설하며 우회로를 마련할까.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6명의 사외이사들은 어떻게 중지를 모을까. 향후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들이다.

<자료=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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