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대군-사랑을 그리다'에서 루시개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손지현(사진=아티스트컴퍼니)
[뷰어스=손예지 기자]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詩) 제목이자 한 구절. 배우 손지현에게는 '인생 문장'이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독서를 즐긴다는 그에게 이 문장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지금,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웃음 지었다.
손지현은 2009년 걸그룹 포미닛의 리더 남지현으로 데뷔했다. 화려한 무대 위 삶은 7년 만에 끝났다. 포미닛이 전속 계약 만료로 해체했기 때문이다. 다섯 멤버가 뿔뿔이 흩어졌고, 손지현은 정우성과 이정재가 이끄는 아티스트컴퍼니로 적을 옮겼다. 배우 전향을 선언하고 지난해 활동명을 손지현으로 바꿨다.
손지현이란 이름으로 출연한 첫 번째 작품 TV조선 ‘대군-사랑을 그리다(이하 대군)’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채널 첫 드라마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가 하면 손지현도 여진족 혼혈아 루시개 연기를 통해 호평을 받았다. 이제,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연예 인생 제 2막을 열 준비를 마쳤다.
손지현은 의욕이 넘치는 상태다. ‘대군’이 끝나고도 바쁘게 지냈다. “우선 못 만났던 지인들을 만났다”며 “‘대군’ 팀도 한 번 더 봤다. 회사와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있었고, 차기작 오디션도 봤다. ‘대군’이 끝나면 좀 쉬어야지 생각했었는데, 막상 시간이 흐르는 게 너무 아까웠다”고 말했다.
“이름을 바꾸고 첫 작품부터 좋은 드라마, 좋은 캐릭터를 만나 고마울 뿐이에요. PD님, 작가님, 스태프들에게 고맙고요. 배운 점도 많아요. 사극은 현대극보다 배우들의 호흡을 더욱 필요로 하는 장르더라고요. 또 시윤 오빠를 비롯한 배우들의 순간 몰입력에 감탄한 적이 많아요. 캐릭터나 상황에 몰입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한 편이었는데, ‘대군’ 촬영 동안 점점 다른 배우들과 비슷해졌어요”
‘대군’에서 손지현이 연기한 루시개는 생존을 위해 짐승 같은 본능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손지현은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은 여린 인물”이라며 “나와 닮았다”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손지현은 '대군' 시놉시스를 읽자마자 루시개에게 끌렸다고 했다(사진=아티스트컴퍼니)
“루시개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잖아요. 악한 행동은 절대 하지 않고 늘 정직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몸을 바치는. 시놉시스를 읽자마자 끌렸죠. 인물의 성격도 좋았지만, 여진족 혼혈아로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녀야 했던 루시개의 상황에도 마음이 쓰였어요. 그간 국내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뤄지지 않은 캐릭터인 데다,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 속 루시개와 같은 사람들이 더 있었을 테니까요”
루시개가 우리말이 서툰 설정이라 만주어도 따로 배웠다. “연습하는 동안 매일같이 녹음해서 만주어 선생님에게 들려드렸다”며 “선생님이 목을 긁는 소리를 내고 뱉는 듯이 이야기거나, 말할 때 억양 변화를 최소화할수록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고 즉석 시범도 선보였다. 그는 만주어 수업 외에 역사 공부도 힘썼다. 칭기즈칸에 관한 영화 ‘몽골’을 보면서 그 시대의 삶을 상상했단다.
촬영 시작 후에는 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을 펼쳤다. 야성미 넘치는 루시개를 표현하기 위해 얼굴에 검은 칠도 마구 했다.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며 연기 호평도 들었다.
“분장팀 스태프들에게 때 좀 더 묻혀달라고 했었어요. 더 루시개처럼 보이고 싶어서요. 나는 괜찮았는데 함께 출연한 오승아(효빈 김씨 역) 언니가 슬퍼하더라고요. 왜 이렇게 때를 많이 묻혔냐면서(웃음)”
드라마는 해피엔딩이었지만, 루시개는 죽음으로 끝을 맞았다. 짝사랑하던 이휘(윤시윤)를 구하려다 칼에 맞았다. 손지현은 “(극 중 루시개를 좋아하는) 기특(재호)이와 잘 되기를 바랐지만, 작가님이 루시개가 휘(윤시윤)를 위해 희생하는 장면이 나올 거라고 귀띔하신 덕에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면서 “마지막 촬영 날 우선 다른 배우들에게 고마웠다”고 했다. 루시개의 죽음을 함께 슬퍼해 주는 배우들이 고마웠단다.
