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사진=연합뉴스)
미국과 일본이 23일(현지시간) 양자 통상협상에서 ‘관세율 15%’ 수준의 상호조정에 합의하면서, 조만간 열릴 한·미 통상협상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자동차·농산물·투자 분야를 둘러싼 협상 전략의 차이가 부각되며, 한국 정부의 대응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 일, 750조원 투자로 상호관세 10%p 낮춰
이번 미·일 협상의 핵심은 자동차 품목 관세 인하와 미국 내 대규모 투자 유치다. 미국은 당초 25%까지 검토하던 상호관세를 15%로 낮췄다. 일본은 이에 대한 대가로 ▲자동차 시장의 일부 개방 ▲쌀 등 민감 농산물의 TRQ(저율관세할당) 확대 ▲5500억 달러(약 75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을 제시했다. 미국 내 고용과 산업 기반 확대를 전면에 내세운 일본의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이해와도 맞물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라며 일본이 얻을 이익의 90%가 미국 내에서 실현될 것이라 강조했다.
일본에 앞서 영국과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도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영국은 항공기·철강 부품 등에 대해 10% 수준의 상호관세로 타결했고, R&D 투자와 기술이전 약속을 병행했다. 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도 각각 19~20% 수준에서 조율을 마쳤다.
미국은 이미 다른 국가들과의 협상 결과를 기준점으로 삼고 있어, 한국에 대한 요구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은 자동차·반도체·철강·배터리 등 미국의 안보 프레임에 직접 걸린 주요 수출 산업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타국보다 더 정교하고 민감한 협상이 요구된다.
내달 1일(현지시간) 미국의 상호관세 발효를 앞두고 23일 미국을 찾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워싱턴DC인근 덜레스 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입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한, 자동차·투자·농산물 삼각 전략 준비…‘일본은 넘어야 산다’
오는 25일 열리는 한미 통상협상을 앞두고, 한국도 일본과 유사한 방식의 패키지 전략을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조선·반도체·배터리 등 전략 산업 분야 협력 강화를 내세운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중심으로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현재 한국은 미국에 자동차 완성차 347억 달러, 부품 71억 달러 규모를 수출하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 관세가 상승할 경우 상당한 수출 타격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현대차·기아차를 중심으로 대미 투자 210억 달러 이상을 포함한 제조업 르네상스 플랜이 협상 카드로 활용될 전망이다.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일부 농산물 분야에 대한 비관세 장벽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제기되지만 쌀 시장을 개방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농산물 개방 여력이 크지 않다. TRQ 제도, WTO 규정, 국내 농민 여론 등을 고려하면 미국의 요구에 폭넓게 응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 정상급 협의 없는 외교력 차이 有…향후 협상 가이드라인 전망
이번 일본의 협상 결과는 총 9차례의 실무 논의와 고위급 정상 대화 채널이 뒷받침한 결과다. 반면, 한국은 현재까지도 정상급 협의 없이 실무급 2+2 채널로 협상을 진행 중이다. 고위급 외교력의 부재가 향후 협상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철강 등 특정 품목에 대해 국가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관세 부과 논리를 고수하고 있어 단순 무역 관점이 아닌 정치·전략 프레임을 앞세우는 상황이다. 한국의 협상 결과는 앞으로 있을 주요국 협상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수년간 통상질서를 좌우할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한미 통상협상 마감 시한은 내달 1일로 예정돼 있다. 당초 25일 양국 재무·통상 수장의 '2+2 통상 협상'을 진행하려 했지만, 미국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의 긴급한 일정으로 인해 취소됐다. 양국은 조속한 시일 내 일정을 재조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