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뷰어스=문서영 기자] 간혹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가 자문하게 되는 때가 있다. 뜬금없이 우울의 우물을 파고 있을 때 찾아오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잘 살아간다는 생각에 취한 이들을 볼 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기자 초년생 시절 함께 일했던 선배가 그런 사람이었다. 직장인으로도 개인으로도 본인은 참 잘 살아간다는 생각에 ‘만취’한 사람이었다. 그는 취재를 위해 불법적 일들을 서슴지 않았다. 지금이야 개인정보보호가 강화되고 사생활 침해에 대한 규제가 심해져 불가능한 일들을 그때의 선배는 너무도 당연하게 했다. ‘별 일’이 터지지 않는 날이 지속되면 “누구 안 죽나, 그래야 일하지”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양반이기도 했다. 개인으로서 보는 선배란 사람도 썩 좋지는 않았다. 첫 직장을 함께 다닌 10년지기 친구를 자신과 자꾸만 비교했다. “걔는 결혼했지만 저렇게 허덕허덕 살지 않냐. 나는 결혼을 안한 대신 이렇게 특종도 하고 연봉도 받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됐다” 이런 과정들을 위대한 사람, 성공한 기자로서의 자신을 끝없이 강조하고 합리화했다. 그가 비교하는 대상이 내가 인간적으로 존경해마지 않은 선배였다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나는 그의 후배로 불리는 게 부끄러웠다. 그 회사를 나오게 됐을 땐 더 이상 그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후련했다. (사진='남아있는 나날' 책표지) 인생을 살면서 다시 그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책은 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 이 책에도 자신이 걸어온 길이 최고였다고 생각하는 이가 등장한다. 이 주인공은 앞서 언급한 이와는 다르다. 남을 헐뜯거나 짓밟고 올라서는 인물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산다는 점이 비슷하다. 앞서 언급한 인물처럼 자만에 취한 이는 아니기에 그 알을 깨고 나오려 한다는 점은 다르다. 1956년 여름, 영국의 저명한 저택 ‘달링턴 홀’ 집사로 평생을 보낸 스티븐스는 새로운 주인의 호의 덕에 6일간의 휴가를 받고 생애 첫 여행길에 나선다. 여행의 목적은 켄턴 양을 찾아가는 것. 젊은 날 사랑했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그녀가 보내온 편지를 곱씹어 읽으며 길을 나선다. 스티븐스는 가족과 사랑마저 포기한 인물이다. 오직 맹목에 가까운 충직함으로 달링턴 경을 섬기고 달링턴 홀을 지켜온 과거를 끝없이 회상한다. 그러나 그가 존경했던 주인이 나치 지지자였다는 진실이 밝혀지자 꼿꼿이 지켜온 ‘위대한 집사’로서의 신념과 신뢰가 무너져내린다. 스티븐스는 인생의 황혼기가 되어서야 지나가버린 자신의 인생과 사랑을 되돌아보게 된다. ‘남아있는 나날’은 어렵게 흘러간다. 스티븐스는 지속적으로 집사의 의무와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가에 집착하며 설명하고 또 설명하려 애쓴다. 이 대목들이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평이하게, 다소 지루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작가의 모든 문장은 스티븐스가 집사로 살아온 인생과 남아있는 날을 위한 것이다. 왜 이런 말들을 줄줄이 늘어놓는가에 대한 의문은 한 장 한 장 스티븐스의 인생을 되짚으면서 풀려나간다.  (사진=영화 '남아있는 나날' 스틸컷)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 측은 가즈오 이시구로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이시구로는 초기작에서 이미 가장 깊이 다루는 주제 ‘기억, 시간, 자기 기만’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글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 조심스럽고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조심스럽고 절제됐기에 빠른 전개와 속도감에 익숙한 독자들에겐 지루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길고 긴 스티븐스의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 독자에게 묵직한 상념을 남긴다. 내가 걸어온 길은 어떤 길이었는가.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를 나의 남아 있는 나날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의 삶에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스티븐스가 가족과 사랑까지 외면해가며 지키려 했던 집사로서의 자부심이 주인의 행적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듯 우리는 생의 순간순간 ‘맞다’ ‘옳다’고 생각해왔던 지점들이 무너지는 좌절을 마주해야 한다. 그 이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오롯이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가즈오 이시구로 책 8종 중 5종을 번역한 김남주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더듬이로 길을 가고 그 여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스티븐스가 여행을 통해 더듬이를 세웠듯 우리 역시 끝없이 생각하고 의심하고 고찰하며 더듬이를 세워야 할 것이다. 누구나 스티븐스와 다르지 않다. 그가 시대적 상황 속에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 억압돼 살았듯 우리 역시 사회와 정해진 틀 안에서 지각력이 억압된 채 삶의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남아있는 나날’은 독자들이 삶의 자세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해준다. 2017이란 숫자의 해를 살아내고 2018년을 맞는 시점에 읽는다면 의미가 더욱 깊어질 책이다.

