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뷰어스=김동민 기자] ‘카리스마’란 말이 단순히 특별한 개성이나 존재감을 뜻하는 건 아니다. ‘신의 은총’이란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카리스마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일종의 매력이다. 굳이 터프한 남성이거나 걸크러시 여성에 국한되는 표현이 아니란 애기다. 각각의 방식으로 대중을 매료시킬 수 있다면 어떤 매력이라도 카리스마가 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배우 조인성이 가진 카리스마는 아마도 천진함과 부드러움을 통해 드러나는 것 같다. 영화 ‘안시성’ 속 양만춘 장군으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배우 조인성의 눈빛을 접하면서 든 생각이다. 작품에 대해서도 연기에 대해서도 당당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역할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걸 분명히 아는 듯 했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솔직했고 거침이 없었다.
조인성이 영화 ‘안시성’의 주인공 양만춘 장군을 맡아 연기하는 데 중점을 둔 부분은 인간 양만춘의 독자적 행보다. 역사적으로 양만춘 장군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고 단지 ‘안시성주’라고만 적혀 있었던 만큼 그 빈칸을 조인성은 나름대로 해석해 냈다.
“양만춘이 연개소문한테 반기를 들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건 집권 여당에서 빠지겠다는 거나 다름없죠. 이를 용서할 수 없었떤 연개소문이 양만춘을 치러 왔다가 실패했다는 기록도 있어요. 양만춘 입장에서는 집권여당이 아니니 편한 점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기의 성만 지키면 되니까요. 여기에 38살의 나이였고 호전적인 인물이었다는 기록을 토대로 지혜와 혜안을 갖추고도 소탈한 성격을 가진 카리스마 있는 인물로 그리게 됐죠. 흔히 정치적으로 쓰이는 카리스마를, ‘신으로부터 내려받은 재능’이란 사전적 의미대로 개성있게 표현하려 했어요.”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조인성은 장기간의 촬영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한겨울 추위부터 폭염까지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겪은 뒷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고성에서는 추위 때문에, 구리에서는 더위 때문에 힘들었다”라면서 “함양에서 후반부 촬영을 했는데 안 온다던 눈이 와서 고생이 많았어요. 토산 장면을 촬영할 때는 토산에 올라가면 진흙 범벅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제가 출연하지 않고 보조출연자들끼리 찍는 장면들이 많아서 저보다 다른 분들이 고생이 많았다”며 “감독님이 많이 배려해 주시고 촬영 스케줄을 효율적으로 짜주셔서 그래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크랭크업 하고 나서는 중국에도 다녀왔어요. 촬영은 마쳤지만 가서 한번 더 면밀히 보자는 생각이었죠. 안시성에 대한 기록들이 대부분 추정일 뿐 확실치가 않거든요. 그러니까 실제 안시성이 어딘지조차 볼 수 없었어요. 대신 백암성 고구려 성벽 유적지를 보고 유물도 보게 됐죠. 이런 걸 접하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려는 욕망이 생길 거에요. 제 경우는 삼국통일을 한 신라가 섬세한 이미지라면 고구려는 마초적이고 생각했어요. 돌 하나도 사이즈가 크고 강함이 느껴졌거든요. 성이 어떻게 저 위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백암성은 뒤에 절벽을 두고 삼면만 막는 형태라서 놀랍더라고요.”
조인성이 바라본 영화 속 양만춘은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투쟁을 택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노론과 노론처럼 하나의 사안을 두고 서로 반대되는 생각들이 있다”면서 “성을 내어 주면 정말 성민들이 살 수 있을까.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죽을 수밖에 없다면 싸우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들이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양만춘은 이길 수 없을 때도 싸워야한다는 쪽이다. 극중 시미(정은채)는 성을 적에게 넘겨주는 게 전체를 위한 거라는 입장이고”라고 나름의 해석을 내비쳤다.
“만약 제가 정말 그런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무서울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게 옳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독립운동가들이 추앙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조용히 가족을 지킨 한 가정의 부모도 나름대로 위대하니까요. 다만 안시성 사람들은 리더가 결정한 걸 따랐고, 결국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궈낸 것들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조인성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역사 고증 논란에 대해서는 “고구려와 안시성, 양만춘에 대한 이야기를 폭넓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영화는 러닝타임이 있고 볼거리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소신을 드러냈다. 또한 “‘안시성’은 할 얘기가 많아지는 것보다 정해진 분량 안에서 임팩트 있게 만들어진 영화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안시성’은 양만춘의 일대기에서 일부에 불과한 작품이지만, 고구려를 기반으로 한 영화가 이렇게 시작했다고 봐요. 또 다른 영화에서 새로운 양만춘의 나올 지도 모르죠. 김명민과 최민식이 각자의 이순신을 연기한 것처럼요. 아니면 을지문덕 같은 다른 고구려의 장수를 보여줄 수도 있겠죠. 요즘은 우리나라 영화 기획도 우주까지 가는 상황이니 역사도 좀 더 옛날로 가지 않을까 해요. 영화계의 제작 환경이 확장되고, 그만큼 관객 시선이 높아지는 만큼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안시성’을 통해 또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선 조인성은 영화 속 양만춘과도 사뭇 닮아 보이는 배우다. 자신을 둘러싼 시선과 굳어지기 십상인 이미지를 줄곧 벗어나 언제든 새로운 길 앞에서 마음을 열어젖힐 수 있는 그는 30대 중반을 지나는 지금도 현재진행형 배우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남들은 ‘위험한 도전’이라고 여겨지는 이미지 변신에 대해 그가 남긴 포부가 덤덤하면서도 당당하게 읽히는 이유다.
“한때는 재벌2세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었어요. ‘비열한 거리’ 촬영 당시에는 ‘깡패가 이렇게 생겨서 되나’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죠. 그런데 그 영화로 남우주연상을 받았어요. 이미지는 굳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차 떼고 포 떼고 하면 할 수 있는 게 점점 없어지겠죠. ‘조인성이란 배우는 제벌 2세가 참 어울리는 배우였어’라는 얘기 듣고 끝내기는 아깝잖아요. 틀에 박힌 이미지의 연기만 하는 것보다, 실패하고 사라질지라도 새로운 이미지에 도전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사라지지 않게 도와주세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