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이소연 기자] 가수들이 사랑을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힘든 마음을 가감 없이 털어놓기도 하고 마음 시린 기억을 조심스럽게 꺼내놓기도 한다. 리스너들이 여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공감’이다.
공감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가장 흔한 의미는 모두가 지니고 있는 필수불가결한 지점을 건드릴 때다. 대중가요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주제가 사랑과 이별인 것과 같다. 역설적으로 사랑과 이별 노래가 사람들에게 가장 잘 통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주제가 두 가지로 집중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랑과 이별’의 껍데기를 들어 올리면 내밀한 속내가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나이가 들며 달라지는 감정들, 뜬구름 잡는 대신 현실적인 고민들을 담아내는 순간을 대중들은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리스너들은 가수들의 용기를 높이 산다. 현재 음원차트를 휩쓸고 있는 에픽하이가 가장 최근의 예다. 3년 만에 컴백한 에픽하이는 사랑과 이별이 담긴 지난 앨범과 결이 다른 앨범을 들고 나왔다.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라며 가장 먼저 외치더니 가수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BLEED)’, 옛 추억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씁쓸함(‘어른 즈음에’), 평가절하된 음악에 대한 비판(‘노땡큐’) 등을 토해냈다.
오랜 기간 차트 롱런을 자랑한 우원재는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의 노래 ‘시차’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맹신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하는 모습을 그렸다. 힙합신의 거친 말 하나 없이도 묵직한 울림을 선사했다. ‘시차’가 ‘멋진 곡’으로 평가 받는 이유는 그의 시적인 표현 때문일 터다. 이는 우원재가 자신에 대해 고찰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다.
이게 바로 또 다른 공감이다. 무엇이 더 낫다고 비교할 수 있는 부분도, 경계 지을 수 있는 속성도 아니다. 다만 남들에게 내보이기 싫거나 부끄러운 일이더라도 혹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더라도 꺼내 보일 수 있는 용기가 가치 있음은 분명하다. 그 용기는 감정의 겉핥기가 아니라 자신을 파고들며 끊임없이 생각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볼빨간사춘기가 타이틀곡 ‘썸 탈꺼야’ 외 ‘나의 사춘기에게’를 차트에 올릴 수 있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볼빨간사춘기는 모두가 겪는 ‘사춘기’를 주제로 활용하면서도 그 특성을 잘 짚어내 공감을 샀다. ‘나의 사춘기에게’는 첫 소절부터 리스너들을 울린다. ‘한때 내가 이 세상에 사라지길 바랬어’라는 말은 캄캄한 공간에서 웅크리고 있는 사춘기 시절 내 모습으로 확 끌어당긴다. 곡의 끝 무렵 ‘얼마나 아팠을까’라고 애절하게 노래하는 보컬은 너를 향한 위로이자 ‘나’를 향한 위로다.
윤종신의 ‘좋니’와 박원의 ‘올 오브 마이 라이프(all of my life)’가 오래도록 사랑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두 가수는 사랑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찌질함(그러나 결코 찌질하다고 할 수 없는)을 노래한다.
공감의 본질은 화려한 표현도, 상투적인 텍스트도 아니다. 결국 공감은 ‘자아’로부터 나온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피상적인 것들을 걷어내는 순간 연한 속살이 드러난다. 리스너들은 그 연한 속살을 어루만지며 그 순간의 공기를 함께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