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후보자 바로 뒤 착석)은 인사청문회 준비단장을 맡아 보좌했다.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했다. 정부 부처들은 저마다 에이스 공무원을 파견해 새로운 권력과 합을 맞추려 각고의 노력을 펼쳤다. 기획재정부는 김완섭 국장, 김병환 국장 등 총 6명을 보냈다. 통상 파견 인원(3~4명)의 2배다. 인수위 7개 분과 가운데 기재부 선배가 2명(추경호·최상목)이나 간사를 맡은 영향이 컸다.
직원 수가 기재부의 3분의 1 수준인 금융위원회는 권대영 국장과 이동훈 과장 2명을 파견했다. 이들은 경제1분과(간사 최상목)에서 김병환 국장 등 기재부 공무원 3명과 함께 활동했다. 파견된 에이스 공무원들은 약 50일 동안 저마다 자신이 책임진 분야에서 최대의 역량을 발휘하며 소속 부처의 위상을 높이려 애를 썼다.
그로부터 2년 3개월이 지난 지금, 경제금융 분야 인수위 파견 국장들의 위상은 천양지차다. 김완섭 국장과 김병환 국장은 장관 반열에 오른 반면, 권대영 국장은 차관급에도 오르지 못했다. 금융위 상임위원을 거쳐 현재는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고위공무원단 가급 5개 자리에서 수평 이동 중이다.
인수위 파견 당시만 해도 김병환 국장(서울대 경제학과 90학번)과 권대영 국장(고려대 경영학과 86학번)은 동급에 가까웠다. 나이는 권 국장(68년생)이 3살 많지만 김 국장은 군 면제를 받아 행정고시 기수(37회)는 1년 앞선다. 똑같이 재정경제원에서 중앙부처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10년 이상 실무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이들의 커리어 패스(career path)는 갈린다. 김 국장이 기재부에 계속 머문 반면, 권 국장은 신설 금융위원회의 과장으로 적을 옮겼다. 김 국장은 자금시장과장, 경제분석과장, 종합정책과장 등 거시경제 전문가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권 국장은 자산운용과장, 은행과장, 금융정책과장 등 금융정책 전문가로 입지를 다졌다.
두각을 먼저 나타낸 것은 권 국장이었다. 행시 기수는 낮았지만 국장 승진은 2년 더 빨랐다. 이들의 전문성은 2022년 10월 강원도 PF-ABCP 사태(일명 레고랜드 사태) 때 빛을 발한다. 인수위 파견 이후 김병환 국장은 대통령비서실로 불려가 경제금융비서관을 맡고 있었고, 권대영 국장은 금융위 상임위원(1급)으로 승진한 지 두 달이 지난 무렵이었다.
당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내 자금시장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올려야 할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아 채권시장 수급 불균형이 초래됐고(한전채 대규모 발행), 김진태 도지사는 전임 지사 때 추진된 사업이라며 몽니를 부려 시장 패닉의 ‘트리거(trigger)’ 역할을 자처했다.
건설사와 증권사 부도설이 시장에 빠르게 퍼지면서 급기야 정부는 일요일인 10월 23일 ‘50조+α’를 골자로 한 긴급대책을 내놓는다. 발표는 추경호 부총리가 했지만 세부 대책은 금융위가 주도했다. 당시 김병환 비서관은 최상목 경제수석 아래에서 관련 부처의 의견을 조율하며 실무를 맡았고, 권대영 상임위원은 유동성 지원 조치의 세부 내용을 책임졌다. 여기에 한국은행의 단기금융시장 안정화 조치까지 더해지면서 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관련 부처가 합을 맞춰 발 빠르게 대책을 내놓은 덕분에 경제에 문외한인 윤석열 대통령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안도할 수 있었다. 시장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했다.
국가적 위기는 김병환 국장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지난해 8월 1급 승진을 건너뛰고 곧바로 기재부 1차관으로 영전했다. 관료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이례적인 인사였다. 파격 인사는 연이어 진행됐다. 차관 영전 1년 만에 장관급인 금융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된 것. 졸지에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김병환 후보 인사청문회 준비단장을 맡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대학 교수 출신인 김소영 부위원장(67년생)도 70년대생 나이 어린 상사를 모셔야 하긴 마찬가지였다.
