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고(3高)'가 코로나19 터널에서 빠져나와 회복을 꿈꾸던 한국 경제의 속을 쓰리게 하고 있다. 물가, 금리, 환율이 주범이다. 이른바 '푸틴플레이션(푸틴+인플레이션)'은 국제 유가와 곡물가 등 원자재 가격을 높였다. 이는 그대로 수입돼 국내 소비자물가 고공행진으로 이어졌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은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려야했다. 전세계가 같은 고통을 겪는 사이 '안전자산'인 달러화의 인기가 높아져 원화 환율은 1300원 목전까지 올랐다. 7월 2일 창간 7주년을 맞는 뷰어스는 [3高 위기를 넘자]라는 주제로 창간기획을 준비했다. -편집자 주-
# 부산에서 주상복합 건물을 분양하고 있는 시행사 박 사장(53)은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공사비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50% 이상 더 들 거 같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자재비의 급상승이다. 철근과 시멘트 등 가격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치솟았다. 여기에 금리 상승으로 인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해 조달하는 자금의 이자도 크게 늘었다. 분양이 잘 된다해도 역마진이 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는 얘기다. 박 사장은 "이미 공사를 멈춘 현장이 나타나고 있다"며 "차라리 위약금을 내고 멈추는 게 낫지 눈덩이처럼 손실이 커지는게 뻔한데 밀어붙이기 어렵다"며 한숨을 쉬었다.
# "차를 버려야하나요?" 주유소 기름 값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15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판매 가격은 리터당 2087.6원이었다. 경윳값은 2090.6원. 경윳값은 이전 최고치였던 2008년7월16일(1947.4원)을 넘어선 지난달 12일 이후 연일 최고가 행진 중이다. 게다가 상승세가 더 가팔라지고 있다. 당분간 기름값 고공행진이 꺾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더 무섭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미국의 여름 휴가철 등이 겹쳐 국제 유가 오름세가 계속되고, 환율 상승세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 정책은 언 발에 오줌누기란 탄식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실업률 (자료=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
■ 미 연준, 28년만에 자이언트 스텝...한국은행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 15일(현지시각) 연방기준금리를 0.75%p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연준이 금리를 한 번에 0.75%p 올린 것은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의장 시절인 지난 1994년 11월 이후 28년만에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연준이 7월 정례회의에서 다시 '자이언트 스텝'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연준이 이토록 과격하게 금리 인상에 서두르는 건 물가 상승 때문이다. 미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5월 8.6% 상승했다. 초인플레이션 시대였던 1981년 이후 최고치를 뛰어넘었다. 더 강도 높은 통화 긴축이 필요하다는 위기감이 퍼지면서 연준은 '극약 처방'을 꺼내든 셈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도 예상보다 빨라질 전망이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 역시 이미 5%를 넘었다. 그리고 한두 달 내 미국 기준금리가 우리나라보다 높아지는 '금리 역전'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 역전은 투자 자금 유출, 원화 가치 하락 등으로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길 우려가 있다.
이번 연준의 인상으로 한국(1.75%)과 미국(1.50∼1.75%)의 기준금리 격차는 기존 0.75∼1.00%포인트에서 0.00∼0.25%포인트로 크게 줄었다. 우리나라 기준금리에 변화가 없다고 가정하면 다음 달 미국이 빅 스텝(0.5%포인트 인상)만 단행해도 오히려 미국의 기준금리가 우리나라보다 0.25∼0.50%포인트 높은 상태로 역전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한국은행의 '빅 스텝(한번에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 조정 뿐만 아니라 최근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캐나다, 호주 중앙은행이 0.5%포인트 인상에 나서는 등 글로벌 빅스텝 행보가 확산되고 있다.
■ 물가와의 전쟁, 경기 침체로 전이된다
그야말로 '물가와의 전쟁' 상황이다. 당장의 물가 상승 보다 더 무서운 건 경제주체들의 심리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나쁜 예감은 틀린 법이 없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물가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측면에서는 각국 중앙은행의 행동을 응원할 수 밖에 없다.
추경호 부총리는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 후 “물가 안정이 가장 시급한 현안에 인식하고 총력 대응에 나설 것”이라면서 “물가에 보다 중점 둔 통화정책 운영과 함께 공급측면의 원가 부담 경감, 기대 인플레 확산 방지 등 다각적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마냥 금리를 올릴 수 만은 없는 게 또 다른 고민이다. 금리를 과격하게 올리면 필연적으로 경기 침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당장은 인플레이션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긴축을 강행하지만 경기 둔화 수준이 임계치를 넘어서면 이 마저도 묵과할 수 없게 된다.
ISM제조업지수,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 (자료=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물가를 잡으면서 경기도 살릴 방법은 없다.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경기 추락으로 이어졌던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1995년 미 연준이 금리를 급격히 올린 이후 경기는 추락하고 2~3년 뒤 동아시아 경제위기가 터졌다. 2006년에 급격히 금리를 올리자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지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연준의 0.75%포인트 금리인상 직후 이코노미스트 5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향후 12개월 안에 경기침체가 올 확률'에 대한 답변 평균치가 44%로 집계됐다. 지난 2005년 중반부터 관련 설문조사를 시작한 이후 이 정도의 높은 수치는 나온 적이 거의 없다고 신문은 전했다.
가파른 물가 상승으로 이미 미국 근로자들의 실질 임금이 전월대비 0.7%(전년동월대비 3.9%) 떨어졌다. 물가 상승이 소비와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확인되기 시작한 것. 미국 미시간대 소비자태도지수는 5월 58.4에서 6월 50.2로 급락했다.
연준은 올해 미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연율)은 기존 2.8%에서 1.7%로 대폭 하향했다. 성장률이 2%를 밑도는 사실상 경제 둔화가 불가피하다는 걸 인정한 셈이다. 물가 고공행진과 함께 경제 둔화가 오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우려를 내비친 거다.
우리 정부도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당초 3.1%에서 2.6%로 낮춰 잡았다. 소비자물가는 기존 전망보다 두 배 이상 높은 4.7%로 예상했다.
또 하나 과잉부채에 따른 쇼크도 조심해야한다는 경고도 나온다. 국가 부채는 물론 가계부채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긴축 후 경기 침체는 피할 수 없다"며 "인플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과잉부채 구조로 인한 시스템 위기도 고려해야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