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넷플릭스)
[뷰어스=손예지 기자] “‘킹덤’ 시즌1은 쓰기가 힘들었어요. 몸에 익은 리듬과 다른 템포로 써야 했으니까요. 다행히 시즌2를 쓸 때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덕분인지 수월하게 썼습니다”
김은희 작가의 말이다. 김 작가가 ‘사극’과 ‘좀비’를 결합해 쓴 드라마 ‘킹덤’이 세계 최대 온라인 스트리밍업체(OTT) 넷플릭스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에 최근 2020년 시즌2 방영을 확정하고 촬영에 돌입했다.
“처음부터 넷플릭스와 시즌2 계약까지 한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시즌1이 궁금증을 유발하며 끝나다 보니 당연히 다음 시즌에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썼고요”
‘킹덤’은 조선시대 권력자들의 음모로 괴물이 된 왕과 굶주림 끝에 역병에 걸린 백성들의 얘기다. 지난달 공개된 시즌1에서는 세자 이창(주지훈)이 이 끔찍한 현상의 원인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총 6부작으로, 그 중 최종회는 의녀 서비(배두나)가 역병과 깊은 연관이 있는 생사초를 발견하는 가운데, 괴물의 숨겨진 비밀 하나가 드러나며 마무리됐다. 이에 ‘킹덤’이 세상에 공개되자마자 시즌2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았던 바, 김 작가에게 힌트를 요청했다.
“시즌1에 뿌린 떡밥은 시즌2에서 해결될 겁니다. 시즌2에서도 떡밥은 던져져요. 시즌3를 염두에 두고 뿌린 건 아니지만요. 내가 천재여서 모든 이야기를 시즌 안에 다 풀면 좋은데 그렇지 못 하기도 해요(웃음)”
김 작가는 ‘킹덤’의 스토리를 2011년 처음 구상했다. 평소 좀비물을 즐겨 본다는 그는 동시에 식탐밖에 남지 않은 좀비가 슬픈 존재라고 생각했단다. 좀비물은 물론 역사에 대한 관심도 깊은 김 작가는 여기에 백성이 피폐하고 힘들었던 조선시대의 일면이 떠올랐고 역병이란 소재를 쓰면 좀비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극대화시킬 수 있겠다 생각했다고.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처음엔 긴장했죠. 의외로 잘 이해하더라고요. 다만 조선시대 유교적인 가치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고, 외신 기자들과 인터뷰할 때도 ‘킹덤’은 유교관에 대해 알고 보면 더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넷플릭스 특성 상 전 세계 190개국에 공개되다 보니 대사를 쓸 때의 고민도 남달랐을 터다. 더욱이 ‘킹덤’의 장르가 사극인 만큼 고어나 궁궐 내 용어들이 다른 나라의 언어로 어떻게 번역되는지도 궁금했다.
“물론 넷플릭스에 공개되지만 ‘킹덤’은 애초에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를 쓰려고 한 작품이에요. 그래서 그 시대의 정쟁도 더 그려보았고요. 사실 영어도 잘 못하고 외국에 나가본 적도 별로 없어서 그냥 나다운 대사를 쓰자고 생각했습니다(웃음). 다만 그런 고민은 했죠. 강녕전이나 지율헌을 ‘King’s palace’ ‘Hospital’로 번역해야 할지 고유명사로 써야 할지와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결국은 넷플릭스가 여태 해온 일들이기에 전적으로 맡겼어요”
‘킹덤’ 공개 전 10번이나 완성물을 반복해 봤다는 김 작가. “좀 더 잘 쓸 걸” “이게 최선인가?”라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스스로에겐 한없이 겸손했으나 ‘킹덤’을 연출한 김성훈 작가에 대해서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연출에 감탄한 장면들을 꼽았다.