일이 이렇게 진행된 데에는 윤 대통령의 ‘능력주의’ 인사 스타일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출신 학교, 지역, 성별 등을 전혀 고려치 않고 오로지 개인의 실력을 인사의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것이 능력주의다. 이는 엘리트 공무원을 자부하는 기재부 공무원들이 속으로 쾌재를 부를 굿 뉴스였다. 실력 어필만 잘하면 기재부를 넘어 타 부처 요직도 얼마든지 꿰찰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관건은 실력 어필을 누구에게, 어떻게 할 것이냐다.
나랏일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국무회의에 기재부 장관은 당연직 국무위원으로 참여하지만 금융위원장은 그렇지 못하다. 매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과 눈도장을 찍는 것과 찍지 못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보이지 않는 권력 암투가 치열한 대통령실에서 업무 성과가 생겼을 때 공(功)을 타 부처에 돌리는 일은 거의 없다. ‘버럭 대통령’, ‘만기친람 대통령’ 아래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대면 기회가 드문 부처 입장에서는 공을 빼앗기지 않으면 다행이다. 회의 자리에 동석하지 못해 공을 빼앗겨도 확인조차 쉽지 않다. 윤 대통령이 천명한 ‘능력주의’에는 이런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예상(우려)대로 기재부 전성시대가 열렸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 올랐다. 기재부 조규홍 국장은 보건복지부 차관을 거쳐 장관에까지 올랐다. 기재부에서 예산 업무를 주로 맡았던 김완섭 국장은 예산실장, 2차관을 거쳐 환경부 장관에 임명됐고,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국무조정실장으로 영전했다. 장관급만 정리한 게 이 정도다.
기재부 입장에서는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언제 물이 빠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서 기재부 공무원들은 관세청장, 조달청장 등 제 몫인 산하 외청장 자리에서도 배제되는 수모를 겪었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확보했을 때 최대한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는 직언은 금물이다.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으로 금통위원과 경제수석이 되는 것쯤은 과감히 눈감아 준다.
금융위에서 김주현 초대 위원장은 차관급인 이복현 금감원장보다도 영향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일반 기업으로 치면 지분 없는 전문경영인에 가까워 이복현 원장이 권한 밖의 말들을 쏟아내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김소영 부위원장 역시 대선 캠프에서 공약을 다듬을 때보다 영향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가족회사의 주식 백지신탁까지 결정하며 한 단계 도약을 시도했지만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대통령실 현직들의 블로킹에 용산행이 좌절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금융위 ‘넘버3’인 권대영 사무처장의 도약도 막혔다. 현 정부 들어 권 처장은 금융권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숙제를 도맡으며 궂은 일에 앞장섰다. 레고랜드 사태 진화 이후로도 부동산 PF, 가계부채, 보험개혁 등 금융 분야 핵심 이슈들의 대책반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금융위 개혁 TF 단장까지 맡아 개혁과제 발굴에도 열심이다. 그럼에도 보상은 상대적으로 시원찮다. 인수위에서 같이 호흡을 맞췄던 김병환 국장이 불과 2년 만에 장관으로 초고속 승진한 것과 비교하면 더 초라해진다.
박근혜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금융위원장(4~8대)은 행시 24회부터 28회까지 순차적으로 기수가 내려왔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25회로 거슬러 올라가더니 37회(김병환)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사무관, 서기관 급에서 파격 승진 인사가 간혹 있긴 했다. 하지만 장관급은 얘기가 다르다. 연륜과 경륜뿐만 아니라 공직 사회의 기강, 사기와 직결돼 있다. 행시 29~36회에 포진한 고위공무원들은 과연 37회 발탁을 공정한 인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대통령을 얼마나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느냐가 능력주의 인사의 핵심이란 푸념을 어떤 근거로 반박할 수 있을까.
기재부, 서울대, 남자 중심의 회전문 인사는 윤석열 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지 오래다. 다양성이 배제되고 순혈주의에 물든 조직은 모래 위의 성처럼 취약하다고 경영학에서는 지적한다. 창의성과 역동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윤석열 정부의 경제 슬로건은 ‘역동경제’다. 참 모순적이다.