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alou Efter tio TV4) [뷰어스=문다영 기자] 멋모르던 대학생 시절 인턴을 지낸 언론사에서 고향 선배를 만났다. 수십 년의 나이차였지만 국내 최대 언론사에서 승승장구하며 젠틀하고 기자의식 강했던 그는 멘토와 다름 없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선배와의 만남은 이어졌다. 늘 그렇듯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들을 전해주는 선배와의 만남을 꺼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만난지 몇 년 만에 술자리를 하게 됐다. 1차였던 광화문 포차에서 기자의 업무와 기자의 인생에 대해 구구절절 옳은 말을 늘어놓던 그는 갑자기 노래방에 가자며 이끌었다. 평소 그 선배의 젠틀함을 믿었건만…만취한 그는 노래방에서 허리를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 이럴 수가. ‘브루투스 너마저’를 외쳤던 카이사르의 마음 그대로였다. 만취한 그를 뿌리치고 밖으로 나와 그 길로 택시를 잡아탔다. 오후 10시가 조금 안된 시각이었다. 1년 여 뒤 우연히 광화문 어느 카페에서 마주쳤을 때 “왜 연락을 안해?”라며 친근하게 물어보는 그 중년의 기자 선배에게 쏘아붙일 수도 없었다. 그 이후로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여전히 기분은 ‘더.럽.다’. 아마 지금 뒤늦게 미투를 외치며 폭로에 나서는 성폭력 피해자들도 내 마음과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한번쯤 떠올리게 되는 상상이 있다. 그 선배가 바로 다음날, 혹은 뒤늦게라도 내게 사과를 했다면 어땠을까. 아니, 그에 앞서 내가 먼저 이 문제를 그에게 언급했다면 그는 사과했을까? 한번이라도 성폭력을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해봤음직한 생각. 그 일이 지구 작은 곳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사진=책표지) 아이슬란드 작가 토르디스 엘바와 호주의 청소년 지도사 톰 스트레인저가 바로 그 주인공. 둘은 성폭력을 여성의 이슈로만 한정 지을 것이 아니라 대다수 성폭력의 당사자인 ‘남성’이 함께 참여할 때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날 강연 뿐 아니라 ‘용서의 나라(South of Forgiveness)’라는 책으로 출간돼 국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미투(Me Too) 운동이 한창인 요즘 ‘용서의 나라’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 가해자가 갖춰야 할 자세는 물론이고 성폭력의 범위에 이르기까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게 만든다. 토르디스 엘바는 아이슬란드에 유학 온 톰 스트레인저와 사귀게 된다. 그러나 어느 밤, 자신이 만취했을 때 톰은 동의없이 2시간 동안 그를 범한다. 남자친구였기에, 스스로가 만취해 있었고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였기에 토르디스는 그것이 성폭행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가까스로 그 행위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성폭행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토르디스는 자해로 고통을 풀어내려 한다. 그 고통의 한가운데서 토르디스는 피해자인 자신을 학대하는 것을 멈추고 그 시선을 가해자인 톰에게로 옮겨간다. 고심 끝에 보낸 이메일은 8년간 이어지고 마침내 두 사람은 강간의 나라로 불리는 남아공 케이프 타운에서 재회한다. 그들이 재회한 이유는 하나다. 용서의 과정을 밟기 위해서. 토르디스와 톰의 이야기는 두 사람이 연인이었다는 점에서 용서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선입견을 안긴다. 그러나 그 생각을 떠올리는 스스로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만든다. 성폭력은 관계로 상황으로 합리화될 수 없는 것이다. 당사자에게 어떤 행위가 피해였다면 가해였다면 그것은 분명한 성폭력이다. 최근 미투 운동에서 논란의 불씨가 되는 피해자의 행동, 말투 등 역시 제 삼자가 재단할 수는 없다. 토르디스는 그렇게 톰과의 관계를 한 톨 거짓 없이 드러냄으로써 폭력과 신체적 구속, 협박 등이 성폭력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토르디스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간과하는 점을 적시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고통의 세월을 지내는 점은 옳지 않다는 것. 실제 국내 성폭력 피해자 실태 조사에서도 성폭력 피해자 대다수가 우울증, 자해, 원만치 못한 대인 관계 등 2차 피해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다. 성폭력 피해자는 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좀 먹는 행위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 점을 직시하며 피해자가 스스로를 탓하지 않아야 한다고 용기를 북돋운다. 또 한 가지, 가해자인 톰 스트레인저다. 톰은 피해자가 옛 연인이며 복지와 관련한 일을 하는 인물이다. 용서를 구하기 좋은 갖가지 이유를 가진 셈이지만 이 모든 점을 떠나 자신이 가해자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용서를 구하려는 태도는 무척이나 인상깊다. 대부분의 가해자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조차 꺼려 한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이윤택 연출가를 비롯해 사실을 부정하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입장을 바꾼 오달수 등만 봐도 가해자의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죽하면 “잘못했다” “제 잘못”이라 말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일까. 그런 점에서 수년의 세월 동안 피해자에 잘못을 구하고 추악했던 자신의 민낯을 들여다보려 한 톰의 자세는 죄를 떠나 칭찬하고 싶을 정도다. (사진=BBC 방송화면) 다만 ‘용서의 나라’는 토르디스의 개인적 감정이 너무 많이 섞여 들어가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로서의 내면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토르디스는 극작가이기도 하기에 유려한 문체로 독자들을 끌어당기지만 동시에 너무 극적인 문장들로 이 책이 성폭력과 용서의 과정을 담은 책인지 불미스러운 일로 헤어진 연인이 재회해 감정이 흔들리는 책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시덥잖은 농담과 세세한 상황 설명들이 혼란을 보탠다. 그 덕에 독자들의 피로감은 배로 늘어난다. 이 책이 성폭력에 대한,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책이며 많은 시사점을 남기는 책이라는 점을 시시때때로 상기하며 읽어야 한다. 그럼에도 ‘용서의 나라’는 지금 이 시점, 독자로 하여금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추천할만하다. 성폭력의 원인이 자신이 아닌 가해자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직시하고 용서의 과정으로까지 나아가는 피해자, 추악한 성폭력을 벌인 스스로를 눈감고 외면하는 대신 정면으로 응시하려 노력한 가해자, 덮고 넘어가라고 잊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라 응원한 피해자의 남편과 가해자의 가족까지. 성폭력이라는 범죄 앞에선 그 누구도 허투루 생각하거나 안일해선 안된다는 점을 일깨운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인식부터 개선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과 용기가 필요한 지 거듭 깨닫게 한다.

