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에서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주고, 생산성 향상 범위 내 적정 수준으로 임금 인상이 됐으면 한다."
문형민 편집국장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단을 만나 물가 상승세를 심화할 수 있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며 이렇게 요청했다.
추 부총리가 우려한 것은 일부 IT 기업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높은 임금 인상이 나타나고 있는 거다. 이는 다른 산업과 기업으로 확산될 수 있고, 이로 인해 고물가 상황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 격차를 확대시킬 수 있다는 거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생산성을 초과하는 지나친 임금 인상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확대하고 기업 현장 곳곳에서 일자리 미스매치(불일치)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업은 이런 고임금·고비용 구조 아래에서 경쟁력을 계속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고 언급했다.
그의 얘기는 일면 타당하다.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세를 가속화시킬 수 있고, 기업의 경영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렇지만 근로자 입장에서 보면 속 터지는 발언이다. 이미 천정부지로 물가는 오르고 있는데 임금 인상 폭을 최소화해야하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올 수 있다.
가장 먼저 얘기할 수 있는 게 집값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서울 중위소득자가 월급만으로 중간 가격대 집을 사기 위해서는 숨만 쉬고 14.4년을 모아야 한다.
KB부동산이 집계한 올해 1분기 'KB 아파트 담보대출 PIR(소득 대비 주택가격) 지수'는 14.4배로 전 분기(13.4)보다 7.4% 증가했다. 'KB 아파트담보대출 PIR'은 KB국민은행에서 아파트담보대출 시 조사된 담보평가 가격의 중위값에서 대출자의 연소득 중위값을 나눈 값이다. 즉, 개인 소득자가 주택을 구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14.4년 동안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는 현실에서 임금 인상 폭을 누르라는 건 공감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금리가 오르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이 연 7%대에 육박하면서 대출자들이 위기를 느끼고 있다. 이자는 늘어나는데 임금마저 안오른다면 어쩌란 말인가.
또, 올해 치솟는 물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거다. 이에 '푸틴플레이션(푸틴+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미 치솟은 물가로 인해 실질임금이 떨어지고, 소비가 줄어들고,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 인상에 부정적인 얘기를 경제 정책의 수장이 했다는 것은 논란이 될 만하다.
추 부총리는 이날 "임금은 기본적으로 노사 간 자율적으로 결정할 부분"이라고 전제한 후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맞다. 임금은 노사간에 결정할 부분이다. 아무리 인재가 탐나고 성과 보상 원칙을 지키려는 기업도 여력이 없으면 쉽게 돈보따리를 풀 수 없다. 당장 부담이 되더라도 근로자들의 기를 살려주고, 인재를 붙잡아놔야한다는 필요가 있을 때 기업주는 결정한다. 기업주가 착해서, 기분파라서 임금을 팍팍 올려주는 게 아니다.
반대로 부총리의 말을 따르느라 임금 인상 폭을 최소화했다가 인재를 국내외 경쟁사에 뺏기거나, 노사관계 악화로 이어진다면 어쩔 셈인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삐 풀린 물가를 어떻게 잡고, 치솟는 금리로 인해 더 가난해지는 대출자들을 어떻게 도울 것이며, 경기 침체의 터널로 빠져들 수 있는 한국경제호를 어떻게 운전할 것인가를 해법을 제시해야한다. 경제의 한 축인 가계, 근로자들의 걱정을 덜어주고 희망을 주고 믿음을 줘야한다. 공연한 논란을 만들어 힘을 빼지 말아야한다.
문형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