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쇼플레이
배우 안재영이 뮤지컬 ‘니진스키’에서 디아길레프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니진스키’는 발레극 ‘봄의 제전’으로 유명한 세 인물, 발레리노 니진스키, 기획자 디아길레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이야기다. ‘봄의 제전’은 발레의 틀을 깬 형식으로, 1900년대 평단의 혹평을 받은 논란의 작품이다. 하지만 시대가 흐른 후에는 ‘발레를 한 자국 성장시킨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안재영이 연기하는 디아길레프는 최초의 발레단 발레뤼스를 창단한 발레 공연 기획자로, 모던 발레를 확립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당시 많은 무용수를 배출했을 뿐 아니라, 발레 개발에 공헌해 세계 무용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된다.
연극 ‘히스토리보이즈’ ‘보도지침’ ‘나쁜 자석’ 등에서 현실적인 인물을 그린 안재영은 ‘여신님이 보고계셔’ ‘총각네 야채가게’처럼 즐길 수 있는 뮤지컬로도 관객들을 만났다. 그는 작년 ‘라흐마니노프’에서 라흐마니노프 역으로 음악가의 예민하고 섬세한 면을 그린 데 이어, 디아길레프를 통해 감정 기복이 큰 인물까지 소화하고 있다.
“배우로서 보여드릴 부분이 많아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디아길레프의 카리스마 넘치는 면모부터, 사랑에 미치고, 또 사랑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등, 쉽지는 않지만 그만큼 감정을 섬세하게 쪼개서 고민하고, 표현하고 있다.”
‘니진스키’에 등장하는 세 인물 니진스키, 디아길레프, 스트라빈스키의 성향은 너무 다르다. 안재영이 생각하는 자신과 가장 비슷한 인물은 누구일까. 니진스키는 ‘봄의 제전’에 대한 확신으로 다른 예술가들과 등을 돌릴 정도로 고집이 센 인물로 그려진다. 디아길레프는 매사에 이성적이고 차가운 인물, 천재 피아니스트 스트라빈스키는 밝지만 광기 어린 면모를 지녔다.
“사람들 모두가 다양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나. 내 안에도 니진스키처럼 점진적인 성향과, 디아길레프처럼 냉정하고 차가운 면모도 있는 거 같다. 상황이나 상대방에 따라 성향이 조금씩 달라지는 거 같은데, 무대에 섰을 때 내 안의 어떤 부분을 조금 더 확장 시킬지에 대해 고민한다.”
특히 극이 진행될수록 치닫는 디아길레프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다. 니진스키를 향한 감정의 변화는 마냥 신나고 밝기만 했던 극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니진스키를 바라보는 디아길레프의 마음은 극이 진행될수록 변한다. 처음에는 니진스키의 발레가 좋았을 것이다. 무대에서 반짝거리는 몸동작,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 달려가는 반짝거리는 니진스키의 모습을 보고 ‘왜 러시아에 있을까’ 싶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버지에 대한 아픔을 공유하고는 마음이 조금 달라졌을 것이고, 니진스키가 결혼한다는 편지를 받고는 배신감이 들었을 것이다.”
극중 디아길레프는 니진스키가 추고 싶은 춤을 추게 해주는 조력자로 그려지지만, ‘봄의 제전’에서는 약간 다르다. 니진스키를 바라보는 ‘사랑의 감정’인지, 제작자로서 ‘창작자를 믿는 감정’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다.
“디아길레프가 딜레마를 품은 시점이 ‘봄의 제전’을 시작하는 부분이다. ‘봄의 제전’ 때는 아마 니진스키를 향한 감정보다 자신의 판단을 믿은 거 같다. 디아길레프 경험상 ‘봄의 제전은 아닌데’ 싶다가도 니진스키의 예술성을 믿고, 뒤를 받쳐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거 같다,”
자신에 의해 망가진 니진스키가, 자신이 건넨 발렛슈즈를 신고, 잊었던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장면에 대해 안재영은 이렇게 설명했다.
”니진스키와의 첫 만남을 다시 떠올리고, 그가 발레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을 거다. 그래서 발렛슈즈를 건넨 거고. 자신을 알아봐 준 것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을 거 같다. 진짜 니진스키가 워하는 뭐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다. 거의 의식이 없으셨을 때 ‘아빠 나왔어’라는 내 말에 아버지께서 고개를 돌리고 날 바라보셨다. 딱 그 감정이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