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김해숙(사진=연합뉴스) [뷰어스=남우정 기자] “이제 어떤 일이 와도 겁은 안 날 것 같아요” ‘국민 엄마’ 타이틀이 익숙한 배우 김해숙. 수많은 엄마 캐릭터를 소화했지만 다 똑같은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 캐릭터라도 김해숙과 만나면 인물 이면에 숨겨진 사연이 궁금해진다.  “나름 나에게 고집이 있었어요. 현실 속 엄마들은 나이가 들면 살도 찌고 편한게 대부분이잖아요. 현실적인 엄마를 보여주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도 맞지만 엄마를 연기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미모보단 현실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나같은 엄마도 있어야죠. 배우니까 다른 캐릭터에 대한 열망은 있죠. 같은 엄마라도 다른 역할이요. 그래도 ‘국민엄마’ 타이틀은 놓치지 않을 거예요(웃음) 내가 가진 정말 감사한 말이에요” 김해숙은 일본 관부 재판을 소재로 한 영화 ‘허스토리’에서도 엄마 역할을 맡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위안부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배정길은 아들에게 말 못할 비밀을 가진 인물.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고 힘든 캐릭터이기 때문에 쉽게 출연을 결정하긴 어려웠지만 ‘허스토리’는 김해숙의 마음을 흔들었다.  '허스토리' 김해숙(사진=연합뉴스) “민규동 감독은 배우로 같이 작업하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시나리오를 줬는데 처음엔 이런 이야기인줄도 몰랐죠. 나중에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라고 하는데 그 순간 아무 생각이 안 나고 집에 들고 와서 펼쳐볼 수도 없었어요. 진짜 묘한 감정이었어요. ‘내가 감히’라는 생각이 들어서 피해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죠. 시나리오를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그분들이 나이가 들어서 어떻게 사는지, 그 후의 삶부터 시작해서 좋았어요. 또 내 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역할이라 나도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 할 수 있겠다 싶었죠” 연기 경력 44년. 그 세월동안 정말 많고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 온 김해숙이었지만 ‘허스토리’의 배정길은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상상조차도 안 되는 상처에 김해숙은 촬영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모르겠다며 털어놨다.  “아무리 해도 안 돼서 처음엔 내 욕심인가 싶었어요. 허구의 인물도 아니고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터무니없는 상상으로 연기 하는 것은 내 교만이고 이기심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 자신을 내려놓고 비워야겠다고 생각했죠. 형식적인 게 아니라 진짜 인간 김해숙까지 비워야했어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배우가 아닌 인간으로 비운다는 게 정말 어렵다는 게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허스토리’의 클라이맥스는 후반 재판신이다. 일본 법정에 선 할머니들이 털어놓는 과거는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김해숙은 민규동 감독에게 재판신을 가장 마지막에 찍게 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그 장면에 공을 들였다. 실제 김해숙은 아픈 상태에서 그 장면을 찍었지만 오히려 ‘하늘이 도왔다’고 표현했다.  “재판신을 나흘 동안 찍었는데 서로 연기하는 걸 지켜보면서 다 같이 젖어 있었어요.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였어요. 삼일 째 되는 날에 진짜 몸이 안 좋아서 아팠어요. 촬영장을 가서 내 모습을 보고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했죠. 분장하는 것과는 또 다르더라고요. 얼굴에 생기가 돌까봐 하루 종일 물도 안 마셨어요. 정말 기도했어요. 연기를 잘 하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이분의 마음을 눈곱만큼이라도 와 닿게 해달라고” '허스토리' 김해숙(사진=연합뉴스) 그만큼 빠져있던 캐릭터였기 때문에 김해숙은 ‘허스토리’ 촬영을 다 마치고 나서도 쉽게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없었다. 벗어나기 위해 차기작을 빠르게 선택할 정도였다.  “너무 힘들어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어요. 뭘 해도 자꾸 눈물이 나니 빨리 벗어나고 싶었죠. 근데 잘 안 되더라고요. 캐릭터에 빠져도 한 달이면 빠져나오는데 이번엔 힘들었어요. 그래서 벗어나기 위해 다음 작품에 빨리 들어갔죠. 근데도 원상복귀에요. 그나마 여행을 하면서 이제야 내 컨디션으로 돌아왔어요. 여기에 빠져있다 보니 내 자신을 너무 버렸어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 조차도 무의미해질 정도라 무서웠어요”  인간 김해숙이 버려질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지만 김해숙은 ‘허스토리’ 후 달라졌다고 말한다. 용기를 가지고 법정에 섰던 할머니를 따라갈 순 없겠지만 어떤 일도 두렵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생겼다. 더불어 ‘허스토리’가 가진 가치와 의미가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달되기만을 바라고 바랐다.  “관부 재판은 분명 큰 이슈가 될 수 있는 이야기인데도 잘 모르잖아요. 이런 게 영화가 만들어져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 아이들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옛날에도 해온 이야기고 앞으로도 해야 하는 이야기에요.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영화를 보고 가지고 갔으면 좋겠어요”

[남우정의 마주보기] ‘허스토리’ 인간 김해숙을 내려놓기까지

남우정 기자 승인 2018.06.15 15:54 | 최종 수정 2136.12.01 00:00 의견 0
'허스토리' 김해숙(사진=연합뉴스)
'허스토리' 김해숙(사진=연합뉴스)

[뷰어스=남우정 기자] “이제 어떤 일이 와도 겁은 안 날 것 같아요”

‘국민 엄마’ 타이틀이 익숙한 배우 김해숙. 수많은 엄마 캐릭터를 소화했지만 다 똑같은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 캐릭터라도 김해숙과 만나면 인물 이면에 숨겨진 사연이 궁금해진다. 