가즈오 이시구로가 묻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문서영 기자 승인 2017.12.29 12:20 | 최종 수정 2135.12.27 00:00 의견 0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뷰어스=문서영 기자] 간혹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가 자문하게 되는 때가 있다. 뜬금없이 우울의 우물을 파고 있을 때 찾아오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잘 살아간다는 생각에 취한 이들을 볼 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기자 초년생 시절 함께 일했던 선배가 그런 사람이었다. 직장인으로도 개인으로도 본인은 참 잘 살아간다는 생각에 ‘만취’한 사람이었다.

그는 취재를 위해 불법적 일들을 서슴지 않았다. 지금이야 개인정보보호가 강화되고 사생활 침해에 대한 규제가 심해져 불가능한 일들을 그때의 선배는 너무도 당연하게 했다. ‘별 일’이 터지지 않는 날이 지속되면 “누구 안 죽나, 그래야 일하지”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양반이기도 했다. 개인으로서 보는 선배란 사람도 썩 좋지는 않았다. 첫 직장을 함께 다닌 10년지기 친구를 자신과 자꾸만 비교했다. “걔는 결혼했지만 저렇게 허덕허덕 살지 않냐. 나는 결혼을 안한 대신 이렇게 특종도 하고 연봉도 받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됐다” 이런 과정들을 위대한 사람, 성공한 기자로서의 자신을 끝없이 강조하고 합리화했다. 그가 비교하는 대상이 내가 인간적으로 존경해마지 않은 선배였다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나는 그의 후배로 불리는 게 부끄러웠다. 그 회사를 나오게 됐을 땐 더 이상 그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후련했다.

(사진='남아있는 나날' 책표지)
(사진='남아있는 나날' 책표지)

인생을 살면서 다시 그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책은 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 이 책에도 자신이 걸어온 길이 최고였다고 생각하는 이가 등장한다. 이 주인공은 앞서 언급한 이와는 다르다. 남을 헐뜯거나 짓밟고 올라서는 인물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산다는 점이 비슷하다. 앞서 언급한 인물처럼 자만에 취한 이는 아니기에 그 알을 깨고 나오려 한다는 점은 다르다.

1956년 여름, 영국의 저명한 저택 ‘달링턴 홀’ 집사로 평생을 보낸 스티븐스는 새로운 주인의 호의 덕에 6일간의 휴가를 받고 생애 첫 여행길에 나선다. 여행의 목적은 켄턴 양을 찾아가는 것. 젊은 날 사랑했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그녀가 보내온 편지를 곱씹어 읽으며 길을 나선다. 스티븐스는 가족과 사랑마저 포기한 인물이다. 오직 맹목에 가까운 충직함으로 달링턴 경을 섬기고 달링턴 홀을 지켜온 과거를 끝없이 회상한다. 그러나 그가 존경했던 주인이 나치 지지자였다는 진실이 밝혀지자 꼿꼿이 지켜온 ‘위대한 집사’로서의 신념과 신뢰가 무너져내린다. 스티븐스는 인생의 황혼기가 되어서야 지나가버린 자신의 인생과 사랑을 되돌아보게 된다.

‘남아있는 나날’은 어렵게 흘러간다. 스티븐스는 지속적으로 집사의 의무와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가에 집착하며 설명하고 또 설명하려 애쓴다. 이 대목들이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평이하게, 다소 지루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작가의 모든 문장은 스티븐스가 집사로 살아온 인생과 남아있는 날을 위한 것이다. 왜 이런 말들을 줄줄이 늘어놓는가에 대한 의문은 한 장 한 장 스티븐스의 인생을 되짚으면서 풀려나간다. 

(사진=영화 '남아있는 나날' 스틸컷)
(사진=영화 '남아있는 나날' 스틸컷)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 측은 가즈오 이시구로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이시구로는 초기작에서 이미 가장 깊이 다루는 주제 ‘기억, 시간, 자기 기만’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글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 조심스럽고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조심스럽고 절제됐기에 빠른 전개와 속도감에 익숙한 독자들에겐 지루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길고 긴 스티븐스의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 독자에게 묵직한 상념을 남긴다. 내가 걸어온 길은 어떤 길이었는가.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를 나의 남아 있는 나날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의 삶에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스티븐스가 가족과 사랑까지 외면해가며 지키려 했던 집사로서의 자부심이 주인의 행적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듯 우리는 생의 순간순간 ‘맞다’ ‘옳다’고 생각해왔던 지점들이 무너지는 좌절을 마주해야 한다. 그 이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오롯이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가즈오 이시구로 책 8종 중 5종을 번역한 김남주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더듬이로 길을 가고 그 여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스티븐스가 여행을 통해 더듬이를 세웠듯 우리 역시 끝없이 생각하고 의심하고 고찰하며 더듬이를 세워야 할 것이다. 누구나 스티븐스와 다르지 않다. 그가 시대적 상황 속에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 억압돼 살았듯 우리 역시 사회와 정해진 틀 안에서 지각력이 억압된 채 삶의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남아있는 나날’은 독자들이 삶의 자세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해준다. 2017이란 숫자의 해를 살아내고 2018년을 맞는 시점에 읽는다면 의미가 더욱 깊어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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