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어둑한 밤, 환한 달빛,
비틀비틀 질주하는 정신 나간 자동차
슬그머니 골목을 돌고 또 도네.
꼿꼿하게 앉은 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소곤소곤 속닥속닥,
사냥꾼의 총에 맞은 토끼 한 마리
모래 언덕에 누워 있네"
[뷰어스=문다영 기자] 알쏭달쏭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시 한 편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시의 형식을 갖춘 이 글은 얼핏 보면 그럭저럭 말이 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저 각각의 단어들을 무의미하게 아무렇게나 배치해 놓은 것처럼도 보인다.
작가는 이 시처럼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한 편 들려주며 독자에게 숨은 수수께끼를 풀고 오류를 찾아낼 것을 당부한다. 다음과 같은 충고도 덧붙인다. 질문에만 너무 집중하지 말 것, 그리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오류를 찾아낼 것.
(사진=봄볕)
'발터 벤야민의 수수께끼 라디오' 이야기다. 이 책은 발터 벤야민이 1932년 7월 6일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방송 대본으로 쓴 글을 그림책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저자는 1892년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논문, 서평, 사설, 소책자, 단편 소설 등 소재와 장르를 넘나들며 생전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했다. 독일어권 최고의 사상가이자 문예 비평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논리적 오류와 문제를 녹여 내 청취자들이 사회적 맥락을 읽어낼 수 있도록 했다.
주인공 하인즈 씨가 하루 동안 겪은 흥미진진한 일들 속에 총 열 다섯 가지 퀴즈 문제와 열다섯 가지 오류가 곳곳에 배치돼 있다. 기이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들이 직접 텍스트에 참여해 문제를 풀고 오류를 찾아야 한다.
특히 벤야민의 독특한 글쓰기 스타일을 개성 넘치는 이미지로 잘 구현한 화가 마르타 몬테이로의 삽화도 책 읽는 맛을 더한다. 집중력과 관찰력, 그리고 추리력을 최대한 동원하게 만드는 브레인티저 형식의 그림책이다.
초등생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지만 작가는 문제를 통해 우리 주변의 지나치기 쉬운 사소하고 작은 풍경들 속에서도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을 예민하게 포착해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만의 삶의 스타일로 소화하며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할 때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당부한다. 발터 벤야민 지음 | 봄볕(꿈꾸는꼬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