손지현이 ‘대군’을 통해 또 하나 얻은 것은 자유다. “주위와 상관없이 순수하게 타인을 사랑하는 루시개를 통해 치유 받는 느낌이었다. 앞으로의 연기 생활을 통해서는 최대한 자유롭게, 다양한 역할로 여러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고 바랐다.
배우로서는 자유를, 걸그룹으로서는 인내를 배웠다는 손지현(사진=아티스트컴퍼니)
반면, 포미닛 활동 당시 손지현은 리더이기 때문에 인내하는 법을 배웠다.
“멤버 중 나이가 제일 많아서 리더가 됐는데,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언제나 양보하고 한발 물러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 감정을 밖에 분출해도 되는데, 스스로 움츠렸던 것 같아요. 힘들 때마다 ‘나는 포미닛이니까, 리더니까 이래면 안 돼’라고 다독이면서요”
무대 위의 포미닛은 ‘센’ 팀이었다. 손지현은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다가 짧은 연습생 기간을 거쳐 포미닛이 된 터라 힘든 점도 분명 있었다”며 “그래도 내가 언제 또 이런 기회를 얻겠나 싶은 마음에 매일 센 눈빛을 연습했다. 포미닛 덕분에 나에게 없었던 에너지, 멤버들과의 시너지를 얻었다. 포미닛으로 산 7년은 나에게 꿈 같은 시간”이라고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포미닛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지금, 20살이 돼서 독립한 느낌이랄까요. 이제는 나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책임감이 생겼어요. 외롭기도 하지만, 그만큼 스스로 다독이고 챙기게 됐어요”
손지현이 지친 자신을 돌보는 방법은 등산과 독서다. 특히 책 이야기를 꺼내자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보여주고 싶다"면서 휴대전화로 촬영한 시집의 한 페이지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아닌데… 지식을 책장에 꽂아두는 기분이 좋아요. 하하. 최근에 산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인생 학교 시리즈 ‘관계’(와이즈 베리)예요.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에 관한 책이죠. 평소에 소설이나 에세이를 즐겨 읽어요. 시집은 류시화 시인의 엮은 시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손지현은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했다(사진=아티스트컴퍼니)
드라마와 영화도 좋아한다. 가장 최근에 본 드라마는 tvN ‘라이브(Live, 극본 노희경, 연출 김규태)’이고, 영화는 ‘그을린 사랑(Incendies, 2010)’이다. 인생을 이야기하는 작품들게 관심이 간다고. 그런 한편, 배우로서는 액션이나 법정극에서 강한 캐릭터를 도전해보고 싶다고 희망했다.
“연기하면서 치유 받을 때가 많았어요. ‘내가 이런 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가능성도 깨달았고요. 목표는 구체적으로 정해두진 않았어요. 나도 나의 미래가 기대돼요(웃음)”
올해 데뷔 10년 차인 손지현에게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10년을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그는 “10년 전엔 배우 손지현의 현재를 상상하지 못했다”며 “연습생 때는 가수를 하면서 연기도 하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지난 10년간 화려한 겉모습 뒤에서 꾸준히 성장했다”고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10년 뒤의 자신을 그려보면 “후배들과 대화할 수 있는 좋은 선배가 되어있기를 바란다”면서 “그러기 위해서 더 열심히 경력을 쌓으며 알차게 보내고 싶다. 한 분야에서 확실히 인정받아야 비로소 ‘좋은 선배’도 될 수 있으니까”라고 덧붙였다.
“10년간 사랑해준 우리 팬들. 언제나 미안하고 고마워요. (팀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하고, 그런데도 나의 홀로서기를 지켜봐 줘서 고맙습니다. ‘대군’이 늦은 시간 방영됐는데 재미있게 시청해준 것도 고맙고요. 우리 팬들을 떠올리면 나는 정말 복 받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