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드라마 '멜로가 체질' 스틸
영화의 영상미와 호흡이 긴 드라마의 탄탄함, 두 영역의 장점만 잘 어우러지면 뛰어난 작품 탄생은 한층 많아질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 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크로스오버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다양성’이 충족되고 있지만, 그만큼 유연한 자세도 요구되고 있다.
‘고스트 맘마’ ‘하루’ 등 섬세한 멜로 감성을 주로 선보이던 한지승 감독이 드라마 ‘연애시대’를 자극적이지 않게 풀어낸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크로스오버는 장르물에 한해서 이뤄졌다.
영화감독들에게는 긴 호흡으로 서사를 풀어내는 드라마가 아닌, 불친절하지만 호흡이 빠르고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적 문법들이 드라마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OCN 드라마 ‘트랩’과 ‘타인은 지옥이다’ ‘손 더 게스트’ ‘구해줘’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재치 있는 말장난과 빠른 호흡으로 주고받는 핑퐁식 대사가 강점인 이병헌 감독은 30대 청춘들의 현실을 담은 일상적인 드라마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호평과 달리 대중성 확보에는 실패했다. 최근 종영한 ‘멜로가 체질’은 방송 내내 1% 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 감독은 드라마 중반부에 기자회견을 열어 아쉬운 성적에 대해 “올해 1600만부터 1까지 다양하게 경험했다”라며 “극본과 연출을 함께하는 모험이 쉽지 않았다. 제가 하고 싶은 것과 대중이 원하는 것의 간극을 어떻게 좁혀나갈지 매일 공부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장르물의 경우에도 두 플랫폼의 차이를 이해하고,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 필수다. OCN에서 방송된 ‘타인은 지옥이다’는 주인공 앞에 펼쳐진 지옥도를 생생하게 구현하면서도 TV드라마에 맞는 적절한 수위를 찾는 과정이 필요했다.
OCN STUDIO 한지형 팀장은 이에 대해 “극장 영화에 비해 방송 심의도 당연히 더 엄격하다. 특히 장르물일 경우 사건을 리얼하게 전달하고, 드라마의 주제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비주얼적인 표현의 수위를 강하게 선택할 때가 있다. 이때 극장과 다르게 TV에 맞춰 표현의 수준을 조율해야하는 지점이 존재했다. 나중에는 플랫폼 차이를 이해하고, 최적화된 표현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사진=영화 '완벽한 타인' '조선 명탐정' 포스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케이블과 OTT의 등장이 영화감독들의 활발한 드라마 진출을 이끌었다면, PD들의 영화 도전은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들 역시 짧은 시간 안에 짜임새 있게 이야기를 담아내야 하는 영화 문법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얀거탑’ ‘풍문으로 들었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등 디테일하고, 섬세한 연출력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안판석 PD가 2006년 ‘국경의 남쪽’으로 영화에 도전장을 내민 적이 있다. 북한의 두 연인의 감성을 애틋하게 담아내며 장점을 발휘했지만, 이야기가 지나치게 단조로워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했다. 이밖에도 ‘궁’의 황인뢰 PD와 ‘피아노’의 오종록 PD 등 2000년대 초 스타 PD들이 연이어 영화에 도전했지만, 특색 있는 연출을 보여주지 못하고 실패를 거둬야 했다.
최근에 와서야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의 이재규 감독과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김석윤 감독이 성공 사례를 남기면서 PD출신 감독들의 실패 행렬을 끊었다. 이 감독은 영상미에만 과하게 공을 들여 서사는 납득시키지 못했던 ‘역린’의 실패를 딛고 ‘완벽한 타인’으로 흥행과 호평 모두를 얻었다. 한정된 공간과 시간을 재치 있게 활용하며 효율적인 연출력을 보여주며 영화에 완벽 적응한 모습을 선보였다.
김 감독 또한 ‘올드미스 다이어리 극장판’으로는 드라마만큼의 흥행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조선 명탐정’ 시리즈로 스타 감독 반열에 올랐다. 조선을 배경으로, 명탐정 콤비의 활약을 어렵지 않게 유쾌하게 담아내며 시즌3까지 이어가는 저력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