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초록우산어린이재단
2008년 12월 안산시 한 상가건물 화장실에서 조두순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여아를 무참히 성폭행한 사건은 우리사회를 경악하게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 성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민감도가 높아졌고, 아동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법과 제도를 강화하더라도, 그 안의 사각지대는 분명히 존재한다. 앞으로 어떻게 그 사각지대를 조금이라도 줄여나갈 수 있을지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하다.
호주의 한 아동보호기관에 따르면, 전 세계 18세 미만 5명 여아 중 1명, 그리고 12.5명의 남아 중 1명이 성범죄에 피해경험이 있다고 한다. 한편, 1990년대까지 개발도상국에서는 아동보호보다 보건, 식량안보 이슈에 보다 많은 관심이 쏠렸기 때문에 개도국에서는 아동성범죄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졌다. 부족했던 관심 때문인지 개도국의 아동보호 시스템은 이제야 서서히 정립되어 가고 있는 단계이며, 아직 갈 길이 멀다.
올해 7월, 탄자니아 아루샤 주에서 아동보호사업 기획을 위해 현장조사를 나간 적이 있다. 지역공무원 보호 아래 16세의 아동성범죄 피해 여아를 만났는데 이웃집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임신을 하고,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AIDS를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였다. 아동이 이웃집 남성이 범인이라고 지목했음에도 불구하고, 증거가 아동의 증언 밖에 없고 남성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남성은 아동의 집에서 불과 100m 떨어진 자신의 집에 거주하며 재판을 받고 있었다. 1차 재판에서는 이미 무죄가 선고되었고, 곧 2차 재판을 앞두고 있었으나 아동은 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을지 자신 없어 했다.
아동을 인터뷰하면서 아동이 학교에서 아동권리나 아동학대신고에 대해 배웠다면 이 상황이 달라졌을지, 아동의 마을에 아동 학대 사례를 다루는 원스톱센터가 있었다면 아동이 지금 그 남성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안전한 장소에서 보호받을 수 있었을지, 아동의 진술만으로 남성을 체포할 수 있도록 아동대상 범죄에서 아동의 의견을 존중하는 법이나 제도가 있었다면 어땠을지 하는 생각과 아동을 보호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이 함께 떠올랐다.
사진=초록우산어린이재단
탄자니아 정부는 이 같은 사건을 예방, 대응하기 위해 여러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아직 효과적으로 작용되고 있지는 못하다. 일례로 탄자니아에서는 2016년 12월, 여성 및 아동 폭력 근절을 위해 ‘탄자니아 여성 및 아동대상 폭력근절을 위한 5개년 실행계획(National Plan of Action to end Violence Against Women and Children/2017.08-2021.02)’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탄자니아 정부행정단위에서 지역 내 여성 및 아동보호 위원회를 구성하여, 이들을 통해 아동보호 사건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2018년부터 탄자니아 모고로고 주 음보메로 도에서 탄자니아 지역정부와 아동보호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마을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건을 신고해야하는 신고의무자의 역할을 교육 중이며, 도 단위에서 여성 및 아동 학대 사례가 발생할 경우 신속한 대응을 수행할 수 있는 원스톱(one-stop) 센터를 건축하고 있다. 더불어 마을 군/구 단위에서 여성 및 아동보호 위원회를 조직하고, 위원회가 스스로 활동을 계획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아동들을 대상으로 아동권리 교육을 진행하여, 아동들이 자신의 권리를 알고, 아동총회에 참여하여 아동 자신의 의견이 지방의회에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10월 11일은 ‘세계 여아의 날’이다. 이 날은 2012년에 유엔회원국들이 전 세계 여자아이들이 처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모으기 위해 제정한 국제 기념일이다. 단순히 ‘여아’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겪게 되는 차별과 한계가 있다. 아직도 탄자니아 북부 및 케냐 등지에서 살고 있는 마사이 부족(Maasai tribe)의 대다수의 여아들은 어렸을 때 할례(여성 성기 절제, Female Genital Mutilation)를 겪으며, 여전히 조혼(child marriage), 임신, 학업중퇴의 위기에 놓여 있다. 몇 십 년 전부터 국제사회가 근절하고자 했던 문제는 아직도 관례 또는 문화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행해지고 있다. 제2의 조두순사건을 막기 위해서, 또 탄자니아에서 매일 가해자와 마주해야 하는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지금, 한 번 더 우리 주변에 여아들이 어떤 어려움이 처해 있지는 않은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른들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