“나름 나에게 고집이 있었어요. 현실 속 엄마들은 나이가 들면 살도 찌고 편한게 대부분이잖아요. 현실적인 엄마를 보여주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도 맞지만 엄마를 연기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미모보단 현실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나같은 엄마도 있어야죠. 배우니까 다른 캐릭터에 대한 열망은 있죠. 같은 엄마라도 다른 역할이요. 그래도 ‘국민엄마’ 타이틀은 놓치지 않을 거예요(웃음) 내가 가진 정말 감사한 말이에요”

김해숙은 일본 관부 재판을 소재로 한 영화 ‘허스토리’에서도 엄마 역할을 맡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위안부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배정길은 아들에게 말 못할 비밀을 가진 인물.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고 힘든 캐릭터이기 때문에 쉽게 출연을 결정하긴 어려웠지만 ‘허스토리’는 김해숙의 마음을 흔들었다. 

'허스토리' 김해숙(사진=연합뉴스)
'허스토리' 김해숙(사진=연합뉴스)

“민규동 감독은 배우로 같이 작업하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시나리오를 줬는데 처음엔 이런 이야기인줄도 몰랐죠. 나중에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라고 하는데 그 순간 아무 생각이 안 나고 집에 들고 와서 펼쳐볼 수도 없었어요. 진짜 묘한 감정이었어요. ‘내가 감히’라는 생각이 들어서 피해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죠. 시나리오를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그분들이 나이가 들어서 어떻게 사는지, 그 후의 삶부터 시작해서 좋았어요. 또 내 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역할이라 나도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 할 수 있겠다 싶었죠”

연기 경력 44년. 그 세월동안 정말 많고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 온 김해숙이었지만 ‘허스토리’의 배정길은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상상조차도 안 되는 상처에 김해숙은 촬영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모르겠다며 털어놨다. 

“아무리 해도 안 돼서 처음엔 내 욕심인가 싶었어요. 허구의 인물도 아니고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터무니없는 상상으로 연기 하는 것은 내 교만이고 이기심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 자신을 내려놓고 비워야겠다고 생각했죠. 형식적인 게 아니라 진짜 인간 김해숙까지 비워야했어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배우가 아닌 인간으로 비운다는 게 정말 어렵다는 게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허스토리’의 클라이맥스는 후반 재판신이다. 일본 법정에 선 할머니들이 털어놓는 과거는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김해숙은 민규동 감독에게 재판신을 가장 마지막에 찍게 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그 장면에 공을 들였다. 실제 김해숙은 아픈 상태에서 그 장면을 찍었지만 오히려 ‘하늘이 도왔다’고 표현했다. 

“재판신을 나흘 동안 찍었는데 서로 연기하는 걸 지켜보면서 다 같이 젖어 있었어요.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였어요. 삼일 째 되는 날에 진짜 몸이 안 좋아서 아팠어요. 촬영장을 가서 내 모습을 보고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했죠. 분장하는 것과는 또 다르더라고요. 얼굴에 생기가 돌까봐 하루 종일 물도 안 마셨어요. 정말 기도했어요. 연기를 잘 하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이분의 마음을 눈곱만큼이라도 와 닿게 해달라고”

'허스토리' 김해숙(사진=연합뉴스)
'허스토리' 김해숙(사진=연합뉴스)

그만큼 빠져있던 캐릭터였기 때문에 김해숙은 ‘허스토리’ 촬영을 다 마치고 나서도 쉽게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없었다. 벗어나기 위해 차기작을 빠르게 선택할 정도였다. 

“너무 힘들어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어요. 뭘 해도 자꾸 눈물이 나니 빨리 벗어나고 싶었죠. 근데 잘 안 되더라고요. 캐릭터에 빠져도 한 달이면 빠져나오는데 이번엔 힘들었어요. 그래서 벗어나기 위해 다음 작품에 빨리 들어갔죠. 근데도 원상복귀에요. 그나마 여행을 하면서 이제야 내 컨디션으로 돌아왔어요. 여기에 빠져있다 보니 내 자신을 너무 버렸어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 조차도 무의미해질 정도라 무서웠어요” 

인간 김해숙이 버려질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지만 김해숙은 ‘허스토리’ 후 달라졌다고 말한다. 용기를 가지고 법정에 섰던 할머니를 따라갈 순 없겠지만 어떤 일도 두렵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생겼다. 더불어 ‘허스토리’가 가진 가치와 의미가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달되기만을 바라고 바랐다. 

“관부 재판은 분명 큰 이슈가 될 수 있는 이야기인데도 잘 모르잖아요. 이런 게 영화가 만들어져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 아이들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옛날에도 해온 이야기고 앞으로도 해야 하는 이야기에요.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영화를 보고 가지고 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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