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1 뉴스화면 캡처
일본이 ‘평화의 소녀상’을 두고 말바꾸기를 거듭하고 있다. 테러 협박 때문에 현지에 전시된 소녀상을 철거했다고 했다가 곧 공권력 압력 때문이라 시인했다. 논란이 이어지는 와중에 담당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유감을 표명했지만 대응방침 등은 내놓지 못했다. 그 사이 국내 여론 일부는 오히려 소녀상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까지 했다. ‘평화의 소녀상’은 작가 개인의 창조물이지만 국내에 있어서는 위안부 피해를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평화의 소녀상’에 일본은 왜 이렇게도 집착할까. 소용돌이치는 기류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 일본 현지 및 독일서도 지속적 핍박과 물밑작전
뷰어스는 사회공헌 일환으로 지난 4월부터 ‘소녀와 꽃’이라는 타이틀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 정부와 주변의 관심, 일본과의 관계 등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이들을 조명해왔다. 꽃 필 나이의 소녀들이 어떻게 짓밟혔는지, 그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우리가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명확히 알고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의 보도다.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들려온 ‘평화의 소녀상’ 소식은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우리가 어째서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지, 일본이 얼마나 치졸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과거를 덮고 한국을 압박하는지를 알게 하는 단적인 예다.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일본의 곱지 않은 시선은 이전부터 계속돼 왔지만 최근 알려진 일련의 일들은 한일관계의 여파임이 다분해보인다. 지난 1일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를 통해 일본 시민들 앞에 섰던 평화의 소녀상은 협박과 항의를 이유로 3일 만에 전시가 중단됐다. 이에 더해 독일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에게까지 독일주재 일본대사관이 손을 뻗은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문체부 제공
우선 아이치 트리엔날레를 주최한 일본 아이치현 지자체는 테러 예고 등의 협박성 전화가 잇따른다는 이유로 전시 중지를 발표했다. 이에 대한 예술전 실행위원들의 반발은 적지 않다. 일본 최대의 검열사건이라는가 하면 “이런 폭력이 성공한 경험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까지 나온다. 일본 시민들 역시 전시 중지에 항의하며 한일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대치 중일지라도 문화예술분야에서만큼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전시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소녀상이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았다”고 주장한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고, 문제적 발언에 대한 공개토론을 요구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독일에서도 소녀상을 철거하려는 일본의 물밑작전이 드러났다. 독일 베를린의 여성 예술가 전시관 ‘게독’에 지난 2일부터 전시되기 시작한 평화의 소녀상을 일본 대사관이 나서 철거해달라 요청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소녀상은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전시됐던 것과 같은 작품이다. 독일주재 일본 대사관이 전시 주최측에 보낸 공문에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배상 문제도 다 끝났기에 철거를 요청한다는 주장이 남겨 있다. 이미 두달 전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전시된 소녀상에도 철거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 총영사가 직접 미술관을 찾아가 철거를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 정부 "유감표명" 일부 여론 "지겹다"
역사를 지우려는 일본 도발은 한일관계 악화로 더욱 강도를 더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녀상을 핍박하고 없애기 위해 분주한 일본의 행태에 5일, 문화체육관광부 김진곤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우려를 표했다. 그는 “아이치 트리엔날레 ‘표현의 부자유전 그 이후’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중단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문화예술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존중돼야 한다. 조속히 정상화되기를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교류가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 외에 향후 대응 방향 등 구체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그 사이 일본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전시 중단을 결정했던 일본 아이치현 지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을 요구한 건 검열이고 위헌”이라고 정권의 압력 때문이었음을 시인하고 나선 것이다.
사진=KBS1 방송화면
물론 일본정부와 관료는 여전히 딴청과 억지를 부리고 있다. 전시 중단을 관철시킨 나고야 시장은 “그렇다면 저런 전시가 적절하다고 당당하게 공언해달라”고 생떼를 썼고 예술제 보조금 삭감을 시사했던 일본 정부의 관방장관은 “지가의 질문에 답했을 뿐”이라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일본 시민들과 전시 철거를 결정했던 당사자까지 문제가 있다고 꼬집을 정도로 일본 내부에서 양심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정작 국내 반응이 남다르다는 점이 뼈아프다. 소녀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언행에 분노하는 이들이 대다수이지만 일각에서는 과거에 얽매이기보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쓴소리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미래를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는 말은 백번 옳은 말이지만 소녀상을 두고 벌어지는 일들이 “지겹다”는가 하면 “국가가 유린당한 과거가 뭐가 자랑이냐”며 볼멘소리를 내놓는 이들을 보면 자못 섬뜩하다. 이는 일본이 바라는 바나 마찬가지다.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것과 역사를 덮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물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한국 태도의 문제도 크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나고야 시장의 “소녀상이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았다”는 말은 소녀상이 왜 만들어졌는지는 철저히 외면한 채 자국 국민들이 입을 상처만 신경 쓴 망언이다. 소녀상이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았다면 그 소녀상의 진짜 주인공들의 삶과 마음을 짓밟은 것은 누구일까. 한국도 일본도 모두 아는 답을 두고도 일본의 작태는 멈추지 않는다. 현 시점에서 무조건 일본이 싫다는 혐일 감정도 위험하지만 역사를 덮어놓고 앞만 보자는 일본의 이기적인 행태에 동의하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다.
빨간 볼에 싹뚝 자른 단발머리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있는 소녀. 이 소녀상이 왜 이런 모습으로 세계 곳곳을 돌며 전시장에 서게 됐는지 아는 이들은 소녀의 눈을 처연하다고도, 구슬프다고도 말한다. 이 역시 우리의 역사다. 일부 여론의 말처럼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하거나 지겨워해도 될 역사는 결코 아니다. 더욱 분명한 사실은 예술작품인 소녀상에 정치색을 입힌 건 일본 정부라는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생떼를 쓰는 일본의 작태가 한심한 상황, 개개인의 의견과 시선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이 역사와 일본의 만행만큼은 잊지 않아야 할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