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사진=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촉발된 미국과 중국간 긴장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산업계에도 파장이 일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이후 또 다른 공급망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대만해협을 지나는 항공·해운사들은 중국과 대만 간 대립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만발 미중 패권 경쟁은 미국의 반도체 동맹인 ‘칩(Chip) 4’ 가입 여부로 이어지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 낸시 펠로시 대만 방문 이후 ‘대만해협 긴장감’ 여전
8일 외교가에 따르면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시점에 맞춘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만 포위 훈련이 끝났다. 하지만 여전히 대만해협 일대의 군사적 긴장감이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날 “중국군의 대만을 압박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이 끝난 후에도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는 군사 활동이 상시화하며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중간선은 1955년 중국과 대만 사이의 비공식 해상 경계선이다.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앞두고 중국 정부는 “좌시하지 않겠다”며 강력히 경고했다. 실제로 중국 군용기가 중국과 대만 사이의 중간선을 근접비행했다. 미국도 이에 맞서 필리핀해에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 등을 배치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펠로시는 예정대로 대만을 방문해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만난 후 지난 3일 한국으로 향했다.
국적 선사인 HMM 선박이 컨테이너를 싣고 운항하고 있다. (사진=HMM)
■ 항공·해운 업계, 대만해협 우회…“현재 정상화, 예의주시”
대만해협을 둘러싼 중국과 대만, 미국과 중국 간의 대립이 격화되자 이 지역을 지나다니는 항공·해운사는 운항을 취소하거나 우회로를 택해야 했다.
대만해협에는 동이사아와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주요 항로가 몰려 있다. 이미 중국의 코로나19에 따른 폐쇄조치 여파로 물류난이 벌어진 상황에서 대만해협 긴장감까지 더해져 또 다시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만 영공은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주요 항로인 만큼 이용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여객과 화물 노선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실제로 항공 업계는 주요 항공편 운항이 차질을 빚었다.
대한항공은 중국 정부가 대만 영공을 사실상 차단하면서 지난 5~6일에는 대만행 직항편 운항을 취소했고, 7일에는 출발 시간을 1시간 늦췄다. 아시아나항공도 같은 기간 대만행 운항을 취소하거나 출발시간을 늦췄다. 대만 영공을 통과하는 싱가포르, 베트남 등 동남아 항공편은 최대 1시간이 더 걸리는 우회 경로를 택해야 했다.
8일 현재는 정상 운항하고 있지만 앞으로 또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운항을 취소하거나 우회해야 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지금은 정상 운항하고 있지만 언제든 긴박한 상황이 생기면 운항을 취소하거나 다른 경로로 우회해야 하는 상황이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운업계도 타격을 받았다. 해운 업계에 따르면 대만해협을 지나다니는 화물선은 하루 평균 300척이나 된다. 중국군의 군사 활동이 있게 되면서 화물선들은 대만을 돌아가는 경로로 화물선을 우회했다.
HMM은 컨테이너선 10여척이 대만해협을 지나며, 대만을 향하는 선박은 7척이다. HMM 관계자는 “현재까지 피해 상황은 없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긴장 상황이 발생할 경우 우회 항로를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20일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부터)이 윤석열 대통령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대만발 미중 패권에 ‘긴장’…미 중심 ‘칩4’ 가입 여부 ‘촉각’
반도체 업계는 미중 패권 경쟁과 함께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Chip4)’ 가입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중국의 반발이 불보듯 뻔해 중국에 공장을 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의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대만이 원산지로 표기된 부품이나 완제품을 압수하겠다고 통보하면서 사실상 대만산 제품에 수입 제한을 걸었다. 이에 미국 애플사는 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대만 협력사에 ‘메이드 인 대만’ 표기를 하지 말도록 요청했다.
국내 업계도 일부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대만 사태와 관련한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면서도 “다만 중국의 대만 표기 제품 수입 제한과 관련해 중국에 공장을 둔 일부 업체의 경우 대만에서 일부 부품을 수입하면서 피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원산지 표기를 변경하려면 인증을 다시 받는다든지 해야 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시간과 비용이 더 소요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반도체 업계에서는 피해가 크지 않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대만 표기 제품 수입 제한과 관련한 피해는 현재까지는 없다”면서 “일부 피해가 있을 수 있어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현재까지는 영향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는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 ‘칩4’에 더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 정부의 선택이 남아 있는 상황이기에 기업 입장에서는 정확한 입장을 밝히긴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어 이 문제에 대해서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칩4’는 미국이 지난 3월 한국과 일본, 대만 3개국에 제안한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다. 미국은 퀄컴·엔비디아 등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팹리스) 분야에서, 한국·대만은 삼성전자와 TSMC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 분야를 담당한다. 미국은 한미일과 대만의 반도체 협력을 강화해 기술 패권 경쟁에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구상으로 이를 제시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항공과 해운 등의 국내 기업들에 일시적으로 긴장감을 줬다. 하지만 ‘칩4’ 가입에 따른 중국의 반발은 중국 현지에 공장을 둔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 직격탄이 될 수도 있어 그 파장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단 한·미·일·대만이 참여하는 칩4 예비 회의에는 참여하기로 했다”면서 “하지만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 신중히 접근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