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추격자' 스틸컷) [뷰어스=문서영 기자] 희대의 살인사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살릴 수 있었던’ 시간들이다. 가장 간절하지만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 누구의 책임인가를 묻기 전에 이는 우리 모두에게 있을 수 있는 순간들이다. 가장 최근 벌어진 이영학 사건의 피해자는 여러 차례 구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며 대중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친구의 아빠에게 살해된 14살 여중생 김모 양은 9월 30일 친구인 이영학 딸과 만나 실종됐다. 김 양의 어머니가 이영학 딸에게 행방을 물을 시각, 김 양은 이영학 딸이 건네 준 수면제 음료수를 먹고 잠들어 있었다. 또 김 양의 어머니가 최초 실종 신고를 하자 112 상황실은 “중랑서 여성청소년수사팀(여청팀)이 출동해 지구대 대원과 함께 현장을 수색하라”는 지령을 내렸지만 하지만 여청팀 소속 경찰은 “알겠다”고만 대답하고 실제 출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2012년 오원춘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여성도 다르지 않다. 여성은 경찰에 신고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경찰은 납치 상황을 전해듣고도 “범인이 누구냐” “자세한 위치가 어디냐”는 등 긴 질문을 이어가며 시간을 끌었다. 피해자가 구체적 위치를 설명했음에도 경찰은 엉뚱한 곳을 수색했다. 피해자는 시신조차 온전하지 못한 주검이 됐다. 2010년 1월 24일, 경찰은 20대 여성이 납치·성폭행 당한 범행 현장인 김길태의 자택 옥탑방에서 그와 마주쳤다. 하지만 “나는 위층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김길태의 말을 믿고 경찰은 현장을 벗어났다. 그로부터 한달 뒤 여중생이 사라졌고, 경찰은 역시 단순 실종으로 여겼지만 희대의 살인사건 주범은 김길태였다. 비단 경찰만을 비난하자는 취지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순간들이다. ‘그때였다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생각을 달리 먹었다면’…. 순간의 외면이 초래한 사건에 뒤따를 수밖에 없는 가정과 괴로움. 사람들의 외면과 안일한 생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상상하자면 끝도 없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사진='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책표지) ■ 작가가 직시한 비극적 사건의 진원지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이 점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백년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사람들의 외면, 무심함, 혹시나 하는 안일함, 침묵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말한다. 바닷가의 작은 마을, 결혼 첫날밤 혼전 순결자가 아니란 이유로 집에 돌아온 앙헬라. 그의의 쌍둥이 오빠들은 앙헬라의 순결을 앗아간 이가 나사르라 단정하고 가족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그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형제는 마을 사람들에게 살인 장소와 시간, 동기까지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지만 누구도 나사르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누군가는 개인적 복수심에, 누군가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경찰은 쌍둥이들에게서 칼을 빼앗아 보관하는 것으로 나사르가 죽겠냐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결국 마을은 명예와 복수, 폭력과 무관심, 거짓 증언과 오해로 얽힌 비극적 사건에 휩싸인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작가의 허무맹랑한 가정이나 무리한 상상력이 동원된 소설이 아니라는 얘기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처음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겠다 마음 먹었을 때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자식을 잃은 피해자의 어머니가 죽고 나서야 마르케스의 어머니는 마르케스에 전화를 걸어 소설화를 허락한다. 이 글을 쓰지 않는다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겠다고 생각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사건이 벌어진 지 30년이 지나서야 펜을 들 수 있게 됐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 작품을 통해 ‘집단적 책임’을 논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건을 받아들인다. 누군가는 농담으로, 누군가는 침묵으로, 누군가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그래서 섬뜩하다. 사건과 관련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인의 방조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때로는 신문기사처럼 때로는 소설처럼 풀어나간다. 그렇게 질문을 던진다. 타인이 한 사람의 운명을 판단한 기준은 무엇인가,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순간에 귀를 닫고 눈을 감은 이들의 현재와 미래는 또 어떤가. 책은 얇다. 외출시 가방에 넣기에도 부담없는 사이즈다. 강렬한 문체와 서사로 금세 읽어 내려갈 수 있다. 그러나 읽은 시간보다 오래,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인간이 인간을 외면하는 지점에서 오는 섬뜩한 현실

문서영 기자 승인 2017.10.27 11:19 | 최종 수정 2135.08.31 00:00 의견 0
(사진=영화 '추격자' 스틸컷)
(사진=영화 '추격자' 스틸컷)

[뷰어스=문서영 기자] 희대의 살인사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살릴 수 있었던’ 시간들이다. 가장 간절하지만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 누구의 책임인가를 묻기 전에 이는 우리 모두에게 있을 수 있는 순간들이다.

