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이소희 기자] ‘음악의 힘을 믿는다’고 하면 조금은 고리타분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 말이 가슴에 뜨겁게 와 닿는 이유는 말 그대로 여전히 음악의 힘을 믿고 움직이는 음악인의 진심이 존재하기 때문일 터다.
그룹 솔리드는 1993년 데뷔했고, 2018년에 21년만의 완전체 활동을 시작한다. 연차로는 어느덧 26년차다. 별로 크지 않은 숫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26살이 현재 사회인으로서 활발하게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나이임을 고려하면 느낌은 사뭇 다르다. 솔리드는 한 사람이 건실하게 자라온 나이만큼 세월을 마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리드가 예나 지금이나 찬양 받는다. 바로 ‘음악’ 때문이다. 이들이 발표한 새 앨범 ‘인투 더 라이트(Into the light)’는 옛날의 솔리드와 현재의 솔리드가 적절히 섞인 결과물이다. 안그래도 아름답게 빛나던 이들의 노래에 세월의 겹이 묻어나는 변화가 더해지니 이보다 더 금상첨화일 수는 없다.
“셋이 뭉치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항상 재미있어요. 음악적으로도 조한이는 21년간 가수를 계속 해왔으니 음악의 달인이 된 것 같고, 준이도 기본적으로 음악을 좋아해서 바탕이 되어 있고요(정재윤)”
“나만 시간이 거꾸로 간 것 같아요. 두 사람은 발전했는데 나만 제자리걸음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엄청난 노력을 해야 했어요. 금연을 통해 많이 바뀌었죠. (웃음)(이준)”
“자전거도 한 번 배우면 계속 탈 수 있듯, 이준도 녹음을 안 한 거지 다 잘 해요. 다만 새로운 부분을 지금 다시 흡수하는 거고요. 나에게 변화가 있었던 건, 예전에는 (한국어가 서툴러) 말을 거의 못해서 내게 말할 기회가 와도 그냥 마이크를 다른 멤버에게 넘겼어요. 내가 한 마디 하면 다들 웃으니 창피했거든요. 이제는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김조한)”
어렵게만 느껴질 것 같은 솔리드이지만, 이들은 유쾌했다. 서로 편안하게 장난을 치기도 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답변을 내놓았다. 현재의 솔리드에서 20여 년 전 청춘의 모습이 보였다.
“21년이 지나도 어떤 건 여전하더라고요. 셋이 뭉치면 웃겨요. 음악을 오랜만에 하는 거지 계속 보면서 지내왔기 자연스러워요. 음악도 어렵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이 복잡하고 심플하게 생각하면 또 심플한 거라서요. 그런 고민보다 즐기면서, 나가서 술 한 잔도 하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앨범을 만들었어요(정재윤)”
“솔리드이기 전에 우리는 친구에요. 가수 되고 나서도 항상 같이 지냈는데, 그러다 보니 그냥 재미있어요. 서로의 웃긴 이야기도 겹치고요. 우리가 음악 하는 사람인 줄 모르는 이들이 우리를 보면 ‘뭐지?’ 싶을 것 같아요. (웃음) 그만큼 장난기도 많아요(김조한)”
“멘탈은 21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다시 10대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요(정재윤)”
멤버들은 여전하지만,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가요계에서는 이제 이름도 다 외우지 못할 정도로 많은 가수들이 쏟아져 나온다. 트렌드 역시 어느 하나로 규정 짓지 못할 만큼 복잡해졌다.
“노래들이 많이 똑같아진 것 같아요. 나오는 가수들 구분이 잘 안 될 정도에요. 장르가 다양하지 않고, 실험을 하는 아티스트가 줄어드는 것 같아요. 그건 제작자의 책임도 있겠죠.다 똑같아 보이는 콘셉트 속에서 각자 한 명 한 명 탤런트가 넘치는 건 눈에 띄더라고요(이준)”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 자체가 예전과 지금의 큰 차이에요. 예전에는 국내에서만 활동을 했거든요. 이제는 세계적인 시선도 신경을 쓰게 되니까 책임감도 더 커지는 것 같고, 가요계에 우리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부담감도 있어요(정재윤)”
“예전에 (현재 방송국이 몰려 있는) 상암에는 아무 것도 없었거든요. 예전처럼 여의도에만 방송국이 있던 시대가 아닌 거예요(김조한)”
시간은 대중에게도 똑같이 흘러갔다. 이제 10대가 된 이들에게는 젝스키스, H.O.T., 핑클, S.E.S. 등은 한 번도 무대를 보지 못한 낯선 가수로 비춰진다. 전설 같은 그룹의 파급력과 가요계에 끼친 영향도 쉽사리 와닿지 않는다.
