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코탑 미디어
배우 남규리의 연기에는 간절함이 묻어있다. 20대부터 이런저런 고생 끝에 연기라는 종점에 안착한 탓일까, 배역의 크기와 상관없이 언제나 열정이 가득했다. 발성이나 표정, 눈빛과 같은 기본적인 기술은 설령 부족해 보였을지라도, 연기를 향한 남규리의 진심은 매 작품마다 눈에 띄었다.
그 진심은 서서히 남규리의 내공이 됐다. 영화 ‘여고괴담 : 피의 중간고사’ 이후 벌써 연기를 시작한지도 10여년째, 이제는 농익은 연기가 나온다. 아이콘인 바비인형과 같은 외모는 하나의 무기가 됐다. MBC 주말드라마 ‘이몽’에서 남규리는 안정적인 연기로 주체적인 여성 미키를 표현했다. 수동적인 삶을 살다가, 가수이자 밀정으로서 독립군을 지원하는 미키 역의 남규리를 지난 10일 만났다.
가녀린 몸과 하얀 피부, 큰 눈망울은 여전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을 넘어 더 예뻐졌다. 원하는 배역이 올 때까지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은 그에게 ‘이몽’은 다른 어느 작품보다 큰 애착을 줬다.
“작품 끝나고 울었어요. 예전부터 갈망하던 직업군이기도 했고, 시대극도 처음이었요. 매번 현대극만 했었는데. 또 노래하는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부분도 해소할 수 있었죠.”
미키 역할이 연기 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줬을 뿐 아니라, 이전 작품 현장에서 무겁고 깊게 눌려있었던 남규리에게 이요원, 유지태, 임주환이 있는 ‘이몽’ 촬영장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현장에서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NG가 나도 코믹했고, 현장에서 저를 재밌어 해주셨고, 좋아해주셨어요. 특히 요원 언니는 ‘49일’ 이후에 만났는데, 저를 특히 좋아해줬죠.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게 현장에서 정말 행복한 거예요.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고 나니, 떠나보내는데 아쉬움이 컸죠.”
남규리는 전작인 MBC ‘붉은 달 푸른 해’에 이어 연달아 캐스팅됐다. 초반 8화까지는 두 작품을 오고가며 찍어야 했다. 며칠을 새고 ‘이몽’ 현장을 달리고, 급히 대사를 외우고 노래도 불렀다. 힘겹게 찍은 작품에는 늘 아쉬움이 남는 남규리다.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고 보면 아쉬움이 있죠. 그러면서 성장을 했다는 것도 느꼈어요. 사전제작이다보니 모니터를 못했죠. 혼자 경거망동할까봐 수위 조절을 잘 했어야 했는데, 좀 더 강하게 표현했어도 좋겠다는 아쉬움은 남네요.”
사진제공=코탑미디어
극중 남규리가 맡은 미키는 친일파인 송병수(이한위 분)의 아내로 살다가 그의 죽음 이후 막대한 재산을 얻고 밀정의 길을 걷는 여인이다. 섹시한 매력에 재즈 보컬 실력을 갖춰 경성구락부에서 노래를 부르며 물밑에서는 의열단을 돕는다. 몰락한 일본 정치가문의 외동딸로 미국에서 공부했고 서양문물에 밝다. 이영진(이요원 분)을 무시하다가 진심을 느끼고 친구가 된다. 초반부 후쿠다(임주환 분)을 사랑하지만, 밀정이 되고나서는 철저히 독립군이 된다.
긴 호흡의 작품에서 남규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송병수가 죽은 뒤 영진과의 대화 장면이었다. 내면의 서늘함을 보여줘서라고 했다.
“송병수 죽고 영진이한테 얘기하는 장면이 제일 좋았어요. 자기 다리 멍을 보여주는 장면. 사실 너무 추웠고, 미키는 늘 옷이 얇거든요. 그래서 더 정신이 없었죠. 그 장면도 몰아서 찍었는데, 보니까 저도 모르는 싸늘함이 있었어요. 자연스러웠다고 생각서 마음에 듭니다.”
“제가 평소에도 잘 싸늘하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도 싸늘한 모습을 표현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기회가 많지 않았죠. 그 신을 보는데 좋더라고요.”
굴곡진 기간도 있었고, 외롭게 저예산 영화를 전전하던 때도 있었다. 다시 연기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슬픔에 빠진 적도 있다. 그런 그에게 ‘붉은 달 푸른 해’에 이은 ‘이몽’으로 다시 연기자의 길이 열렸다. ‘이몽’이 그에게 남긴 것은 주체적인 이미지였다.
“‘이몽’을 통해 새로운 캐릭터를 했다는 게 제일 큰 것 같아요. 미키는 유독 더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길 갈망했는데, 사실 잘 안됐어요. 그런데 미키는 엔딩까지도 나아가는 느낌이죠. ‘이몽’을 잊을 수 없는 이유랍니다.”
②에서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