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OIL)
■ 폭증하는 SAF 수요…‘기회의 창’ 열린다
전 세계가 지속가능 항공유(SAF·Sustainable Aviation Fuel) 확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은 정책 인센티브와 투자 유치로 시장 주도권을 겨루는 중이다. 반면 한국은 기술, 원료, 정책 삼중 난관에 막혀 여전히 ‘이륙 전’ 단계에 머물러 있다. 글로벌 수요가 폭증하는 지금 정부와 산업계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는 명확하다.
정유업계는 이미 SAF의 수출 가능성과 산업적 잠재력을 감지하고 있다. SK에너지는 국내 최초로 SAF 유럽 수출에 성공했고, HD현대오일뱅크도 SAF를 일본에 수출했다. GS칼텍스는 핀란드 네스테에서 완제품을 수입해 시험 운항에 나섰고, 에쓰오일은 국제 인증(ISCC CORSIA)을 확보했지만, 상업화 단계까지 이어지긴 역부족이다.
대부분 기존 정유설비에 바이오 원료를 혼합하는 코프로세싱 방식으로 수율은 10%도 되지 않는다. 본격적인 생산 확대를 위해선 수천억~조 단위의 전용 설비 투자가 필수지만 수익성 불확실성과 제도적 지원 부재로 업계는 관망 중이다. SAF가 블루오션임을 인정하면서도 정제마진 하락과 투자위험 사이에서 산업계는 한 발짝 뒤에 서 있다.
■ 한국, 왜 아직 이륙하지 못했나…모든 영역 한발씩 늦어
문제는 생산력보다 시스템이다. SAF 산업은 단순한 정유 비즈니스를 넘어선다. 원료 확보, 생산설비, 인증체계, 수출 규제 대응, 항공사 수요 유도 등 복합적인 가치사슬 전반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는 국산 SAF에 대한 인증 기준이 없어 여전히 ASTM 국제 인증에만 의존 중이다. 원료도 폐식용유와 바이오 기반 유지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가격과 수급 리스크가 상존한다.
무엇보다 민간에만 혼합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는 SAF 산업이 성장할 수 없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혼합 비율을 늘리려면 가격 보조나 수요 확정 같은 정책적 ‘안전판’이 있어야 한다”며 “해외처럼 세제 혜택과 탄소 가치 평가 제도를 갖춘 정책 패키지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SAF 생산량에 따라 갤런당 최대 1.75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일본은 SAF 생산·판매에 대해 법인세의 40%까지 감면한다. 중국은 자국이 세계 최대 보유량을 자랑하는 폐식용유를 무기로 연간 500만t 이상 생산 가능한 설비를 가동하며 기술보다 원료에서 격차를 벌리고 있다.
■ 기술 아닌 정책 문제…보조금 없는 시장에선 날 수 없다
반면 한국의 SAF 관련 세액공제는 법인세의 3%에 그치며 SAF 생산시설에 대한 공공금융도 사실상 전무하다. 정부는 2027년부터 국제선 SAF 혼합을 1% 의무화할 계획이지만, 산업계는 “이 수준의 로드맵으로는 투자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SAF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다. 재생원료 기반의 고부가가치 제품이자 탄소시장에서 크레딧을 창출할 수 있는 전략 자산이다. 전문가들은 SAF 산업이 조선·배터리처럼 ‘정부 주도-민간 실행’이라는 한국형 산업 성장공식을 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술 내재화와 원료 국산화는 물론, SAF 혼합의무제의 점진적 확대, 인증체계 고도화, 수출기업의 탄소가치 보상체계 구축 등이 병행돼야만 한다.
2030년이면 SAF 시장은 22조8000억 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이 중 상당수는 정책이 ‘만든’ 시장이다. 국내 정유업계 전반이 시장 경색에 직면해 있다. 에쓰오일은 최근 대규모 채용 계획을 전격 취소하며 업계 불황을 여실히 드러냈다. 정유사들이 SAF 투자에 나서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은 한국 SAF 생태계 구축에 또 다른 장애물이 되고 있다. 국내 정유업계가 기술은 있으되 용기를 잃은 지금 필요한 것은 민간이 아닌 국가의 결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