“궁궐 후원에 시체가 던져지는 장면을 좋아해요. 가장 아름다운 곳에 숨겨진 가장 더러운 비밀. 이게 잘 표현된 장면이라 좋아합니다. 또 거짓 임신을 한 중전(김혜준)이 자기 대신 아들을 낳게 하려고 임산부들을 모은 장면도요. 어린 임산부가 많이 나오기를 바랐거든요. 자기 앞일을 전혀 모르는 그들이 밥을 먹는다는 데 행복해 하는 모습이 더 슬퍼서요. 이 장면도 감독님이 연출을 잘 해주셨어요”
이런 가운데 ‘킹덤’은 좀비를 ‘슬픈 존재’로 바라보는 김 작가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같은 설정은 우리 역사를 알고 있는 국내 시청자들에게는 공감을 얻고,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가장 먼저 역병에 걸린 건 왕이지만 그에게 물려도 전염은 되지 않아요. 그런데 백성들끼리는 전염이 되죠. 인육을 먹었으니까요. 물론 처음 인육을 먹은 백성들은 알고 그런 게 아니에요. ‘굶어 죽든지, 이거라도 먹고 살든지’란 대사가 나올 만큼 배고픈 시대였기에 아무 고기나 먹었고 역병에 걸려 전염까지 시작된 겁니다. 권력층의 탐욕과 민초들의 배고픔이 합쳐져 만든 괴물이라는 점을 기획 단계부터 생각했어요. 아마 시즌2에는 이 병증이 좀 더 많이 표현될 겁니다”
(사진=넷플릭스)
그래서인지 ‘킹덤’의 괴물들은 외국의 좀비와 다르다. 우선 움직임의 속도부터 큰 차이가 난다. 기존의 좀비가 느린 데 반해 ‘킹덤’ 속 역병에 걸린 백성들은 재빠르다. 김 작가는 “내가 더 먼저 먹어야 한다는, 내가 먹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더 빠르게 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슬픈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요즘도 사회 기사를 보며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의식주 문제에 관해서요. 가장 기본적인 문제잖아요. 그런데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안타까움 때문에 ‘킹덤’을 기획하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았죠. 물론 개개인이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나라가 촛불로 사회를 바꾼 것처럼 모두가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작가는 의식주 문제를 ‘남의 이야기’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는 지금도 밖에 나가면 햄버거 하나를 사 먹을 수 있지만, 마땅히 가져야 할 것들을 누리지 못할 때의 박탈감과 허탈감을 생각해 봐야 한다”며 “요즘 청춘들은 열심히 살아도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과연 현대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걸 다 같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또 가장 최근에는 세월호부터 과거 6·25 전쟁과 임진왜란 등 국가에 큰 일이 터졌을 때 마땅히 책임져야 할 이들이 책임지지 않은 경우가 분명 있었습니다. ‘킹덤’에서도 여러 캐릭터들을 통해 이를 보여주고 싶었고요”
‘킹덤’에 앞서 사회 구조의 불합리성을 비판한 장르물로 사랑받았던 게 김 작가의 평소 신념에서 비롯됐다는 걸 새삼 느끼는 대목이었다. 이에 김 작가의 차기작이 더욱 궁금해졌다.
“일단 ‘킹덤 시즌2’가 있죠. 촬영은 아마 6월쯤 끝나지 않을까 싶어요. 기술적인 부분은 잘 모르지만 넷플릭스가 후반 작업에 까다롭다고 하여 공개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소요될 것 같고요. ‘킹덤’이 잘 되면 이후의 시즌도 생각해보겠지만, 그렇다고 넷플릭스하고만 작업할 수는 없잖아요. 하하. 다른 플랫폼에서의 드라마도 기획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가운데 김 작가가 요즘 꽂힌 장르는 SF물이다. 그는 또 “호러물도 해보고 싶다. 로코 빼고 다 해보고 싶다”면서 “사랑이 과연 있을까?”라고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 웃음을 자아냈다.
“나는 이 일을 좋아해요. 대본 쓰는 게 괴롭기는 한데, 또 노트북 앞을 떠나면 불안하거든요. 그래서 여행 갈 때도 노트북을 챙겨 간다니까요. 작품을 쓸수록 경험이 소진될 수밖에 없기에 자료조사도 더 열심히 합니다. 요즘은 시청자들이 나보다 아는 게 더 많아서 뒤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