그 때, 그 성폭력 가해자에게 묻고 싶다

문다영 기자 승인 2018.04.06 10:46 | 최종 수정 2136.07.10 00:00 의견 0
(사진=Malou Efter tio TV4)
(사진=Malou Efter tio TV4)

[뷰어스=문다영 기자] 멋모르던 대학생 시절 인턴을 지낸 언론사에서 고향 선배를 만났다. 수십 년의 나이차였지만 국내 최대 언론사에서 승승장구하며 젠틀하고 기자의식 강했던 그는 멘토와 다름 없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선배와의 만남은 이어졌다. 늘 그렇듯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들을 전해주는 선배와의 만남을 꺼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만난지 몇 년 만에 술자리를 하게 됐다. 1차였던 광화문 포차에서 기자의 업무와 기자의 인생에 대해 구구절절 옳은 말을 늘어놓던 그는 갑자기 노래방에 가자며 이끌었다. 평소 그 선배의 젠틀함을 믿었건만…만취한 그는 노래방에서 허리를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 이럴 수가. ‘브루투스 너마저’를 외쳤던 카이사르의 마음 그대로였다. 만취한 그를 뿌리치고 밖으로 나와 그 길로 택시를 잡아탔다. 오후 10시가 조금 안된 시각이었다. 1년 여 뒤 우연히 광화문 어느 카페에서 마주쳤을 때 “왜 연락을 안해?”라며 친근하게 물어보는 그 중년의 기자 선배에게 쏘아붙일 수도 없었다. 그 이후로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여전히 기분은 ‘더.럽.다’.

아마 지금 뒤늦게 미투를 외치며 폭로에 나서는 성폭력 피해자들도 내 마음과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한번쯤 떠올리게 되는 상상이 있다. 그 선배가 바로 다음날, 혹은 뒤늦게라도 내게 사과를 했다면 어땠을까. 아니, 그에 앞서 내가 먼저 이 문제를 그에게 언급했다면 그는 사과했을까?

한번이라도 성폭력을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해봤음직한 생각. 그 일이 지구 작은 곳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사진=책표지)
(사진=책표지)

아이슬란드 작가 토르디스 엘바와 호주의 청소년 지도사 톰 스트레인저가 바로 그 주인공. 둘은 성폭력을 여성의 이슈로만 한정 지을 것이 아니라 대다수 성폭력의 당사자인 ‘남성’이 함께 참여할 때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날 강연 뿐 아니라 ‘용서의 나라(South of Forgiveness)’라는 책으로 출간돼 국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미투(Me Too) 운동이 한창인 요즘 ‘용서의 나라’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 가해자가 갖춰야 할 자세는 물론이고 성폭력의 범위에 이르기까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게 만든다.