“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와 함께 활동했는데, 그때 케이팝 사운드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모던 케이팝의 르네상스인 시기였다고 여기죠. 하지만 요즘 10대들이 우리를 봤을 때는 아이돌이 아닌 (비주류의) 장르라고 여길 거예요. 우리가 그런 음악의 원조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정재윤)”
“(10대는 솔리드를 잘 모를 수 있다는 말에 정말 그러냐는 듯 깜짝 놀라며) 어렸을 때 들었던 비틀즈 노래를 난 지금도 듣고 있거든요. 비틀즈를 친누나 때문에 알게 됐는데, 나중에는 내가 더 좋아하게 됐어요. 우리 팬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이제 다들 아기 엄마가 됐잖아요. 자식들이 엄마가 좋아한 가수를 똑같이 좋아할 수 있는 거죠. 돌고 도는 것 같아요. 며칠 전에도 5살난 아이가 우리 노래 좋다고 말하는 걸 듣고 기분이 좋았어요(김조한)”
“큰딸이 중3인데, 우리가 누구인지 말하지 말고 학교에 우리 노래 좀 틀라고 말했어요. (웃음) 우리가 뮤직비디오에 출연을 안 하기 때문에 솔리드의 노래인지 모를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음악만 듣고 ‘누구 노래지?’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21년이 지났는데도 ‘세련됐다’ ‘앞서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가 가장 뿌듯해요(정재윤)
활동을 위한 음악이 아닌, 우선적으로 자신들을 위한 음악을 만드는 솔리드였다. 자신이 설득되지 않은 음악은 대중도 인정하기 힘들다. 솔리드의 음악이 비록 음원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지 못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리드를 예찬하는 이유다.
“차트인을 목표로 하기보다 장기적으로 보고 시작했어요. 앨범을 내고 음악평론가부터 해서 많은 반응을 살펴봤는데 긍정적이더라고요. 우리 앨범을 듣고 ‘이건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들보다 아직 못 들어본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정재윤)”
“우리가 직접 만든 것이기 때문에 차트에 좌지우지되지는 않아요. ‘요즘 이런 노래가 인기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자’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도전하지 않으면 빛을 못 보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을 뿐이에요. 음악을 만들 때 후배들을 생각해요. 잠깐 유명해지고 거기서 끝나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후배들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음악은 거짓말을 안 해요. 음악에 충실하면 답이 나온다고 생각해요(김조한)”
트렌드를 좇는 것과 대중성을 갖는다는 건 확실히 다른 문제다. 솔리드가 아티스트적인 면을 지향하는 것은 맞지만, 결코 대중에게 어렵게 다가서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난 계속 대중음악 프로듀서로 활동을 해왔고, 우리의 바탕도 대중음악이기 때문에 늘 대중성을 생각해요. 아이들한테도 들려주고 사람들 모니터도 하고요. 객관성이 떨어진다 싶으면 다른 사람들 의견도 들어보고요. 그 선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해요. 새롭게 시도하면서도 대중에게 익숙한 부분을 유지하는 거죠(정재윤)”
그래서인지 세월의 바람 속 팬들은 굳건했다. 솔리드는 단독 콘서트 티켓을 약 5분 만에 매진시키고, 결국 1회 연장까지 확정 지었다. 최근에는 팬미팅과 팬사인회 등도 진행했다.
“회식 자리에서 우리 공연 티켓이 5분 만에 매진된 소식을 듣고 엄청 기뻐했어요. 오랜만에 하는 완전체 공연이다 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싶어할 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티켓을 못 구하신 분들도 많더라고요. 어떻게 해서든 팬 분들이 다 오셨으면 하는 마음에 하루 공연을 더 연장했어요. 앞으로 방송으로도 우리를 보여드릴 수 있겠지만, 음악으로 뭉친 세 명인 만큼 공연으로 많은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김조한)”
“음악과 비주얼이 같이 움직이는 공연이 될 거예요. 퍼포먼스도 그렇지만 영상 등 흐름이 있거든요. 전체적으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스토리가 있어요(정재윤)”
“예전에는 춤을 추며 무대를 꾸몄다면 이제는 그림과 음악으로 가려고 해요. 더 뮤지션처럼 보이게끔 하려고 하죠. 나는 DJ 쇼를 하고, 멤버들은 노래하고 영상도 흐르고, 무대의 전체적인 그림이 잘 보일 거예요(이준)”
세트리스트를 구성하는 것도 일이었다. 워낙 명곡이 많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복한 고민이다. 김조한 역시 “세트리스트를 짜면서 많은 고민이 됐다”면서도 “그건 가수로서 행복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신인이었다면 부를 곡이 별로 없었을 거 아니냐. 우리는 우리 노래를 어떻게 다르게 포장을 해서 들려줄까 생각할 수 있다. 리믹스 버전으로 부를 수도 있고, 옛날 옷을 입고 추억을 되살릴 수도 있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간 지나온 세월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시간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은 솔리드가 있었기에 지금의 솔리드도 탄생할 수 있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지니고 있는 이들. 예전이나 지금이나 솔리드는 여전히 솔리드인 이유다.
“옛날 솔리드와 지금 솔리드의 차이가 바로 그거예요. 여러 사업을 하고 있는 이준이 지금 가수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것도, 이제는 결재 사인만 하면 되는 위치이기 때문이에요 (웃음) 그간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은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거죠(김조한)”
“이렇게 솔리드 활동을 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해요. 또 공연 어레인지 등 음악과 관련된 부분은 우리가 직접 다 관여를 하고 있으니까, 뭘 하려고 해도 우리가 스스로 ‘오케이. 그래 하자’라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아요(이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