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현물이전제도 시행 이후 ‘연금 이사’를 고민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정부가 연금에 대해 중도 인출을 제한하고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그동안 방치됐던 연금 자산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늘고 있는데요. 하지만 투자자들의 선택에 도움이 되고자 정부가 공개하고 있는 각 사별 수익률을 놓고 실효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투명한 듯 보이는 공시 정보를 두고 잡음이 일어나는 이유는 뭘까요.
■ 이상한 퇴직연금 수익률 공시
현재 금융감독원에서는 연금포털을 통해 분기 단위로 각 금융사들의 퇴직연금 수익률을 공개합니다. 다양한 금융사들의 운용 성과 비교할 수 있게 한 것인데요. 세부 분류를 보면 기업이 운용방법을 결정해 투자한 자산을 퇴직시 수령하는 확정급여형(DB)과 개인이 직접 운용 및 관리하는 확정기여형(DC), 그리고 개인형 퇴직연금(IRP)로 구분돼 있습니다.
그런데, 수익률을 살펴보면 다소 어색한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 공시된 지난 2분기 기준 원리금 비보장형(DC) 상품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곳은 신한라이프생명보험입니다. 총 11.79%. 연금계좌의 연평균 수익률이 2%대임을 감안한다면 상당한 퍼포먼스입니다. 반면 아이엠증권은 동기간 2.11% 수익률을 기록하며 전 업권 ‘꼴찌’라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통상 안정적 성향의 고객들이 많은 보험사, 그리고 적극적 고객층 비중이 높은 증권사가 원리금 비보장에서 엇갈린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인데요. 그 배경에는 ‘통계의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공시에 따르면 신한라이프생명보험과 아이엠증권이 운용하고 있는 DC 자금 가운데 원리금 비보장형 자금은 각각 154억원, 105억원에 불과합니다. 대형사들이 운용하고 있는 조단위 대비 턱없이 적은 규모입니다.
즉, 해당 금융사의 연금자산 관리 능력을 평가하기에 ‘모수’가 너무 작다는 겁니다. 반면 운용자산의 규모가 큰 사업자의 경우 수익률 상위를 유지하더라도 평균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 바 ‘통계의 함정’입니다.
금융사들은 고객들이 연금 포트폴리오를 배분하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가입자 수가 많을수록 다양한 투자 성과가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원리금 보장 등으로 다양하게 분산돼 있기 때문에 단순히 수익률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 가장 많은 규모의 원리금 비보장 자금(8조7148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미래에셋증권의 동기간 수익률은 6.18%로 평균치에 가깝습니다.
■ 합산수익률 논란..."장기 성과+자산배분 서비스 봐야"
사실 수익률 산출 방법은 각 업권의 유불리에 따라 불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먼저 증권사들은 현재 공시되는 수익률이 전체 적립금을 기준으로 한 ‘합산 수익률’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불만입니다.
퇴직연금 가입자 중 상당수는 원리금보장상품과 원리금비보장상품을 혼합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운용하는 만큼 합산 수익률 정보를 함께 보여주는 것이 가입자에게 필요하다는 것이죠.
물론 이 문제가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닙니다. 2022년 상반기까지 금융감독원은 원리금보장형, 비보장형 뿐 아니라 합산수익률을 함께 제공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이 증권사에 유리하다는 은행 및 보험업계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현재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일례로 퇴직연금 적립금이 각각 1000억원인 금융사 A, B가 존재한다고 가정해 보면요. 이중 A사는 원금보장형 800억원의 수익률이 2%이고 원금 비보장형 적립금 200억원의 수익률이 15%이라면 합산 수익률은 4.6%입니다. 반면 B사의 원금보장형(200억원) 수익률 1.5%와 비보장형(800억원)의 수익률 10%를 합산하게 되면 수익률은 8.2%로 높아집니다.
다시말해, 유형별 기준으로는 두가지 모두 A의 수익률이 높지만 합산 수익률에선 비보장형 적립금이 많은 B사 성과가 높게 나타납니다. 때문에 합산 수익률 공시는 원금비보장형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증권사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이 은행과 보험사의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증권업계에서는 특정 업권에 절대적인 유불리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강변합니다. 즉, 상승장에서는 원리금비보장상품 비중이 높은 증권사의 합계 수익률이 높게 나타나겠지만 하락장에서는 반대로 은행과 보험사가 더 우수한 성과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라는 논리입니다.
이와 함께 현재 공시되는 퇴직연금 수익률이 분기 단위의 단기 수익률이라는 점은 되레 투자자들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 증권사 퇴직연금 본부장은 “퇴직연금사업자들이 단기 수익률 순위로 공격적인 홍보 마케팅을 벌임으로써 가입자들의 빈번한 매매를 유발할 수 있다는 부작용으로 인해 선진국에서는 5년 이상 중장기 수익률을 공시하기도 한다”며 “공시 주기를 연 단위로 변경하고 공시 대상 수익률도 최소 3년 이상 중장기 수익률만 공시하는 것이 가입자들의 안정적 성과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퇴직연금부문 고위 관계자는 “단기적 수익률보다는 퇴직연금의 글로벌 자산배분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제공하고 고객들에 대한 대면 및 비대면 상담 서비스가 잘 구축돼 있는 금융사를 선택하는 것이 연금 자산을 증식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