가장 최근 벌어진 이영학 사건의 피해자는 여러 차례 구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며 대중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친구의 아빠에게 살해된 14살 여중생 김모 양은 9월 30일 친구인 이영학 딸과 만나 실종됐다. 김 양의 어머니가 이영학 딸에게 행방을 물을 시각, 김 양은 이영학 딸이 건네 준 수면제 음료수를 먹고 잠들어 있었다. 또 김 양의 어머니가 최초 실종 신고를 하자 112 상황실은 “중랑서 여성청소년수사팀(여청팀)이 출동해 지구대 대원과 함께 현장을 수색하라”는 지령을 내렸지만 하지만 여청팀 소속 경찰은 “알겠다”고만 대답하고 실제 출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2012년 오원춘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여성도 다르지 않다. 여성은 경찰에 신고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경찰은 납치 상황을 전해듣고도 “범인이 누구냐” “자세한 위치가 어디냐”는 등 긴 질문을 이어가며 시간을 끌었다. 피해자가 구체적 위치를 설명했음에도 경찰은 엉뚱한 곳을 수색했다. 피해자는 시신조차 온전하지 못한 주검이 됐다.

2010년 1월 24일, 경찰은 20대 여성이 납치·성폭행 당한 범행 현장인 김길태의 자택 옥탑방에서 그와 마주쳤다. 하지만 “나는 위층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김길태의 말을 믿고 경찰은 현장을 벗어났다. 그로부터 한달 뒤 여중생이 사라졌고, 경찰은 역시 단순 실종으로 여겼지만 희대의 살인사건 주범은 김길태였다.

비단 경찰만을 비난하자는 취지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순간들이다. ‘그때였다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생각을 달리 먹었다면’…. 순간의 외면이 초래한 사건에 뒤따를 수밖에 없는 가정과 괴로움. 사람들의 외면과 안일한 생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상상하자면 끝도 없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사진='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책표지)
(사진='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책표지)

■ 작가가 직시한 비극적 사건의 진원지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이 점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백년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사람들의 외면, 무심함, 혹시나 하는 안일함, 침묵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말한다.

바닷가의 작은 마을, 결혼 첫날밤 혼전 순결자가 아니란 이유로 집에 돌아온 앙헬라. 그의의 쌍둥이 오빠들은 앙헬라의 순결을 앗아간 이가 나사르라 단정하고 가족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그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형제는 마을 사람들에게 살인 장소와 시간, 동기까지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지만 누구도 나사르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누군가는 개인적 복수심에, 누군가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경찰은 쌍둥이들에게서 칼을 빼앗아 보관하는 것으로 나사르가 죽겠냐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결국 마을은 명예와 복수, 폭력과 무관심, 거짓 증언과 오해로 얽힌 비극적 사건에 휩싸인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작가의 허무맹랑한 가정이나 무리한 상상력이 동원된 소설이 아니라는 얘기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처음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겠다 마음 먹었을 때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자식을 잃은 피해자의 어머니가 죽고 나서야 마르케스의 어머니는 마르케스에 전화를 걸어 소설화를 허락한다. 이 글을 쓰지 않는다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겠다고 생각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사건이 벌어진 지 30년이 지나서야 펜을 들 수 있게 됐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 작품을 통해 ‘집단적 책임’을 논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건을 받아들인다. 누군가는 농담으로, 누군가는 침묵으로, 누군가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그래서 섬뜩하다. 사건과 관련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인의 방조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때로는 신문기사처럼 때로는 소설처럼 풀어나간다. 그렇게 질문을 던진다. 타인이 한 사람의 운명을 판단한 기준은 무엇인가,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순간에 귀를 닫고 눈을 감은 이들의 현재와 미래는 또 어떤가.

책은 얇다. 외출시 가방에 넣기에도 부담없는 사이즈다. 강렬한 문체와 서사로 금세 읽어 내려갈 수 있다. 그러나 읽은 시간보다 오래,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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