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기묘한 이야기' 스틸컷)
[뷰어스=문서영 기자] 일본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를 꽤 애정하며 시청했던 적이 있다. 황당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론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 긴 세월 동안 축적돼 왔다. 1990년부터 시작해 매년 방영되는 이 드라마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능력을 선사하는 사탕 이야기도 있고 행운의 신이 등장하기도 한다. 만화 속에 들어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중년아저씨 이야기는 유명하다. 권태기 특효약도 등장하고 저주의 웹사이트도 있다.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기묘’하다는 것이다. 현실과 맞닿아있으면서도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이야기들.
이 드라마는 왜 사랑받았고 장수할까. 매 편이 현실에서 불가한 일들이지만 역설적으로 적나라한 현실과 인간의 심연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저 재미로 보기엔 섬뜩하고 기괴하며 뭉클한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집 ‘투명한 미궁’도 그렇다. 갖가지 기묘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동시에 인간이 느끼는 상실과 갈등에 대해 논한다.
‘투명한 미궁’에는 남의 필체를 똑같이 흉내낼 수 있는 우편배달부,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찾으라는 의뢰를 받은 남자, 부다페스트의 저택에서 지울 수 없는 경험을 한 남녀, 아버지의 유품에서 뜻밖의 물건을 발견한 자매, 타오르는 불꽃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젊은이, 교통사고로 연인을 잃은 후 기묘한 병에 걸린 극작가가 등장한다.
(사진='투명한 미궁' 책표지)
자신일지 똑같은 사람일지 모를 사람을 찾는 젊은이의 이야기나 불의 모양을 보며 여성화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4편의 이야기는 모두 가족이나 연인을 잃은 허망함, 가족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미묘한 갈등과 경쟁심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가족으로부터 태어나 가족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이 느끼는 복잡다난한 마음들. 여기에 자신을 잃어버린 남자의 혼란이나 불을 사랑한다는 마음을 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는 남자가 평생 안고가야 할 슬픔까지, 이들의 상처는 결코 아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치유를 위한 위로도 아닌, 상처를 헤집는 적나라함도 아닌 한 중간에서 히라노 게이치로는 환상을 뒤섞어 끝없는 미궁을 헤매는 인간 군상을 조명한다.
이들은 고통 속에서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하지만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영역인 고독과 상실감 안에서 허우적댈 뿐이다. 특히 소설의 배경에 등장하는 동일본 대지진은 작가가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인간의 상실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수록작들 모두 2013년에서 2014년 사이 쓰였는데 작가는 이 수록작들을 통해 빈번하게 인생을 관통하는 순간들을 말한다. 짧은 찰나,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나는 순간을 통해 인간에 적용되는 시간이 과연 공통적 시간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시선은 상실 후의 인간의 변화에 도착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현실에서 일그러진 환상과도 같은 변화를 겪지만 결국 희망과 재생에 다다른다. 깊고 깊은 상처 안에서 결국은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인간이라 말하고 싶은 것처럼.
히라노 게이치로는 교토 대학 법학부에 재학 중이던 시절 ‘일식’으로 제120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단번에 일본 문단의 기대주로 떠오른 작가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달’은 탐미주의적 환상을 그려내며 독자들에게 몽롱한 만족감을 전하지만 ‘투명한 미궁’은 마찬가지로 탐미적이고 환상적이면서도 조금 더 현실로 빠져나온 느낌이다.
책은 가볍고 작다. 6편의 이야기가 나눠져 있는 데다 262페이지로 부담도 없다. 그 안에서 줄곧 유지되는 오묘하고 기묘한 분위기는 은근한 긴장감을 선사하며 독자의 몰입도를 높인다. 여기에 간결한 문체와 특유의 상상력, 흡인력 넘치는 필력이 더해지며 이야기가 지닌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