토르디스 엘바는 아이슬란드에 유학 온 톰 스트레인저와 사귀게 된다. 그러나 어느 밤, 자신이 만취했을 때 톰은 동의없이 2시간 동안 그를 범한다. 남자친구였기에, 스스로가 만취해 있었고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였기에 토르디스는 그것이 성폭행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가까스로 그 행위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성폭행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토르디스는 자해로 고통을 풀어내려 한다. 그 고통의 한가운데서 토르디스는 피해자인 자신을 학대하는 것을 멈추고 그 시선을 가해자인 톰에게로 옮겨간다. 고심 끝에 보낸 이메일은 8년간 이어지고 마침내 두 사람은 강간의 나라로 불리는 남아공 케이프 타운에서 재회한다. 그들이 재회한 이유는 하나다. 용서의 과정을 밟기 위해서.

토르디스와 톰의 이야기는 두 사람이 연인이었다는 점에서 용서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선입견을 안긴다. 그러나 그 생각을 떠올리는 스스로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만든다. 성폭력은 관계로 상황으로 합리화될 수 없는 것이다. 당사자에게 어떤 행위가 피해였다면 가해였다면 그것은 분명한 성폭력이다. 최근 미투 운동에서 논란의 불씨가 되는 피해자의 행동, 말투 등 역시 제 삼자가 재단할 수는 없다. 토르디스는 그렇게 톰과의 관계를 한 톨 거짓 없이 드러냄으로써 폭력과 신체적 구속, 협박 등이 성폭력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토르디스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간과하는 점을 적시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고통의 세월을 지내는 점은 옳지 않다는 것. 실제 국내 성폭력 피해자 실태 조사에서도 성폭력 피해자 대다수가 우울증, 자해, 원만치 못한 대인 관계 등 2차 피해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다. 성폭력 피해자는 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좀 먹는 행위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 점을 직시하며 피해자가 스스로를 탓하지 않아야 한다고 용기를 북돋운다.
또 한 가지, 가해자인 톰 스트레인저다. 톰은 피해자가 옛 연인이며 복지와 관련한 일을 하는 인물이다. 용서를 구하기 좋은 갖가지 이유를 가진 셈이지만 이 모든 점을 떠나 자신이 가해자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용서를 구하려는 태도는 무척이나 인상깊다. 대부분의 가해자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조차 꺼려 한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이윤택 연출가를 비롯해 사실을 부정하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입장을 바꾼 오달수 등만 봐도 가해자의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죽하면 “잘못했다” “제 잘못”이라 말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일까. 그런 점에서 수년의 세월 동안 피해자에 잘못을 구하고 추악했던 자신의 민낯을 들여다보려 한 톰의 자세는 죄를 떠나 칭찬하고 싶을 정도다.

(사진=BBC 방송화면)
(사진=BBC 방송화면)

다만 ‘용서의 나라’는 토르디스의 개인적 감정이 너무 많이 섞여 들어가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로서의 내면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토르디스는 극작가이기도 하기에 유려한 문체로 독자들을 끌어당기지만 동시에 너무 극적인 문장들로 이 책이 성폭력과 용서의 과정을 담은 책인지 불미스러운 일로 헤어진 연인이 재회해 감정이 흔들리는 책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시덥잖은 농담과 세세한 상황 설명들이 혼란을 보탠다. 그 덕에 독자들의 피로감은 배로 늘어난다. 이 책이 성폭력에 대한,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책이며 많은 시사점을 남기는 책이라는 점을 시시때때로 상기하며 읽어야 한다.

그럼에도 ‘용서의 나라’는 지금 이 시점, 독자로 하여금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추천할만하다. 성폭력의 원인이 자신이 아닌 가해자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직시하고 용서의 과정으로까지 나아가는 피해자, 추악한 성폭력을 벌인 스스로를 눈감고 외면하는 대신 정면으로 응시하려 노력한 가해자, 덮고 넘어가라고 잊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라 응원한 피해자의 남편과 가해자의 가족까지. 성폭력이라는 범죄 앞에선 그 누구도 허투루 생각하거나 안일해선 안된다는 점을 일깨운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인식부터 개선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과 용기가 필요한 지 거듭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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