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에게 종종 농담 삼아 물어보는 것이 있다. “너 남산타워와 63빌딩 가봤냐. 그리고 한강 유람선 타봤어?” 그런데 의외로 ‘서울 사람’이라는 지인들 중 “아니”라는 답과 “한두 개는 가봤는데” 정도의 답이 적지 않게 나온다.
서울 외 지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과거에 서울에 여행 오는 타 지역 사람들에게 저 세 곳은 필수였다. ‘한강의 기적’의 상징물로까지 표현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거 저 세 곳을 다 가본 사람일수록 서울 출신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농담까지 나왔다.
이를 두고 어느 이는 “야 너는 서울 사는데 왜 저런 곳을 안 가봤냐”고 말하는 타 지역 출신들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 타 지역 출신들도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 대해서 의외로 모른다.
제주에 사는 지인은 한라산은 당연히 안 올라가봤고, 뭍사람들이 제주에 갈 때마다 찾아가는 섭지코지, 쇠소깍, 삼굼부리, 성산일출봉, 마라도 등은 어릴 적에 한두 번 가봤다고 하거나, 아예 가보지 못한 곳도 수두룩하다. 부산에 사는 지인도 딱 자기만 사는 지역만 가보거나 해운대나 광안리 해수욕장 등만 가봤을 뿐, 태종대나 용궁사 등을 이야기하면 “거길 왜 가냐”의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서 서울 여행을 이야기한다.
여행은 보통 새로운 지역으로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거기서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며, 즐거운 기분을 갖고 생각을 정리하고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래서 ‘여행을 간다’고 할 때, 내가 현재 사는 지역에서 먼 지역을 선택한다.
그런데 멀리 간다고 새로운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니다. 남산타워 한번 못 올라가 본 ‘서울 촌놈’이 천천히 걸어 올라가서 서울을 바라보는 것도 새로움이고, 한강 유람선 타고 좌우로 서울 야경을 보는 것도 새로움이다.
사람들은 내가 익숙하게 본 풍경을 잘 안다고, 혹은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혹은 너무 익숙하게 보면서 그곳을 가봤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출퇴근길에, 등하굣길에 모임을 가는 길에 자주 보니까 ‘익숙’하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여행의 정의를 단순히 ‘떠나다’가 아닌 ‘생소함에서 느끼는 감정’을 우선으로 두는 사람이라면,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상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일상의 여행을 충분히 즐기는 사람이 ‘떠나서’도 그 지역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본다.
덧붙이자면, 내 지인은 출근하려 지하철로 가는 코스를 매일 바꾼다. 골목으로, 대로로, 혹은 아예 다른 지하철역으로 좀 더 걸어가 출근한다. 퇴근 역시 마찬가지다. 주말이면 자신이 사는 지역부터 탐색한다. 조금이라도 ‘일상의 여행’을 즐기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