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철 오리온그룹 부회장. 사진=오리온
3조2000억원.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이 지난달 17일 ‘최고경영자 주관 증권사 간담회’에서 밝힌 올해 매출 목표다. 오리온은 지난해 매출 2조9124억원으로 최고 실적을 새로 썼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두드러지는 성과를 거뒀지만, 아쉽게도 ‘3조 클럽’ 입성은 한걸음 늦춰졌다.
하지만 아쉬움이 크진 않았다. 오리온이 굳건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만 해도 오리온 한국,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주요 4개 법인 합산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12.2% 증가했다. 특히 4개 지역 모두에서 매출이 성장한 점이 고무적이다. 올해는 허 부회장취임 만 10년이 되는 해다. 의미 깊은 해에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지 관심이 모인다.
◆재무·조직·인수합병 전문가…‘두 자릿수 이익률’ 뒷받침
10년째 오리온을 이끄는 허 부회장은 재무·조직 관리와 기업 인수 합병의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1960년생인 허 부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물산에 입사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신세계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경영지원실에서 재경 업무를 이어가며 부사장을 거쳐 사장으로 차례차례 승진했다. 신세계그룹에서는 월마트코리아 인수, 신세계와 이마트 인적분할, 센트럴시티 인수 등 굵직한 사업을 주도했다. 이마트 대표이사 사장으로도 일했다.
허 부회장이 오리온 부회장에 취임한 것은 지난 2014년이었다. 이마트 대표이사 사장직에서 물러나 상근고문으로 지내던 허 부회장을 오리온그룹이 ‘삼고초려’ 끝에 영입했다. 오리온에서도 전공을 살려 조직 정비 및 그룹 지주사 전환 등을 진두지휘했다. 2017년 오리온을 오리온홀딩스에서 인적분할하고 같은 해 지주회사 체제를 갖췄다. 분할 뒤엔 오리온홀딩스 대표이사직도 겸임했다.
허 부회장은 효율적인 원가 및 재고 관리에도 힘을 쏟았다. ‘판매시점정보관리시스템(POS)’ 데이터에 기반해 실제 상품 판매량을 분석한 뒤 이를 생산에 반영해 재고를 최소화했다. 또 글로벌 전략구매팀을 신설하며 각 해외법인 원재료 구매를 일원화 및 통합 관리해 효율성을 높였다. 이는 오리온이 식품업계에서는 보기 드문 두 자릿수 이익률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평가받는다. 원재료 가격 급등 여파를 고려하면 한결 빛나는 성과다.
◆국내외 모두 ‘탄탄대로’…‘제과 회사’에서 ‘종합식품회사’로
오리온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2017년 이후 줄곧 성장세를 이어갔다. 국내 매출 성장세는 2017년 이후 한 번도 꺾이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한국 법인 매출 1조700억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해외법인 실적도 가파르게 성장했다. 기존에도 높았던 해외 매출 비중은 2022년에는 68%에 육박할 정도였다.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시설 투자도 늘렸다. 2022년 512억원이었던 해외 투자규모는 2023년 1400억원으로 증가했다.
국내외 법인이 모두 굳건하게 자리 잡으면서 외부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체력이 뒷받침됐다. 실제로 중국의 한한령이나 러우전쟁, 글로벌 인플레이션, 중국 내수 침체 등 각종 악재가 있었지만 오리온은 견실한 성장세를 유지했다. 다변화된 매출 구조가 오리온의 지속적인 성장 원동력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탄탄한 본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허 부회장은 2017년 이후 디저트, 간편대용식, 생수, 건강기능식 등 4대 신사업을 추진했다. 스낵 등에 편중된 ‘제과 회사’에서 ‘종합식품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복안이었다. 2018년에는 간편대용식 브랜드 ‘마켓오 네이처’를, 2019년에는 ‘제주 용암수’를 출시했다. 다만 디저트와 건강기능식품 사업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허 부회장은 2020년 3대 신규 사업으로 음료, 간편대용식, 바이오 사업을 선정하며 전략 수정에 나섰다.
◆‘3조 클럽’은 잡은 토끼, ‘새 먹거리’ 확보에 승부수
장밋빛 미래 전망에 오리온의 ‘3조 클럽’ 입성은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허 부회장은 훨씬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오리온을 연매출 10조원 규모 ‘종합식품기업’으로 키운다는 게 허 부회장의 비전이다. 매년 10% 넘는 고성장을 이어간다고 해도 쉽지 않은 목표다. 허 회장은 주특기인 인수합병 카드를 무기로 꺼내 들었다. 그가 승부수를 띄운 곳은 ‘바이오 사업’이다.
오리온은 지난 1월 5500억원을 투자해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지분 25%를 인수하며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차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ADC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신약 개발회사다. 당시 허 부회장은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레고켐바이오와 함께 글로벌 신약 개발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바이오 신사업 동력을 확보해 글로벌 식품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속도를 내겠다는 전략이었다.
다만 시장 반응은 우려에 더 가깝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고 있다. 지분 인수 소식이 알려진 뒤 오리온 주가는 휘청였다. 최근 배당 성향을 올리는 주주환원 정책을 펼쳤음에도 여전히 인수합병 전 주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이미 디저트와 건강기능식품 등 신사업에서 한차례 고배를 마신 상황인 만큼, 바이오라는 ‘새 먹거리’를 안착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