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키(사진=브랜뉴뮤직)
[뷰어스=한수진 기자] ‘갖고 놀래’ ‘미친 연애’가 연속으로 히트하며 알앤비 강자로 불렸던 범키가 오랜 침묵 끝에 복귀했다. 차트 1위 가수에서 바닥으로 추락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하루. 2014년 돌연 마약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그는 무대가 아닌 법정에 섰다. 그렇게 길었던 법정공방이 끝났고, 자숙 기간을 거쳤다. 4년 만에 입을 열게 된 그의 심정은 어떨까.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변명하기 보단 재판에서 모든 걸 풀 생각이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늘어놓고 설명할 수 있었지만 의심을 받을 소지를 줬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잘못이라고 생각했어요. 질타와 비난을 받으며 재판에 간 것만으로도 자숙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재판에서 결과를 통해 저의 입장을 잘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입장표명이 모든 이의 오해를 풀진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재판을 충실히 받고 결과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결과가 처음엔 무죄였죠. 그런데 상고심까지 갔을 때 유죄로 나왔어요. 그냥 받아들이자 했어요. 그 후론 조용히 자숙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범키는 지난 2014년 받았던 마약 혐의와 관련해 1심 무죄, 상고심 일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총 11개 혐의 중 10개에 대해선 무죄를 받았으나 엑스터시 복용 혐의 1개만 유죄 판결(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을 받아 2016년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범키의 모발 및 소변 검사 결과는 ‘음성 판정’이었다. 범키는 바로 항소했으나 대법원에서 이를 기각하며 재판이 끝났다.
■“마약 꼬리표, 당연한 나의 업보…변화 통해 거듭났다는 것 입증하고파”
더욱이 대중이 충격 받은 건 마약공급책 혐의였다. 해당 혐의에 대해선 이내 무죄를 받았지만 언급이 된 것만으로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어려서 해외에 살면서 대마초나 엑스터시 같은 마약류를 쉽게 생각하는 문화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굉장히 낮았어요. 그런 것들을 어린 시절 외국에서 경험해본 적이 있었고요. 한국에서도 주변 친구들이 다들 외국 출신들이 많아서 그런 것에 대한 경각심이 낮았고, 그런 지인들로 인해서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에 있었죠. 이젠 그런 걸 확실히 깨닫고 오해의 소지를 살 수 있는 거라면 그게 무엇이든 꼭 마약이 아니더라도 차단하며 살고 있어요”
이 같은 상황에서 그는 억울하다는 말 대신 책임감을 먼저 상기했다. 억울함을 떠나 오해의 소지를 제공한 것 역시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한 것이다. 가정을 꾸려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동안에도 그는 자숙을 유지했다. 가장의 어깨는 무거웠지만 어떠한 금전적 활동도 하지 않았다.
범키(사진=브랜뉴뮤직)
“당연하게 재판이 끝나고 자숙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연이나 인터뷰 등 대중에게 노출되거나 금전적인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자숙 기간 중 가정을 돌보는 데 전념하다가 이렇게 오랜만에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난 13일 신곡 ‘비 그리고 너’를 발매하며 복귀에 나선 범키. 음악적 변화가 눈에 띄었다. 나얼 편곡자로 유명한 강화성 작곡가와 함께 작업한 신보는 그간의 노래들과는 결이 달랐다. 그의 변화에 대중도 반색했다. 하지만 마약에 관한 안 좋은 말도 뒤따랐다.
“저의 업보라고 생각하고, 꼬리표처럼 달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중요한건 전에 있었던 일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인식을 깨는 거예요. ‘마약은 못 끊어’와 같은 인식이요. 충분히 끊고 살고 있고, 더 나아진 삶을 살아가는 걸 보여주는 거요. 보여 지는 인생을 살고 있는 입장으로써 그런 인식을 깨서 용서와 인정을 받고 싶어요. 태도나 삶의 방향이나 음악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통해서 저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깨고 ‘아 저 사람이 진짜 거듭났구나’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 같은 사건이 거치는 동안 범키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그의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말이 더 와 닿은 이유다.
“마약 사건 전후로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어요. 결혼 초기에 사건이 터졌어요. 사실 그때는 아내와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오히려 사건이 지나면서 훨씬 유대감이 생겼죠. 당시 가정의 회복이 첫 번째였어요. 가정이 바로 서야 사회에서도 바로 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감사하게도 아이가 생겼고, 육아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 시간들이 되게 소중했거든요. 그런 시간을 가지면서 깨달은 게 참 많아요. 이전엔 이름이 알려진 사람으로서 또 연예인으로서 나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영향력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유명한 지도 몰랐죠. 그런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인생이 완전히 전환 됐어요. 모든 게 바뀌었죠. 일단 아이가 생기면서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될 건지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